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구멍’ 뚫기

뮤지엄헤드, 염지혜 개인전 <홀홀홀 HoleHoleHole>
2026 / 08 / 31

염지혜는 오늘날 생태적 파국과 사회·역사적 모순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영상과 회화로 탐구해 왔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논리가 남긴 ‘폭력’을 화두로 누락되고 은폐된 타자의 상흔을 매체 실험으로 드러낸다. 그가 뮤지엄헤드에서 개인전 <홀홀홀 HoleHoleHole>(7. 7~8. 15, 이하 홀홀홀)을 열었다. 인간과 비인간, 중심과 주변, 물질과 기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세계를 이해하는 연결망으로서 ‘구멍(hole)’을 제안한다.

염지혜는 전 세계 도시와 오지에서 촬영한 푸티지 이미지를 AI 기술, 사변 서사와 엮어 영상으로 제작한다. 그는 20대 시절 유학과 여행으로 미국, 이란, 가나, 남극 등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하며 국가와 개인, 그리고 자연에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낯선 도시에서 경계인이자 이주인으로서 겪은 감각이 염지혜 미술의 토대가 됐다. 특히 반인반수의 돌고래를 등장시킨 초기작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2015)부터 여성형 사이보그가 상상한 인류 최후의 풍경인 <마지막 밤>(2024)까지 인간과 타 종의 결합은 반복되는 모티프. 이러한 이종 접합은 인간의 몸을 자연과 물질, 기술 등이 드나드는 ‘통로’로 재정의한다. <홀홀홀>전은 그 통로를 ‘구멍’으로 명명한다. 회화와 조각, 발효 물질과 냄새 등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여 화면에서만 존재했던 접합을 실물로 구현했다.

여기에는 생태주의자이자 에코 페미니스트인 스테이시 앨러이모(Stacy Alaimo)의 ‘횡단-신체성’ 개념이 중요한 축이 됐다. 앨러이모는 기존의 인간(주체)과 자연(객체)을 분리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이들이 서로 깊게 얽힌 물질적 실체임을 주장한다. 작가는 안과 밖 그리고 입구와 출구를 구분하지 않는 ‘구멍’의 논리로 이 얽힘을 시각화했다. 단, 앨러이모가 연결을 내세운다면 작가는 구멍의 막힘과 정체, 그리고 오류를 같은 비중으로 놓는다. 전시장에서는 원활한 순환뿐 아니라, 삼켰으나 내려가지 못한 채 걸린 것들도 중요하다.

개인전 <홀홀홀> 전경 2026 뮤지엄헤드 제공
<크랙> 접착 시트에 디지털 프린트 가변크기 2026 뮤지엄헤드 제공

출구 없는 루프

입구에 설치된 <크랙>은 작가가 2012년 콜롬비아 칼리와 샌프란시스코 레지던시에 체류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코카인 거래 거점인 칼리와 마약 중독자로 ‘좀비 도시’라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을 중첩해 벽면에 부착했다. 미국은 콜롬비아를 자국의 마약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이들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해 왔다. 취약 계층과 중독자가 늘어나는 양국 상황을 갈라진 노면과 얼룩이 뒤엉킨 시트지로 표현했다. ‘크랙’이 ‘코카인’의 은어인 점을 떠올리면, 균열(crack)은 물질과 정신 양쪽에서 발생한다. 여기에 칼리 체류 당시 제작한 회화 <언데드>를 함께 설치했다. 마약에 절여진 ‘좀비 새’로 전쟁과 마약 산업이 자연에 끼친 막대한 영향을 은유했다.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4개의 검은 패널은 이번 개인전의 골격이다. 패널 양쪽에는 회화, 조각, 영상이 교차해 설치됐다. 첫 번째 패널에 설치된 작품은 <호모 볼루스>. 인류를 뜻하는 ‘호모(homo)’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음식물’, 그리스어로는 흙을 의미하는 ‘볼루스(bolus)’를 결합했다. 회화에는 내장을 연상시키는 붉은 통로와 그곳에서 빠져나온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등장한다. 인간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지만 눈과 코의 위치가 뒤틀린 비정형의 모습이다. 어원의 세 갈래 ‘인류’, ‘음식물’, ‘흙’은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인 술지게미와 점토로 빚은 동명의 조각의 재료가 됐다. 회화 <영생의 길>과 <글리치 발효> 역시 꼬이고 뒤틀린 소화 기관을 묘사했다. 입에서 대장으로 이어지는 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걸리거나 역류한 형상들은, 각종 오류와 인위적 개입으로 불량이 되어버린 존재를 상징한다.

