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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비추는수호신

데본자르댕,미국의젊은독학파화가

2023/07/07

<Before the Fall> 캔버스에 유채 203.2×203.2cm 2023

<BeforetheFall>캔버스에유채203.2×203.2cm2023

미국 오리건주 출신 독학파 페인터 데본 드 자르댕(Devon DeJardin). 그는 종교적 수호신을 동시대 언어로 재구성한 작품 <가디언즈>로 2019년 로스앤젤레스 아트씬에 스타로 떠올랐다. 자르댕은 종교학을 전공한 신예로, 회화에 늦게 입문했지만 누구보다 아카데믹한 자세로 미술사를 연구했다. 시그니처 작품 <가디언즈> 역시 큐비즘으로 재해석한 성경 속 영웅이다. 그가 오랜만에 다시 LA에서 개인전 <In the Shadows>(6. 23~7. 29 UTA아티스트스페이스 로스앤젤레스)를 열었다. 새롭게 진화한 <가디언즈> 연작과 드로잉, 조각 총 15점을 선보였다.

자르댕은 절대적 가치를 질문하며 종교 우화를 그린다. 이번 전시 주제는 ‘거짓을 밝히는 진실의 빛’이다. 누가복음 12장 2절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에서 착안했다. 이 주제에는 반전이 있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절대적 믿음이 곧 진리요, 다른 가치관은 배반, 즉 거짓이 된다. 작가는 이런 종교적 모순을 꼬집는다. 눈앞의 진실이 과연 정답일까? 교리의 이상과 달리, 현실의 종교는 배타적인 태도와 이념 갈등으로 골칫덩이가 되곤 한다. 종교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도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하지 못해 병든 지 오래다. 작가는 각자의 믿음이 존중받고, 진실과 거짓의 정의도 자유롭게 그려볼 수 있는 세상을 갈망한다.

거짓을 밝히는 진실의 빛

자르댕은 청소년기 심한 불안과 공황에 시달렸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는 이때를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내면적 가치에 집중하다 보니, 영적인 세계관으로 관심이 깊어졌다. 대학에 진학해 그는 종교학을 전공했다. 세계 여러 종교, 사상, 전통문화를 접했고, 당연시했던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벗어나 시각을 넓힐 수 있었다. 여러 사상과 철학을 흡수한 뒤, 작가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고자 회화에 입문했다.

자르댕에게 회화는 온전한 자기 세계를 펼쳐갈 언어다. 흔들렸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중심을 잡아줄 수호신을 구상했다. 성서의 수호자를 본떠 인물의 성격을 잡고, 고전적인 초상화 형식을 참조해 외형을 만들었다. 작가는 전통적 재현에서 탈피해 새로운 표현 양식을 제시했던 피카소, 네벨슨, 뒤샹, 크레이스너에 매료되었다. 움직임을 구조화한 큐비즘의 역동성과 강한 고독을 담은 무채색에 마음이 끌렸다. 기본 입방체를 덧붙여 인물의 몸통을 만들고, 연극적인 조명을 더해 수호신 양식을 완성했다.

