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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회화가되는시간

성곡미술관,2000년대한국구상회화기획전<서울오후3시>

2025/01/01

이은주가 기획한 그룹전 <서울 오후 3시>(2024. 11. 7~12. 8 성곡미술관)는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된 2000년대, 사진과 회화 사이에서 ‘그리기’에 천착했던 9인의 작가를 통해 한국 구상미술의 흐름을 되짚는다. 강석호 김수영 노충현 박주욱 박진아 서동욱 이광호 이문주 이제가 당시 발표했던 대표작을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이은주는 밀레니엄 이후 국내 구상화의 특징 세 개를 꼽아 전시의 테마로 나눴다. 개인의 일상 풍경에 주목한 ‘서울에서 그리다’, 사진의 회화적 번역을 조망한 ‘사진에서 그림으로’, 감상자의 2차 체험에 초점을 맞춘 ‘풍경 안에 그들이 있었다’ 등으로 동시대회화의 분기점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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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금호터널>캔버스에아크릴릭177×238cm2005

일상 풍경과 매체 번역 그리고 2차 체험. 이 세 개의 열쇳말은 명확히 구별되기보다 서로 교차하며 느슨한 성좌를 형성한다. 개인의 스토리텔링, 즉 ‘마이크로 내러티브’의 대두는 미술의 무대를 정치, 사회에서 일상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미술에서 객관적 재현보다 주관적 표현의 가치를 재조준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감상자에겐 그림을 보며 역사의 진실보다 개인의 감정에 다가가는 관점의 변화가 요구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어째서 화가는 경험과 인상을 직접 캔버스에 옮기지 않고 사진을 경유해 표현하는가. 마이크로 내러티브는 거시사와 양립할 수 없는가. 감상자의 태도는 오직 ‘공감’에 한정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답해보자. 사진에서 회화로의 전환은 매체 간의 ‘번역’ 과정으로 해석된다. 이는 회화와 사진이라는 두 매체의 본질과 연관이 있다. 사진은 ‘대상’의 외양과 순간을 포착하지만, 회화는 ‘창작자’의 주관적 감정과 물리적 감각을 전달한다. 다시 말해서 번역은 외양을 정서로, 순간을 물성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회화는 사진을 경유함으로써 매체적 특성을 배가한다. 렌즈는 눈에 띄지 않았던 주변 환경이나, 스치듯 지나가는 찰나를 정확하게 담아내면서 주관적 감정이 이입될 대상을 확장한다. 한편 피사체의 물성이 제거된 2차원의 사진은 원본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마티에르를 부여하는 조건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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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욱<Blow>캔버스에유채162×112cm2008

박주욱의 <Blow>(2008)는 네거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풍경을 회화로 번역한 작품이다. 네거티브 필름에서 상은 색채가 반전돼 이미지의 밝은 부분은 어둡게, 어두운 부분은 밝게 현상된다. 작가는 어둠에 묻혀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 없던 디테일을 사진으로 발견하고, 이를 소외된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했다. 세밀한 붓질로 결과 겹을 형성해 바람에 물성을 부여했다. 김수영의 <동부화재 건물>(2009)은 파사드의 반복적 구조에 주목해 도시의 기계적 질서 속에 숨은 추상적 미학을 드러낸다. 행인의 눈에 일관돼 보이는 창문의 행렬은, 줌인된 사진에서 불규칙한 매력을 발산한다. 작가는 여기에 따뜻한 색감으로 얇게 층을 쌓아 차갑고 딱딱한 외벽을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티에르로 재탄생시켰다.

폐허와 고립의 이미지

한편 전시는 각 출품작이 개인적 경험을 모티프 삼은 회화임을 전제하면서도 비슷한 리듬과 패턴을 드러낸다. 풍경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정조는 폐허의 분위기다. 김수영, 노충현, 이제의 그림에서 도시는 모든 인간이 사라진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디스토피아처럼 나타난다. 이문주의 <유람선>(2009)에선 군상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철거되는 마을을 관광하는 외부인에 불과하다. 강석호, 박진아, 서동욱, 이광호가 그린 초상에선 모든 인물이 고립돼 있다. 그들은 모두 홀로 있거나 소통하지 않는다. 상황과 맥락이 제거된 텅 빈 배경은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표정이 없거나 뭉개져 있다는 것도 공통된 특징이다. 폐허의 이미지와 고립된 인간. 전시가 공동으로 드러내는 이 두 양상은 정치, 사회와 무관한 개인성에 천착하는 동시대회화에도 거시사가 여전히 녹아있음을 증명한다. 폐허는 자본의 논리로 끊임없이 재개발되고 소외되는 도시의 모습을 은유한다. 고립은 인간성과 공동체의 붕괴라는 보편적 문제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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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김밥먹는Y>리넨에아크릴릭112×145cm2004

평범한 일상에서도 사회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면 감상자의 태도 역시 달라진다. 과거 민중미술, 리얼리즘 회화처럼 특정한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회화에는 정치가 존재한다. 이제 관객은 흔한 빌딩 숲에서 빈부의 격차를 상기하고, 자연 풍경만으로도 기후 재난에 다가선다. 사태의 진실을 읽는 것을 넘어서 그것에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는 태도로 접근한다. 이은주는 전시명 <서울 오후 3시>를 두고 “오후 3시는 현실에 있으면서도 다른 곳을 향하고 싶어지는 시간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말은 미술사적으로도 읽힌다. 동시대미술은 민중미술의 사회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율성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오후 3시는 서울에서 해가 가장 뜨겁게 내리쬐는 시간이다. 태양이 영원히 뜨거운 상태로 사그라지듯, 미술 역시 언제나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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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오후3시>전전경2024_전시장에는참여작가가그림을그릴활용한사진이아카이브로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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