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고, 디자인 탐험대

피크닉, 헬싱키 디자이너 듀오 콤파니 개인전
2026 / 05 / 04

콤파니(COMPANY)는 아무 송(Aamu Song)과 요한 올린(Johan Olin)이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다. 20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현지 장인과 협업해 왔다. 지역 고유의 제조 기술로 만든 전통 생활용품을 동시대 미술언어로 재해석해, 자동화 시대에 인간의 노동과 수공예 문화의 가치를 환기한다. 지금, 피크닉에서 콤파니의 대규모 개인전 <World Affair>(4. 3~9. 6)가 열리고 있다. 프로젝트 과정을 담은 에스키스와 영상, 시장에서 착안한 키네틱 설치 등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World Affair>전 전경 이미지 제공_피크닉 piknic

한국인 아무 송과 핀란드인 요한 올린.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열정 가득한 디자인 학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무는 서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1998년 헬싱키로 건너가 알토대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했다. 이때 같은 대학에서 공간디자인으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요한을 만나 2000년 콤파니를 설립했다. “아무에게 세상이 각양각색의 맛과 물건으로 가득 찬 ‘둥근 달’이라면, 요한에게 세상은 사실, 경험, 역사가 겹겹이 쌓인 거대한 ‘보물 지도’다. 아무가 주제에 깊이 몰두해 시간도 잊고 작업하고 있으면, 요한은 미리 가방을 싸놓고 여권은 챙겼는지 묻곤 한다(웃음).”

콤파니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관계’다. 콤파니는 전통과 현대, 일상과 예술, 과정과 결과의 유기적인 연결을 추구한다. 이들의 시그니처 작업인 ‘시크릿 프로젝트’도 대량 생산과 효율성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으로 인해 단절된 가치를 되찾으려는 의도로 탄생했다. “21세기로 접어들며 ‘세계화’가 전성기를 맞았다. 많은 공장이 제조업의 단가를 줄이려고 비용이 저렴한 해외로 거점을 옮기면서 핀란드의 공장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때 우리는 여전히 로컬에서,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무엇인지 찾아 나설 필요성을 느꼈다.”

첫 시크릿 프로젝트는 2007년 콤파니의 거점인 핀란드에서 이뤄졌다. 핀란드 전역의 공장을 돌아다니며 협업을 제안하고, 기존의 제작 방식과 맥락에 ‘콤파니식’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했다. 콤파니는 당시 결과물을 모아 핀란드 키아스마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 <Top Secrets of Finland>를 열었다. 소박하지만 다정하고, 진지하면서도 위트 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한 이 전시는 콤파니가 미술계와 디자인계 모두를 사로잡는 계기가 됐다. 이후 벨기에 러시아 에스토니아 일본 미국 멕시코 페루 한국 인도 파키스탄 등 전 세계로 시크릿 프로젝트를 확장했다.

로드 무비, ‘만들기’의 비밀을 찾아서


<World Affair>는 콤파니의 한국 첫 개인전이다. ‘세계의 일(물건)’이라는 뜻의 전시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피크닉의 전관을 활용해 그간의 시크릿 프로젝트를 총망라했다. 전시는 콤파니가 기술자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 따라 총 5개 섹션으로 나뉘었다. 먼저 첫 번째 섹션 ‘탐정처럼 여행하다’는 콤파니가 20년간 유랑하며 모은 방대한 수집품과 리서치 자료를 소개한다. 장인의 오리지널 제품과 두 디자이너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만나는 공간이다. 수집품 사이사이에 자리한 3분가량의 아이패드 영상은 탐험의 과정을 로드 무비 형식으로 보여준다. 일상 사물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제작자와의 인연을 더 중시하는 콤파니의 철학이 스며있다.

두 번째 섹션 ‘그림으로 이야기하다’에선 지난 5년간 그려온 드로잉을 한자리에 모았다. 콤파니는 기차, 호텔 방, 식당 한구석 등 장소를 불문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손에 펜을 쥔다. 같은 물건도 디테일을 변주하며 수십, 수백 장을 그려왔다. 스케치에는 그 알록달록한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편, 콤파니에게 드로잉은 ‘언어’다. 소통의 장벽을 넘어 기술자와 교감하게 해주는 매개물이다. “우리의 드로잉이 일방적인 작업 지시서가 아니라, 간절하고도 정중한 제안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드로잉을 보낼 때면 러브 레터를 주고받는 듯한 설렘과 긴장이 교차한다.”

<World Affair>전 전경 이미지 제공_피크닉 piknic

세 번째 섹션 ‘온 세상 만들기의 비밀’에선 드로잉의 결과물을 대방출했다. 그중에서도15년의 컬래버레이션 끝에 완성된 러시아의 ‘시크릿 프로젝트’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70여 개의 마트료시카를 곡선형의 기다란 테이블에 하나하나 설치했다. 전통적인 마트료시카가 호리병 모양에 러시아의 전통 의상 사라판(sarafan)을 입은 여성을 그려 넣었다면, 콤파니의 마트료시카는 크기도,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가령 <바다 마트료시카>(2013)는 플랑크톤부터 물고기, 고래로 이어지는 바다의 먹이 사슬을 표현했고,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2012)는 알과 닭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로, 인과 관계의 오랜 딜레마를 유머러스하게 환기했다. 한편 한국의 ‘시크릿 프로젝트’에선 영천의 목탁 장인 안진석과 협업한 신작 <얼굴 목탁>(2025)을 공개했다. 구조상 눕혀서 보관해야 하는 일반적인 목탁과 달리, 이 목탁은 세울 수 있게 만들어졌다. 헤드폰을 낀 채 음악을 즐기는 듯 평온한 표정이 그려진 목탁은 맑은 타종 소리와 어우러져 고요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World Affair>전 전경 이미지 제공_피크닉 piknic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네 번째 섹션 ‘세상의 모든 상점’. 지난 2년간 ‘시크릿 프로젝트’를 함께한 장인을 벽화와 키네틱설치로 구현했다. 고개를 흔들며 등불을 든 일본인, 물병이 깔린 매대에 앉아있는 멕시코인 등 콤파니가 만난 장인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으로 소환되었다. 실제로 헬싱키에서 ‘시크릿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판매하는 상점 ‘살라카우파(Salakauppa)’를 운영하는 콤파니는 사물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현상에 주목해 왔다. 이 공간은 “20년간 우리 손을 거쳐 만들어진 물건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싶다는 오랜 꿈”으로 탄생했다. 오늘날 사라져가는 시장의 활기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희미해진 이웃 간의 정다운 관계의 감각을 되살린다.

마지막 섹션 ‘이 세상 다음’은 야외와 연결된 4층에 마련됐다. 구름 같은 봇짐을 한가득 두른 채 두 팔을 번쩍 들고 있는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도약할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아무와 요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관객을 상징하기도 한다. 콤파니의 여정을 함께한 모든 사람이 영감을 가득 안은 채 자기만의 세계로 훨훨 날아오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어떤 물건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때, 그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콤파니의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또 다른 여정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콤파니 / 아무 송과 요한 올린이 2000년 설립한 디자인 스튜디오.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학사 에스포 알토대 가구디자인 석사 졸업(아무 송). 알토대 그래픽디자인, 공간디자인 수학(요한 올린). <Happiness>(헬싱키 수오미탈로 2025), <Kehä-Circle>(헬싱키 라테르나마기카 2025) 단체전 참여. 2007년부터 ‘시크릿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헬싱키에서 거주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