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디아컨템포러리 조수정 대표. ‘디아(DIA)’는 ‘Discover Inspiring Artistry’의 약칭이다. 새로운 비전과 이름으로 서울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갤러리 겸 아트컨설팅 디아컨템포러리가 서울에 문을 열었다. 조수정 대표는 2010년 싱가포르에 갤러리휴를 설립하고, 한국 작가를 싱가포르 미술씬의 최전선에 소개해 왔다. 지난 11월 그가 갤러리 거점을 삼청동으로 옮기고, 디아컨템포러리로 개칭했다. 디아컨템포러리가 들어선 건물 1층에는 베를린 기반 화랑 페레스프로젝트가, 3층에는 리가 갤러리 레이지마이크가 있다. 아트벨트 북촌이 지닌 파워에 힘입어 글로벌 갤러리와 시너지를 발휘하겠다는 포부이다.
조수정은 홍익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 아트컨설팅에 발을 들이며 미술시장에 눈을 떴다. 아트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전무했던 2000년대 초반, 예술과 공간을 연결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한양대에서 실내 환경 디자인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2005년 도미해 보스턴건축대학에서 수학했다. ‘예술과 공간의 연결’이라는 조 대표의 비전이 실현된 첫 무대는 싱가포르였다. 왜 하필 싱가포르였을까? 이 질문에 그는 ‘척박한 예술환경’이라는 이유를 내놓는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교통의 요충지이면서 다문화 국가이다. 역동적인 경제 환경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이 모여 살지만, 압축된 도시 개발의 역사로 문화예술 인프라는 척박했다. 조수정은 발 빠르게 블루 오션을 공략했다. 처음에는 아트컨설팅 회사 ‘아트온’을 설립해 한국 작가를 싱가포르 기업과 개인 컬렉터에게 소개했다. 이후 더 많은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자 2010년 갤러리휴를 론칭했다.
삼청동, ‘뉴 머니’의 아트허브
갤러리휴는 15년간 200명 이상의 한국 작가를 싱가포르에 소개해 왔다. 한국인 갤러리스트의 글로벌한 활동은 자연스레 국내 아트씬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2021~22년에는 신세계백화점 분더샵의 의뢰를 받아 단체전 <These>, <ART-IST: Ways of Seeing>을 기획했다. 2018년에는 가족과 한국에 돌아오게 되면서 싱가포르에서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서울에 펼쳐내기로 결심했다.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한다는 의지를 담아 갤러리 이름도 디아컨템포러리로 바꿨다. “디아컨템포러리는 진솔한 내러티브를 지닌 작가에게 끌린다. 장르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김찬일과 권용래(1961년생), 홍수연(1967년생), 서희수(1973년생), 강준영(1979년생), 이재민(1981년생), 유정민(1990년생), 이소정(1993년생)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주력하는 작가는 세상에 진지한 질문을 던지거나, 인간 존재를 성찰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 작품은 현실과 꿈,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의 힘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ART-IST: Ways of Seeing>전 전경 2022 신세계백화점 분더샵
디아컨템포러리 개관전의 주인공은 뒤셀도르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화가 이소정이다. 개관전 <야간비행>(11. 14~12. 21)은 작가의 한국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그는 불과 1년 전 뒤셀도르프 드로스테갤러리에서 데뷔전을 치른 신예이다. 청주에서 태어난 이소정은 부산예고를 졸업하고 부산대 미술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형화된 미술교육에 현기증을 느껴 대학교를 중퇴하고, 독일로 훌쩍 떠나 뒤셀도르프예술아카데미에 진학했다. 이번 개인전은 조 대표가 작가를 만나러 직접 독일에 방문하면서 성사됐다. 전시에는 2018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총 21점의 회화와 드로잉이 선보여졌다. 전시장 벽을 묘한 보랏빛으로 칠해,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고요하고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이소정 <Raum der Gedanken> 캔버스에 유채 180×140cm 2024
이소정은 실재와 환상이 뒤섞인 꿈의 자화상을 그린다. 작가는 현실의 심리적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 채 꿈으로 이어지는 현상에 주목해 왔다. ‘악몽’이라는 모티프는 어린 시절 이토 준지의 만화 같은 공포물을 좋아했던 기억과 만나 초현실적 이미지를 그리는 계기가 됐다. 이소정의 회화에는 일상 사물이 엉뚱한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가령 종이비행기나 종이배는 방향성과 목적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함을 상징한다. 모자와 우비는 꿈 한복판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장치이며, 물은 일상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꿈으로까지 번진 상황을 은유한다. 수영하거나 길을 걷는 인물은 심연을 탐험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요소는 흰자위 없이 뻥 뚫린 파랗고 검은 눈이다. 이는 작가의 시그니처 표현으로, 이성으로 통제하기 힘든 감정과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암시한다. 빨갛게 달아오른 양쪽 볼, 이와 대조되는 창백한 피부 역시 내면의 분열을 강조한다.
이소정 <Three-Way Conversation> 캔버스에 유채 100×160cm 2020
한편, 조수정은 디아컨템포러리에서 해외 기반의 한국 작가를 활발히 소개할 예정이다. 개관전으로 이소정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트컨설팅 활동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한국의 동시대 미술시장은 2005년과 비교하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졌고, 작가의 정체성과 작품의 서사가 더욱 중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최근 삼청동은 기존의 ‘올드 머니’ 중심 지역에서 벗어나, 젊고 역동적인 ‘뉴 머니’를 끌어들이는 흥미로운 문화 허브로 변화하고 있다. 차분하고 고즈넉한 지역성은 미술작품의 에너지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곳에서 동시대미술의 가치를 알리고, 한국과 싱가포르를 포함한 글로벌 미술시장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