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떠도는 기호

조현화랑 서울, 추상화가 차우희 개인전
2026 / 04 / 02

1세대 여성 추상화가 차우희. 그는 흑과 백의 강렬한 대비와 그사이를 표류하는 기호를 작업의 핵심으로 삼아왔다. 숫자와 문자, 정체 모를 검은 형태들이 파편처럼 혼재한 화면이 차우희 회화의 시그니처. 정처 없이 떠도는 기호를 통해 작가의 노마딕한 삶을 시각화했다. 그가 개인전 <존재의 지층, 실존적 오딧세이>(3. 18~5. 10 조현화랑 서울)를 열었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 <오딧세이의 배>(1991)와 프란츠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을 포함한 회화 20점을 공개했다.

<오딧세이의 배> 캔버스에 아크릴릭 혼합재료 213×184cm 1991 조현화랑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면 차우희의 대표작 <오딧세이의 배>가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색채를 최소화하여 흑과 백이 빚어내는 극명한 긴장감을 전면에 내세웠다. 고대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엮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차용한 것으로, 40여 년간 한국과 해외를 유랑한 자신의 삶을 투영했다. 차우희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항구 도시 특유의 풍경 속에서 성장했다. 끊임없이 드나드는 배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항로, 그리고 언제나 떠남과 귀환이 교차하는 바다의 이미지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시각적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었다. 특정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늘 이동과 변화를 전제하는 환경은 훗날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노마디즘의 원형이 된다.

1970년대 중반, 작가로서 돌파구를 모색하던 당시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마주한 독일 표현주의 회화는 그에게 적잖은 시각적 충격을 주었다. 작가는 강하고 거친 붓질,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에서 당시 한국 미술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원초적 감정을 발견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국내 화단에서 느끼던 안이함에서 벗어나고자 1985년 차우희는 독일 연방정부로부터 학술교류기금(DAAD)을 받아 베를린으로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40세였다.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을 보기 위해 몇 개월마다 한국에 가야 했다. 한국과 베를린을 오가며 형성된 물리적, 정서적 거리감은 자연스럽게 ‘항해’라는 이미지로 응축됐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상황과 아내, 엄마, 그리고 작가라는 복수의 정체성은 거대한 색면으로 형상화됐다. 그에게 <오딧세이의 배>는 “망망대해를 향해 펼쳐진 돛이 되고, 때로는 기억 속 장소를 찾아가는 지도”다. 작품에 등장하는 알파벳은 작가의 뇌리에 박힌 특정 도시의 이니셜이자, 추억의 좌표로 작동한다. 관객에겐 해독 불가능한 암호처럼 보이지만, 작가에게는 분명한 시간과 장소의 흔적이다. 찰나의 행복, 사랑, 그리움, 염원…. 그가 느낀 모든 것이 담겨있다.

“나의 배는 아직도 항해 중”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출품작 <돛의 단상>(2005-2006) 역시 배와 돛, 노마디즘을 모티프로 삼았다. <오딧세이의 배>와 달리 간결해진 선과 확장된 여백이 특징이다. 물감을 쌓고 굳히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형성한 두터운 마티에르는 시간의 축적을 물질로 드러냈다. 모래와 시멘트, 안료를 혼합해 화면에 올린 뒤 다시 긁어내는 방식은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흔적을 그대로 남긴다. 이러한 표현주의적 제스처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회화는 안락함이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베를린 체류 시절,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냉전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현실은 그의 작업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무장한 군인의 검문, 도시를 가로지르던 베를린 장벽의 압도적 풍경은 단순한 여행을넘어선 것이었다. 이때의 기억이 분단 현실을 살아온 작가 자신의 내면과도 깊이 공명해 작업을 하나의 ‘전투’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달콤하고 평화로운 작업은 이 현실에 비해 너무 안이하고 무가치한 것이 아닌가. 나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새롭게 무장한 병사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이후 작가에게 검은색은 시대의 무게와 존재론적 질문을 담아내는 근간이 되었다. 한때 독일 표현주의 화가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이 사용한 색채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으나 차우희의 검은색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내가 구현하는 검정색은 서양에서 받은 영향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감정에서 촉매된 것이다. 오랜 시간을 통해 삭으면서 나타나는 푸근한 정감의 색채다.”

<W. R> 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 40×40cm 2024~25 조현화랑 제공

차우희의 ‘오딧세이’는 입체로도 확장된다. 특히 <기억의 상자>(워터게이트갤러리 2010)전에서는 작가의 유목적 정체성을 설치작업으로 가시화했다. 그는 캔버스를 자르고 꿰매어 가방이나 돛 등 하나의 오브제로 탈바꿈시켰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선반에는 저마다 독특한 기호가 각인된 작은 캔버스 가방이 놓였다. 이 가방은 작가가 지나온 수많은 도시와 시간의 기억을 응축한 아카이브다. 유목민의 삶에서 ‘가방’은 가장 간소화된 형태의 ‘집’이자 몸에 밀착된 거처다. 작가는 캔버스를 가방으로 입체화함으로써 관념적인 이동의 감각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존적인 무게로 치환했다.

한편, 유럽에서 겪은 자전적 이야기를 표현한 그간의 작업과 달리 <오마주 정선>(2011) 연작은 조선 후기 산수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재해석한 것이다. 차우희는 집 앞에서 인왕산을 보며 다음과 같이 느꼈다. “누군가는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고 했다. 나는 산이 거기 있어서 바라본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장쾌한 일이지만, 산을 바라본다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작가는 사실적인 묘사 대신 여러 겹의 천을 바느질로 이어 붙인 뒤 그 위에 유화를 중첩해 인왕산의 육중한 암벽을 촉각적으로 표현했다.

차우희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또 다른 축은 문학과 음악의 결합이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에 깊이 매료됐던 작가는 독일로 건너간 후에도 문학,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쌓았다. 이들과의 예술적 소통은 그의 작업에 지속적인 자극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차우희는 회화를 형상과 바탕, 색 등이 앙상블을 이루는 협주로 은유한다. 흑백의 대비는 음표처럼 작동하고, 점과 선, 문자는 화면에 리듬을 부여한다. 이번에 선보인 신작 <겨울 나그네>(2024-2026) 또한 프란츠 슈베르트의 동명의 연가곡에서 영감을 받았다. “울고 싶어도 울음이 나오지 않을 때 이 곡을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라는 그의 말처럼, 음악은 치유이자 작업의 동반자였다. 작가는 얼음 밑 어둠 속에서도 언젠가 피어날 민들레 씨앗과 개나리 가지를 상상하며, 물감을 쌓고 지우고 다시 뜯어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실연과 방랑의 서사를 담고 있는 반면, 차우희는 차가운 표면 아래에서 서서히 꿈틀거리는 ‘생(生)의 감각’을 포착했다.

차우희 회화는 도착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배는 이제 격정적인 폭풍우를 지나 평온한 바다로 접어들고 있다. “나의 전작들은 귀환을 모토로 그려온 것이지만 이제는 여생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산책’이다. 산다는 것은 곧 움직이는 것이다. 고로 나의 배는 아직도 항해 중이다.” 그렇게 차우희의 ‘정박하지 않는 오딧세이’는 계속된다.

<겨울 나그네> 캔버스에 아크릴릭 혼합재료 130×89.5cm 2024~26 조현화랑 제공
차우희 / 1945년 대구 출생. 중앙대 서양화과 학사 졸업. 조현화랑 서울(2026),
송아트갤러리(2024), 갤러리소연(2023), 갤러리하임(2023) 등에서 개인전 개최. 서울 거주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