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금단의땅,평화의장으로

정전70주년기념기획전<DMZ전시:체크포인트>

2023/10/04

“여기서부터 민간인 통제선입니다. 미승인 차량 U턴.”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로 입장하는 관문인 파주 통일대교의 경고문이다. DMZ는 1953년 정전 시 군사 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군대가 각각 2km씩 후퇴하며 만들어진 특수 지역이다. 대한민국 땅임에도 개인이 입장하려면 국가의 ‘허가’가 필요한 장소 DMZ. 완충 지대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한반도에서 가장 중무장 돼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순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DMZ 전시: 체크포인트>(8. 31~9. 23, 10. 6~11. 5)가 열렸다. 이 전시는 마라톤, 학술 대회, 음악 공연 등 11개의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DMZ 오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개최된 시각예술 행사이다. 파주와 연천을 차례로 순회하며 각 시·군의 DMZ 일대를 동시대미술 무대로 탈바꿈한다. 올해는 아트선재센터 김선정 예술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국내외 작가 27명을 삼엄한 접경지로 초대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올해 11회째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까지 전시 장소를 넓혔다. 이번에는 원로, 중견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도 다수 참여했다. 휴전 상황이 길어지면서 세대별로 DMZ를 다른 공간으로 해석하는 상황을 이번 전시에 녹이고자 했다.

<DMZ 전시: 체크포인트>전(2023) 임진각 평화누리 광장 전경

<DMZ전시:체크포인트>전(2023)임진각평화누리광장전경

서용선 <뉴스와 사건> 캔버스에 아크릴릭 250×600cm 1997~1998

서용선<뉴스와사건>캔버스에아크릴릭250×600cm1997~1998

‘선 넘는’ 상상


1부 파주의 <체크포인트>전은 도라전망대, 캠프그리브스, 임진각 평화누리 세 장소에서 진행된다. 도라전망대는 거대한 통유리창과 망원경 수십 대가 설치돼 개성공단, 김일성 동상 등 북한 땅을 맨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최북단 전망대다. 이곳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덕에 아름답게 보존된 DMZ의 자연 풍경을 모티프 삼은 작품이 다수 전시됐다.

이끼바위쿠르르의 <덩굴: 경계와 흔적>(2023)은 DMZ 일대의 식물을 채집해 마치 고대벽화처럼 대형 파노라마 형식으로 그린 회화다. 이들은 식물을 한 뼘 땅만 있으면 남과 북 어디든 자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침입자’로 상정했다. 박보마는 DMZ가 내다 보이는 2층 창가에 <초록의 실제>(2023)를 설치했다. 생화에 페인트를 칠해 조악한 장식품처럼 보이지만, 명상적인 향이 전망대 홀에 번지도록 특수 제작했다. 작가는 광활한 자연이 펼쳐진 DMZ를 보고 ‘천국’ 같다고 느낀 데서 작업을 출발했다. 작품의 허술한 외관과 신성한 향기를 대비해, 보이지 않는 정치적 위협과 눈앞에 놓인 웅장한 자연의 이질감을 감각적으로 재현했다. 성립은 DMZ 인근의 식물을 관찰해 유기적으로 뒤엉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운명을 드러냈다.