<Awaiting the Return> 캔버스에 유채 203.2×304.8cm 2023

<AwaitingtheReturn>캔버스에유채203.2×304.8cm2023

<In the Shadows> 캔버스에 유채 203.2×203.2cm 2023

<IntheShadows>캔버스에유채203.2×203.2cm2023

2019년 개인전 <가디언즈>는 처음 가디언즈 세계관과 양식을 발표했던 전시다. 초기 수호신 초상화는 피카소의 인물화 필치를 모티프 삼아 두꺼운 윤곽선으로 각 면을 이었다. 늘 하나씩 등장했던 수호신은 2022년 개인전 <Giants>(알버츠벤다 뉴욕)에서 서로 ‘관계’를 맺게 된다. 초상화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우화로 인간 사회 빗댔다. 다윗과 골리앗 서사의 교훈을 그린 <Giants Are Not What We Think They Are>(2022)가 그 예시다. ‘절대 강자는 없다’는 메시지로 통념을 재고해 보기를 권했다. 또 작가는 예년까지 미니어처에 그쳤던 가디언즈 청동 조각을 대규모로 제작해 선보였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 발돋움하며 커리어에 큰 분기점이 됐다. <Giants> 이후 그는 아모리쇼(2022), 아트SG(2023) 등에 초대되며 이머징 아티스트에서 글로벌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이번 전시 <In the Shadows>의 주요 모티프는 ‘에덴동산’과 ‘돌아온 탕아’다. 전자는 금기의 열매를 건드려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쫓겨난 이야기로, 인간의 본능적 욕망에 대한 교훈을 준다. 후자는 가산을 탕진한 차남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베푼 아버지의 이야기로,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의 미덕을 전한다. 작가는 두 이야기의 공통 주제인 욕망, 배신, 용서에 주목했다. 은밀하게 품은 어두운 마음을 그리고자 빛과 어둠의 대비를 강조했다. 이미지에도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화려한 색상’과 ‘구체적인 배경’이다. 이전까지 자르댕을 대표한 키워드는 ‘구조’와 ‘매스’였고, 인물의 양감 표현에 집중해 배경은 주로 짙은 단색으로 처리됐다. 이와 달리, 신작에는 풍경을 자세히 묘사해 인물은 물론, 서사에도 힘을 실었다.

먼저 <Before the Fall>(2023)에는 뻥 뚫린 하늘을 배경으로 화사한 꽃밭에 둘러싸인 수호신이 서있다. 그림자 한 점 없는 꽃밭은 이상으로 가득한 낙원을 상징한다. 전시의 핵심인 <In the Shadows>(2023)는 구멍 너머로 염탐하는 시선에 주목했다. 그림자 속에서 밝은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은 배반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Awaiting the Return>(2023)에는 어둠이 내린 세상, 동이 트길 기다리며 남겨진 군상을 그렸다. 꽃밭과 대비되는 척박한 대지는 죄를 짓고 쫓겨난 땅을 연상케 한다. 전시의 대서사는 욕망의 대가로 추방된 후, 용서를 바라는 인물의 속죄로 막을 내린다. 작가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숫자 ‘3’으로 균형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What Is Done in the Dark>(2023)에는 어둠 속 진실을 감시하는 수호신 군상 3명을 세웠고, <Mind Body Spirit>(2023)에는 마음, 몸, 정신을 상징하는 수호신 3명을 삼각형 대열로 배치했다. 이번 전시의 가디언즈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서 ‘다름과 공존’의 가치를 수호한다.

<Study of a Guardian 1> 핫프레스 종이에 흑연 110.5×95.25cm(부분) 2023

<StudyofaGuardian1>핫프레스종이에흑연110.5×95.25cm(부분)2023

<What is Done in the Dark> 198.1×365.8cm 캔버스에 유채 2023

<WhatisDoneintheDark>198.1×365.8cm캔버스에유채2023

<In the Shadows>에서 비주얼 스토리텔러의 면모를 발휘한 자르댕은 향후 청동 조각의 스케일 확장을 예고했다. 그는 “전쟁이나 대량 학살의 유적지처럼 실제로 영적인 수호가 필요한 장소에 가디언즈를 세우고 싶다”라며 소망을 밝혔다. 그간 작가의 내면을 단단히 지켜준 가디언즈. 이제 전시장을 넘어 진짜 세상의 수호신으로 군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주예린 기자

데본 드 자르댕

데본자르댕/1993년포틀랜드출생.아주사퍼시픽대종교학커뮤니케이션졸업.UTA아티스트스페이스로스앤젤레스(2023),알버츠벤다뉴욕(2022),로스앤젤레스덴크갤러리(2021),로스앤젤레스코트앤스캐리(2019)등에서개인전개최.스페이스K서울에작품소장.로스앤젤레스에서거주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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