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영면에 들다
2023년 3월 23일, 드디어 나는 ‘샘’을 죽였다.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살의(殺意)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계기는 『아트인컬처』에 실린 한 장의 광고. 거기에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유명한 <샘(Fountain)>(1917) 이미지가 가운데 있고, 그 위에 다음과 같은 붉은색 손 글씨가 쓰여 있었다. “마르셀 뒤샹의 자리를 넘보다.” 오호! 순간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신의 한 수’가 당도하셨도다!
나는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정 사진을 만들자. 마침 며칠 전 길에서 주운 커다란 흰색 타일이 집에 있었다. 타일 중앙에는 담뱃갑 두 배 크기의 사각 구멍이 나있고, 망사로 덮여있었다. 이 칸에 맞춰 잡지의 사진을 잘라 붙이니 매우 그럴듯했다. 검은색 테이프로 타일의 앞면을 꼼꼼히 감싼 뒤, 그 위에 베이지색 테이프로 ‘ㅅ’ 표시를 했다. 또 마침 집에는 종이로 만든 멕시코제 꽃이 있었다. 울긋불긋 화려한 지화(紙花)를 중국제 호리병에 꽂고 그 앞에 영정 사진을 놓았다. 이것들을 93세에 작고한 어머니의 유품인 작은 소반 위에 진설했다. 티베트제 향을 사르니, 특유의 향내가 방에 퍼지며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흰 종이를 잘라 지방을 만들고 다음과 같이 썼다. ‘두상부군신위(頭上府君神位)’. ‘두상’은 ‘뒤샹’의 이두식 표기로, 내가 지었다. 그리고 <샘>을 위한 지방 ‘천부군신위(泉府君神位)’를 하나 더 만들었다. 술을 따라 올리고 고인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구러 세월이 흘렀다. <샘>이 죽은 지도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하루는 안양 2기적팩토리에서 ‘현대미술과 오브제’를 주제로 강연해 달라고 했다. 이미경 대표와 상의 끝에 내 오브제작품들로 강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샘>을 기리는 작업이 품된 <사물의 언어>(2024. 11. 20~12. 11)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샘>이 운명한 지 정확히 1년 8개월 만에 드디어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전시 마지막 날 오후 4시에는 30여 명의 작가 미술사가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등이 장례 퍼포먼스에 참가했다. 장례식은 김정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식순에 따라 양은희 미술사가의 <샘> 이력 보고(김정현 대독), 김병수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의 조사에 이어 문상객의 헌주가 있었다. 그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상 이미경 대표를 비롯해 다수의 도움과 참여로 기상천외한 복장의 장례 가두 퍼포먼스가 끝났다. 양은희에 의해 <샘>의 생몰은 ‘1917~2024년’으로 기록됐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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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Fountain)의 장례식> 퍼포먼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