킴 웨스트팔 <내 눈은 아래를 봐> 나무 프레임에 터프팅한 아크릴 섬유 78.7×58.4cm 2015

웨스트팔<내눈은아래를봐>나무프레임에터프팅한아크릴섬유78.7×58.4cm2015

혜안폴권카잔더 <너와 나 가장(假裝) 행렬> 거울, LED 경광등, 방범창, 자석, 소화기, 헌 옷, 가변크기 2023

혜안폴권카잔더<너와가장(假裝)행렬>거울,LED경광등,방범창,자석,소화기,옷,가변크기2023

캠프그리브스는 정전 협정 이후 미 2사단 506 보병대대가 50여 년간 주둔했던 미군의 군사 시설 구역이다. 참여 작가들은 기존에 전시되던 ‘안보 관광’용 기록물, 사진 자료, 재현 전시관 등에 개입해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냈다. 가령 최원준은 미군의 활약상을 자랑하는 연대기 사진에 <미군 기지촌 클럽에 대한 작은 역사>(2023) 연작, 미군 클럽이 성행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와 미군을 최초로 묘사한 영화 <지옥화>(1958)의 스틸을 곳곳에 섞어두었다. 미군이 바꾼 한국의 정경으로 홍보용 아카이브에 위장 잠입해 한미 관계의 해석에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킴 웨스트팔은 미군 생활관을 재현한 전시관에 작동하지 않는 레코드플레이어 오브제 <스파이스 메모리>(2023)를 설치하고 여전히 진행 중인 총성 없는 전쟁을 환기했다. 조경진/조혜령은 캠프그리브스에 텃밭을 가꿔 남북이 다르게 명명하지만 사실 같은 식물임을 드러내는 <식물 평행세계>(2023)를 구현했다.

한편 캠프그리브스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체육관이다. 이곳에는 DMZ의 ‘경계적 속성’을 예술로 풀어낸 작업이 여럿 포진했다. 체육관의 높은 천장에 군용 모포 36장을 매달아 압도적 광경을 연출해 낸 임민욱의 <커레히-홀로서서>(2023). 커레히는 북아메리카 체로키어로 ‘홀로 버틴다’라는 뜻으로,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한 506 연대의 모토였다. 작가는 군용 모포를 혹독한 훈련과 참혹한 전장에서 유일하게 개인의 영역을 지켜주는 물건으로 해석했다. 이에 꿈과 환상의 세계를 모포에 그리고 국가 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의 무의식 세계를 강조했다. 함경아는 북측에서 개성공단 무기한 폐쇄를 일방적으로 결정해 남한의 모든 인원이 북한 시간 17시, 남한 시간 17시 30분까지 그곳을 떠날 것을 명령한 사건을 주제로 삼았다. <리프린트된 시차 17시와 17시 30분 사이>(2023) 연작은 당시 긴박한 상황을 포착한 보도 사진을 해체, 콜라주한 작업이다. 남쪽으로 급히 떠나는 차량을 얼기설기 조합해 거대 권력의 폭력성을 드러냈다. 이재석의 <쉘터_2>(2022), <오성텐트>(2020)는 실내인지 야외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군용 텐트를 그려,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경계란 유동적인 가상의 선이라는 사실을 나타냈다.

이재석 <오성 텐트> 캔버스에 아크릴릭, 겔 미디엄 161.7×240.9cm 2020

이재석<오성텐트>캔버스에아크릴릭,미디엄161.7×240.9cm2020

임민욱 <커레히-홀로서서> 군용 모포, 아크릴릭,  페인트 스프레이 가변크기 2023

임민욱<커레히-홀로서서>군용모포,아크릴릭,페인트스프레이가변크기2023

마지막 임진각 평화누리 잔디 광장에는 김홍석의 <불완전한 질서 개발회색 만남>(2023)이 우뚝 서있다. 텐트 천에 공기를 주입해 두 인물이 서로 손을 맞잡은 형상의 대형 조각을 만들었다. 분명한 흑백이 아니라 회색 지대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인류를 상상했다. 토모코 요네다는 날카로운 철조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나는 식물을 찍었다. 경계를 가로지르는 꽃과 식물 사진 <지뢰-DMZ Ⅰ>(2015/2023), <얽힌 철조망과 꽃 Ⅱ(DMZ 인근의 철원, 대한민국)>(2015/2023) 등으로 국경의 인위성과 덧없음을 이야기했다. 이제, 동시대작가들은 DMZ를 6·25전쟁의 상흔을 넘어 세상을 분열하는 수많은 경계 가운데 하나로 인식한다. 강한 비판 의식과 무조건적 희망의 메시지가 줄어들고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선 넘는’ 상상을 펼친다. DMZ는 타자를 이해하는 상호 만남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 김해리 선임기자

예술경영지원센터(2024.06.27~)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2024.07.04~)
스팟커뮤니케이션(2024.01.24~)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