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다이내믹 코리아!
가히 살인적인 더위였다. 해가 갈수록 여름 나기가 힘들다. 확실히 인류의 터전 지구가 중증을 단단히 앓고 있다. 기후 위기가 탁상의 공론 차원을 뛰어넘었다. 이쯤이면 재앙에 가깝다. 묵시록의 그림자가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발밑에 떨어진 이 급박한 불길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아트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과연 지구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삼복중에 베니스비엔날레를 다녀왔다. 이번이 14번째 취재다. 매번 프레스 오픈 때 베니스를 찾았다. 세계의 아트 피플이 이 기간에 베니스에 몰린다. 올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편집장이 급작스럽게 출산 휴가를 떠났다. 전력 손실이 워낙 커서, 나까지 비상이 걸렸다. 이란 전쟁이 한창이라 유럽 외유 자체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베니스 취재를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베니스비엔날레를 반드시 기사로 다뤄야 할 책임은 없다. 그러나 미술 전문지가 결코 외면할 수도 없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누가 뭐라 해도 세계 최고의 국제미술전이다. 비엔날레가 당대 미술의 나침판이라면, 베니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한 번이라도 세계 미술의 흐름에 뒤처지면 다음 비엔날레까지 왠지 기가 팍 죽는다. ‘물의 도시’ 베니스의 더위도 만만치 않았다. 햇살을 피해 좁은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다. 하루 1만 5000걸음 이상의 강행군이었다. 프레스 오픈 때보다 전시장은 한산해 관람 여건은 오히려 더 좋았다.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던 국내외 지인들이 그립긴 했다. 이번에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후배 여성 평론가를 반갑게 만났다. 수많은 전시, 그보다 더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현장에서 다 소화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작가, 새로운 양식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관심 대상을 일단 스캔해두는 일이 중요하다. 출장 후의 연구 과제다. 놀랍게도 비엔날레 이후 1, 2년이면 스캔해둔 작가의 작품을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 전문 매체의 지면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다. 마치 구면처럼. 베니스를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이번 비엔날레 좋았냐고. 대답은, 점수를 매길 일이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미술의 흐름을 포착하는 밝은 눈이다. 사실 베니스비엔날레와 같은 세계적인 매머드 행사는 짧은 시간에 제대로 관람하는 일 자체가 고난이다. 더구나 각 전시의 주제나 경향, 시대 정신을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일은 전문가들에게도 엄청난 작업이다. 비엔날레 시스템도 잘 알아야 하고, 동시대미술의 추세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도 비엔날레 보도와 함께 공붓거리, 숙제를 한 아름 끌어안고 오는 셈이다.
서울로 돌아왔다. 더워도 내 집이 제일 편하다. 8월 중순까지 휴가도 가지 않고 그냥 쉬엄쉬엄 놀았다. 밀린 원고도 일단 멈췄다. 아카데미 강의도 9월로 넘겼다. 가끔 탁구로 더위를 날렸다. 이열치열이다. 더위가 누그러지자 미술행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미술관 개관, 미술상 시상식, 개인전 오프닝… 가을 시즌의 서막이 열렸다. 이메일, 유선 전화, SNS로 일정 안내와 확인이 이어진다. 그중에서 십중팔구는 놓친다. 몸이 열 개라도 그 일정을 다 소화하기는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9월을 며칠 앞두고 있다. 미술축제의 달이다. 국제 아트페어 키아프와 프리즈를 시작으로 대규모 미술행사가 대한민국 전역을 물들인다. 가을은 애초부터 미술의 성수기다. 특히 올해는 격년제의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는 해다. 한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비엔날레 강대국이다. 9월에 개막하는 국제 비엔날레만 10여 개다. 수도권에서 경부선, 전라선, 그리고 바다 건너 제주까지 이어진다. 비엔날레 특수에 맞춰 각종 문화 공간에서의 전시나 행사도 줄을 잇는다. 때로는 긴장을 풀고 술잔을 기울이는 나이트 파티도 포함되어 있다. 빡빡한 일정을 얼마만큼 조율하고 소화할지 벌써부터 숨이 찬다. 한국의 맑은 가을 하늘 아래로 지구촌의 아트 피플이 대거 몰려들 것이다.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이 핫플레이스가 됐다. 다이내믹 코리아! 대한민국 미술문화의 수준이 실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미술축제의 홍수에 아쉬움도 없지 않다. 가난했던 시절을 상기하면 배부른 소리지만, 행사가 지나치게 한 시기에 쏠려 있다. 무엇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외화내빈을 경계하자. 화려한 잔치에 걸맞은 내실을 다지자. 한국미술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