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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미술의본보기

담양군문화재단담빛예술창고,기획전<비움은채움의시작>

2023/08/02

<비움은 채움의 시작>전 전경_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광희 <자생의 길>, 2023, 권기자 <Natural> 2018, 2019, 김치준 <텅 비움을 빚다>, 2023.

<비움은채움의시작>전전경_왼쪽부터시계방향으로정광희<자생의길>,2023,권기자<Natural>2018,2019,김치준<텅비움을빚다>,2023.

담양군문화재단의 담빛예술창고에서 특별 기획전 <비움은 채움의 시작>(6. 6~8. 27)이 열리고 있다. 담양 지역에서 활동하는 김재성이 전시 기획을 맡았다. 전시 초대 작가는 배동환, 한만영, 김종학 등 원로 작가를 비롯해 권기자, 김진, 김이수, 표인부, 그리고 담양의 김재성, 김치준, 정광희 등 10명이다. 서울, 경기, 경북, 전남, 전북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만났다. 전시 키워드는 ‘비움과 채움’. 간결하고 절제된 이미지의 대형 작품 38점을 한자리에 모아, 한국 동시대미술의 정체성을 조망하는 전시다.

기획자 김재성은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예술가 스스로 불필요한 조형 요소를 덜어내는 ‘비움’은 의도적인 선택이다. 이러한 일련의 연속적인 제작 과정에서 또 다른 정제된 ‘채움’의 성취를 얻어낼 수 있다. ‘비움’은 역설적으로 ‘채움’의 시작이다. 작가에게 ‘비움’과 ‘채움’의 상호 작용, 왕복 운동은 창작의 산고가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수행이다. 이번 전시는 ‘비움’과 ‘채움’의 조형론을 통해 구상과 추상, 지역,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 미술의 종단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초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비움의 조형은 각기 다른 변주를 보여준다. 그 다양성을 크게 세 흐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구체적인 재현적 형상이 드러나는 작품군이다. 배동환은 돌 이미지를 그려놓고 페인팅 나이프로 긁어내거나 사포질로 화면의 피부를 얇게 벗겨낸다. 보이지 않는 대상의 본질에 육박하기 위해 지우기, 들어내기의 방법을 활용한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뼈만 남아 텅 빈 광장을 걸어가는 자코메티가 좋다.” 한만영의 <시간의 복제> 시리즈의 작품 배경은 언제나 푸른 여백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정서가 교차하는 이미지, 그 낯선 소격 효과는 현실도 이상도 아닌 교묘한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저 푸른 비움은 무한히 미끄러지는 시간의 여백이다.


김종학은 광고지의 두꺼운 질감, 그 흰 배경에 포도송이를 크게 얹혔다. 역시 일상 소재와 엉뚱한 재료의 만남이 빚어내는 ‘낯설게 하기’의 효과가 큰 매력이다. 김치준의 <텅 비움을 빚다>는 도자기와 투명 비닐봉지, 나무 가구로 구성한 설치작품이다. 질료에 따라 비움과 채움이라는 시각의 양태, 지각과 인식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간단한 발상이지만 철학적인 의미를 던지는 짜릿한 작품이다.

김재성 <질서에 관한 어법> 침핀, 아크릴릭 165×110cm 2022

김재성<질서에관한어법>침핀,아크릴릭165×110cm2022

표인부 <66 바람의 기억> 캔버스에 종이 150×150×12cm 2018

표인부<66바람의기억>캔버스에종이150×150×12cm2018

둘째,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일군의 작품이다. 여기에서도 간결한 비움의 미학이 유유히 관통한다. 표인부는 바람의 속성을 기억의 흐름으로 상징화한다. 유동적인 이미지, 꿈틀대는 구성, 굴곡진 마티에르 등으로 주제를 적절하게 구현한다. 김이수의 작품은 일견 바다, 하늘, 대지 같은 풍경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의 금욕적인 화면은 미세한 감각의 차이, 이른바 앵프라맹스(inframince)를 추구한다.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는 천변만화의 풍경, 시간의 풍경이라 해도 좋다. 김진은 숲의 안과 밖을 모두 그린다. 숲을 모티프로 삼지만, 결코 숲의 재현이 아니라 숲의 개념 혹은 숲의 추상을 지표로 삼는다. 출렁이는 숲의 이미지가 ‘필촉’과 ‘기호’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셋째, 한국적 미니멀리즘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군이다. 행위의 반복, 행위의 무목적성, 물질의 정신화로 요약할 수 있는 단색화의 양식적 속성과도 통한다. 정광희는 한국화의 획을 현재 시제의 추상회화로 천착한다. 동서 미학의 융합이기도 하다. 그는 비움과 채움을 음과 양의 생명 순환으로 치환해 주제화한다. 올오버(all-over)의 화면에 생명의 율동이 세포처럼 잔잔히 숨쉰다. 권기자는 물감을 흘려 내리는 반복 작업을 거듭한다. 물감이 일구어낸 무수한 선의 궤적은 여러 색깔의 물감 층과 뒤엉켜, 깊이 있는 시각적 일루전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거대한 우주에 흐르는 빛과도, 아니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면의 심리와도 자연스럽게 만난다.

김재성은 가시 같은 핀(pin)으로 화면을 배열하고 구성한다. “각각의 핀은, 생명체의 세포처럼 그리고 물질에서의 원자처럼, 그 자체로 질서의 기초적인 성분이자 작품의 요소이다.”(김병헌) 핀은 작품의 유기적인 전체를 구성하는 인자다. 실로 고행과도 같은 반복적인 노동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김종학 <포도> 패널에 광고지, 혼합재료 200×366cm 1998

김종학<포도>패널에광고지,혼합재료200×366cm1998

<비움은 채움의 시작>전 참여 작가 10인.

<비움은채움의시작>전참여작가10인.

담양군문화재단은 2014년에 출범했다. 군 단위로는 전국 최초의 문화재단이다. 이 재단은 2015년 옛 양곡 보관소였던 ‘남송 창고’를 리모델링해 전시 공간 및 문화 휴식 공간 담빛예술창고를 새롭게 조성했다. 문화 재생 사업으로 주민을 위한 문화 거점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전시뿐만 아니라 매주 주말에는 ‘대나무의 고장’에 걸맞은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 공연’이 열린다. 담빛예술창고의 올해 기획전으로는 독립큐레이터 최재혁의 <생태, 인류, 담양>전(3. 10~5. 28)이 열렸다. 김유석, 김지수, 배성미, 원성원, 허수영을 초대했다.

담양군문화재단은 2019년부터 해동문화예술촌을 운영하고 있다. 주조장, 교회, 의원을 개조해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기반의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었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이 ‘문화를 빚는 예향’으로 거듭나고 있다. 담양군문화재단은 7월 5일 제2회 대한민국 문화재단박람회의 지역문화우수사례 공모전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을 수상했다. 작년에 이어 2회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야흐로 지역 미술이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이끌어가는 시대다. 지역 미술이 과연 ‘천 개의 고원’을 만들어갈 것인가. 담양군문화재단의 역동적인 활약을 기대한다. / 김복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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