한편 이번 개인전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특이하게도 벽면에 쓴 <시(詩) 모음>이다. 술지게미와 흙, 그리고 막걸리를 잉크 삼아 벽에 기입했다. 이 재료들은 실시간으로 발효되며 공간을 쿰쿰한 냄새로 채운다. 관객은 공기 중으로 퍼지는 발효 물질을 들이마시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전시의 물질 순환에 편입된다. <지구내장구멍>은 직접 촬영한 푸티지와 AI 생성 이미지를 혼합해 제작됐다. 소화 기관을 플라스틱 관으로 교체한 사례를 모티프로, 인공 통로로 생을 연장한 유기체가 초래할 변화를 상상했다. 꿀렁이는 내장이 AI 기술로 생생하게 재현되지만, 소화 과정은 이질적이고 기이하다. 자막은 입과 항문이 직접 연결된 개체가 음식물을 삼키는 비정상적 소화작용을 반복해 적고, “국수를 영원히 먹는 방법”이라는 농담을 꼬리를 삼키는 뱀 ‘우로보로스’의 순환으로 승화했다. 완벽히 통제된 듯 보이는 AI 또한 각종 글리치를 발생시킨다. 영상의 모든 것이 의도된 ‘소화 불량’이자 출구 없는 루프다.

영상 <지구터널>에는 런던과 서울을 편히 오가기 위해 지구를 관통하는 터널을 뚫겠다는 과학자가 등장한다. 결국 계획은 실패한다. 인도를 찾다 미대륙으로 간 콜럼버스처럼, 터널은 이란에 도착하고 만다. 2002년 미국의 ‘악의 축’ 선언 이후 현재까지 이어진 미·이스라엘 침공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화면에서, 세계를 동서로 양분하고 그것을 횡단하겠다는 욕망은 자조적으로 무너진다.

<대추나무와 구덩이> 대추나무, 사운드 가변크기 2026 뮤지엄헤드 제공

마지막으로 전시장 바깥 연못에 설치된 <대추나무와 구덩이>는 실제 대추나무와 구덩이를 나란히 놓고 사운드를 흘려보낸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의 영화 <체리 향기>(1997)에서 주인공이 직접 판 자기 무덤과 목을 매려고 한 나무를 재구성했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죽음을 막은 것은 우연히 입에 닿은 그 나무 열매였다. 설치작품은 몸을 삼키는 구멍과 몸이 삼키는 열매가 한 장면에 있는 셈이다. 전쟁, 마약, 인간 소외, 기후 위기…, 전 지구적 문제를 꿰뚫는 ‘거대한’ 구멍. 다만 염지혜는 곧장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큐레이터 허호정이 적었듯 “특별한 낙관이나 비관 없이” 삼키고 삼켜지는 운동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끊임없이 무언가를 씹고 뱉어내는 이 기이한 구멍들을 통과하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전시처럼 소화 불량에 전염되고 만다. 이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 그것을 느끼는 것이 해결의 첫 단추는 아닐까.

염지혜 / 1982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학사 졸업. 런던 센트럴세인트마틴 런던 골드스미스대 순수예술 전공 석사 졸업. 금천예술공간(2024), 송은아트스페이스 2021), 대구미술관(2018), 아트선재센터(2015) 등에서 개인전 개최. 서울에서 거주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