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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타오른다~가자!

숯의화가이배,청도<달집태우기>퍼포먼스

2025/03/01

진눈깨비가 푸슬푸슬 휘날리던 2월 12일 정월 대보름. 청도천 자락의 한 섬이 겨울 날씨를 뚫고 활활 타올랐다. 3,000평 땅을 밤새 태울 만큼 넉넉한 땔감은 바로 이배의 <달집태우기>였다. 작가는 큰불을 내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 대보름 세시 풍속 ‘달집태우기’를 너비 200m, 폭 35m에 이르는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구현했다. 올해 첫 보름달이 떠오를 오후 5시 무렵 ‘3, 2, 1!’ 구호에 맞추어 작가가 점화 버튼을 누르자 섬 곳곳에 불길이 피어올랐다. 팥죽을 나누어 먹고 북과 꽹과리를 치는 흥겨운 마을 잔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배의 작품은 점차 새까만 재로 변해갔다. <달집태우기>는 이배 작품 세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동양적 순환관’을 다각도로 드러낸다.

<달집태우기> 프로젝트는 2024년 2월 24일 대보름날 시작됐다. 지난해 작가는 고향 청도에서 세계 각지의 소원을 전통 한지 조각에 옮겨 적고 달집에 묶어 태우는 행사 <달집태우기>를 진행했다. 전통 관습에 맞추어 거대한 종 형상의 목조 구조물을 제작해 전소했다. 작가는 이를 촬영해 영상작품 <버닝>(2024)으로 편집했고, 그 과정에서 생성된 숯을 수집해 장소특정적 회화작품 <붓질>(2024) 등의 제작에 활용했다. 이 작품들은 2024베니스비엔날레 공식 병행전 <달집태우기>(2024. 4. 20~11. 24 베니스 빌모트파운데이션)에서 공개됐다. 베니스 한복판에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으로 ‘숯의 향연’을 펼쳤다. 비엔날레 전시 폐막 후, 작가는 베니스 공간 전체를 뒤덮었던 <붓질>과 한지 도배를 떼어 한국으로 공수했다. 이를 잘게 찢어 청도천 섬에 깔고, 그 위에 새로운 버전의 <붓질>(2025)을 그려 덮었다. 이를 태운 행사가 바로 올해의 <달집태우기> 피날레였다. 고향 청도에서 탄생해 베니스를 순회하고, 다시 청도로 ‘귀향’한 작품의 여정은 저마다의 고향에서 태어나 결국 모두 한 줌 재로 돌아가는 인간 만사의 근본 원리를 암시한다.

한편, 이배는 고향의 세시 풍속을 동시대작품으로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올해 피날레 행사는 수직으로 선 달집이 아니라 섬 전체를 달집 삼아 ‘수평성’을 강조했다. 자연을 배경이자 매체로 활용하는 규모와 자연스러운 소멸을 향해가는 과정은 1960~70년대의 대지미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과거의 대지미술이 미술의 물신화, 미술관의 문화적 감옥화에 반발해 야외로 나온 제도 비판적 미술이라면 이배는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그의 <달집태우기>는 둥글게 찬 보름달에 더불어 사는 인류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제의의 정신을 동시대에 되살린다. 사실상 <달집태우기> 프로젝트는 특정 작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만 1년간 풍속, 전시, 퍼포먼스 등의 형태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비물질 개념’에 가깝다. 이배의 <달집태우기>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동양의 ‘순환적 시간관’을 강조한다. 순환의 목표는 ‘재생’이다. 이배는 소각의 행위에서 ‘생성’을 본다. “숯은 불에서 온다. 태우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 DNA에 새겨진 농경의 유전자를 떠올린다. <달집태우기>로 전통을 빌려 이 시대의 간절한 염원을 하늘로 올려보내고,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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