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을 권리
AI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시대. 그러나 틀리는 것만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026 타이틀 매치 <오인환 vs. 장서영: 휴먼 에러>전은 오류를 인간 창작의 조건으로 세운다. 매끄러운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는 힘, 우리의 예술은 바로 이 오차와 어긋남에서 나온다. 시선은 밖과 안에서 각각 출발해 교차한다. 오인환은 획일화된 사회 구조에서 지워져 가는 차이의 가치를 드러내고, 장서영은 병들고 늙는 몸에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발견해 낸다.
오인환은 ‘하나가 아닌 우리, 하나가 아닌 나’를 표어로 삼는다. 집단은 물론 개인의 정체성조차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 사회가 강요하는 동일성에 맞서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정체성을 가시화했다. <애교 프로젝트>는 아이돌처럼 ‘애교’를 부리는 중년 남성을 앞세워 젠더 규범의 허구를 폭로한다. <칼군무>는 케이팝의 안무를 재구성해 획일적인 단체 안무 속에 숨은 개성을 드러냈다. <무지개처럼, 우리는 하나가 아니기에 아름답지 않은가>는 작가가 이끄는 ‘이반미술모임’의 참여자들이 각자 지닌 물건을 무지개 패턴으로 배열한 작품이다. 퀴어적 다양성을 의미하는 무지개를 차용해 차이를 통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역설했다.
장서영은 ‘실리콘 바니타스’를 모티프 삼았다. 실리콘은 반도체의 핵심 재료로 오늘날 디지털 문명을 떠받치는 물질이고, 바니타스는 삶의 덧없음을 일깨우던 17세기 정물화 전통. 작가는 이 둘을 포개 영원과 완전을 좇는 기술과 늙고 병드는 몸을 마주 세운다. <Exhausted>는 배기가스를 내뿜는 내연기관과 에너지를 소진한 몸을 교차한다. ‘배기(exhaust)’와 ‘지침(exhausted)’이라는 동일한 어원의 단어를 겹쳐 인간의 유한성을 환기했다. <폴룩스의 거울>은 인간을 양분 삼아 자라는 AI와 암세포를 나란히 놓는다. 인간을 학습한 AI도, 몸속에서 증식하며 숙주를 잠식하는 종양도 인간을 닮아가지만, 작가는 그 어느 쪽도 인간의 고통만은 옮겨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살지, 어떻게 살지까지 알고리즘이 정해주는 시대에, 우리에게 틀릴 여지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AI에 익숙해지는 사이, 우리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보다 오히려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퀴어 이론 연구자 잭 핼버스탬(Jack Halberstam)은 실패를 결핍이 아니라 성공 신화에 대한 능동적인 거부로 바라본다. 완벽과 효율,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개인을 몰아세우는 사회에서, 그 기준에 부합하기를 거부하는 실패야말로 해방일 수 있다는 것. 새로운 내일은 정답이 아니라 오답을 택하는 용기에서, 기꺼이 틀려보자는 에러에서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