‘거꾸로’ 묻는 역사

<게오르그 바젤리츠>(8. 13~12. 27 세화미술관)
2026 / 08 / 17

역사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리에는 늘 소외된 이들의 짓밟힌 목소리가 고여있다. 세화미술관에서 열린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 회고전은 역사의 폭력과 상흔을 대하는 예술의 태도를 묻는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올해 4월 타계 직전 몰두했던 ‘골드 페인팅’ 연작까지 총 4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중 39점이 국내 최초 공개. 60여 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경, 사진: 홍철기, 세화미술관 제공

바젤리츠는 20세기 후반 독일 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한 신표현주의의 핵심적인 거장이다. 그는 1969년부터 대상을 거꾸로 뒤집어 그리는 역전 회화를 본격화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조국 독일의 분단을 경험한 작가에게, 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나 서독 주류의 추상미술이라는 이분법적 이데올로기는 답이 될 수 없었다. 대상을 전복해 고정된 서사나 의미에 갇힌 시선을 해방하고, 붓질과 색채, 질감이라는 회화 본연의 물성에 집중하게 만드는 미학적 실험을 감행했다.

이 역전 회화의 씨앗은 초기작인 절편 회화 가 이미 품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 바젤리츠는 캔버스를 분할해 소, 나무꾼 등 전원의 형상을 어긋나게 배치한 작품을 선보였다. 나치가 악용한 목가적 이미지를 이데올로기에서 떼어내는 시도였다. 절단과 전복이 전후의 상흔을 겨눴다면, 노년의 실험은 미술사와 작가 자신의 기억을 모티프로 시간 그 자체를 겨눈다. 2005년 이후 리믹스 연작에서 작가는 과거 자신의 작품이나 미술사적 인물, 작품 등을 동시대 언어로 재구성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경, 사진: 홍철기, 세화미술관 제공

말년의 골드 페인팅 시리즈에 이르러 시간은 유한과 영원의 대면으로 확장된다. 바젤리츠는 두초와 시모네 마르티니 같은 시에나파 화가가 성화(聖畵)의 배경에 입히던 금박을 화면에 끌어들였다. 인간의 형상은 희미한 흔적과 얼룩으로, 그 배경은 퇴색하지 않는 천상의 금빛으로 채웠다. 연약함과 숭고함, 소멸과 영원을 대비했다. 삶과 예술을 향한 노장의 마지막 성찰을 담았다.

이번 회고전은 광복 81주년을 앞두고 열렸다. 전시는 작가가 타계 직전 남긴 마지막 인터뷰를 함께 공개했다. 영상에서 노장은 한국과 독일이 공유한 전쟁과 분단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에게 종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60여 년의 작업은 그 상흔을 마주하며 미래를 그리는 과정이었다. 한국에서도 해방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짓밟힌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상처를 어떻게 끌어안으며, 어떤 내일을 그려낼 것인가. 바젤리츠의 뒤집힌 화폭은 오래된 물음을 오늘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