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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마음의

페이스갤러리서울,흐엉도딘아시아개인전

2023/08/02

<K.A. 276> 캔버스에 자연 안료, 천연 바인더 122×94cm 2022

<K.A.276>캔버스에자연안료,천연바인더122×94cm2022

베트남 출신 파리지앵 페인터 흐엉 도딘(Huong Dodinh). 그는 내면의 세계를 추상화로 옮긴다. 그가 최근 아시아 첫 개인전 <VIE | VIDE>(7. 7~8. 19 페이스갤러리 서울)를 열고 초기작부터 신작을 아우르는 회화 18점을 공개했다. ‘Vie’와 ‘Vide’는 생기와 공허라는 뜻으로, 두 단어를 병치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암시했다. 도딘 작업의 핵심은 ‘명상’과 ‘동서양의 조화’. 이번 전시는 베트남과 프랑스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은 디아스포라로서 느낀 소외감을 명상으로 승화했다. 78세 마이스터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작업 세계를 이루어낸 도딘의 삶을 먼저 돌아보자.

도딘은 1945년 베트남 속짱(Soc Trang)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도딘이 8살이 되던 해 1차 인도차이나전쟁을 피해 프랑스로 이민을 갔다. 학교에서는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집에서만큼은 베트남 문화를 고수했다. 이는 그가 서양의 미감을 수용하면서도 아시아 미학을 기반으로 삼는 배경이 됐다. 한편 어린 시절에 겪은 두 번의 죽을 고비는, 그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작가는 유년 시절 연못에 핀 연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꽃을 따려다 익사할 뻔했고, 10대에는 영문 모를 병으로 약 7개월간 입원해 코마에 가까운 상태로 지냈다. 그는 일찍부터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진짜 중요한 것은 ‘내면’에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K.A. 269> 캔버스에 자연 안료, 천연 바인더 84×135cm 2022

<K.A.269>캔버스에자연안료,천연바인더84×135cm2022

<Sans Titre> 나무 패널에 종이 98×138cm 1992

<SansTitre>나무패널에종이98×138cm1992

동서양을 잇는 메신저


1965년 도딘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 진학했다. 학부 시절 파리는 68혁명이 한창이었다. “기득권 사회를 향한 저항, 부조리한 대학 입시 체제. 당시 학생들의 분노에 대체로 동의했지만, 폭력을 피해 넘어온 파리에 피바람이 부는 것을 보며 큰 불안에 휩싸였다.” 이 무렵 파리 화단에는 이브 클랭을 필두로 한 누보레알리슴, 앵포르멜, 키네틱아트, 옵아트 등 수많은 미술사조가 연일 등장했다. 폭력으로 물든 프랑스 사회, 전위의 물결이 휩쓸던 화단은 도딘과 맞지 않았다. 시끌벅적했던 대학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며 작가는 전시도, 동료 작가와의 교류도 끊은 채 50여 년간 작업에 몰두했다. 2021년 도딘은 긴 은둔 생활을 끝내고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VIE | VIDE>전은 홀로 정진해 온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세 번째 자리다.

도딘 작업의 첫 번째 키워드는 ‘빛’이다. 빛은 명상을 통해 그가 삶의 경계에서 찾은 인생의 절대적 목표, 정신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이런 주제를 대표하는 연작은 <Sans Titre>와 <K.A.>다. 초기작 <Sans Titre>에는 1993년 모국을 여행하며 본 하롱베이 풍경을 그렸다. 장소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그로부터 느낀 인상의 변화를 담았다. 그는 해수면을 간략한 선으로 추상화했다. 희미하게 빛나는 수평선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한 줄기 빛처럼 붙잡았던 의식을 은유했다.


2000년 이후 이어온 연작 <K.A.>에는 투명도와 밀도로 빛을 표현했다. K.A.(n.144~281)>(2011~23)에는 물감 층을 겹쳐, 레이어 심층에서 색이 배어나도록 연출했다. 표면에 비치는 색은 그가 침잠했던 내면의 깊이를 나타낸다. 한편 은은한 회색은 겉보기에 비슷비슷해도, 실제로는 여러 계열의 무채색을 쌓아 올린 것이다. 최근 도딘은 ‘백운모(muscovite)’를 주원료 삼아 작가 고유의 무채색을 만들었다. 이 재료는 흰색 빛이 감도는 광석으로, 본래 장식에 주로 사용된다. 작가는 발광하는 안료의 성질을 살리기 위해 색의 투과를 방해하는 보존 목적의 코팅도 피했다.

<K.A. 94> 캔버스에 자연 안료, 천연 바인더 122×98cm 2007

<K.A.94>캔버스에자연안료,천연바인더122×98cm2007

<K.A. 88> 캔버스에 자연 안료, 천연 바인더 196×138cm 2007

<K.A.88>캔버스에자연안료,천연바인더196×138cm2007

두번째 키워드는 ‘동서양의 조화’다. <K.A.>에는 기독교와 불교를 융합해 얇은 선과 기하학적 도형을 새겼다. 삼위일체와 7일간의 천지창조를 모티프로 3개의 선에는 균형을, 7개의 선에는 완전함을 담았다. 또 2000년대 제작한 <K.A.(n.8~90)>의 동심원은 불교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원형과 곡선은 한 점으로 돌아오는 순환과 조화를 암시한다. 작가가 재현하고 싶은 대상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 세계다. 그는 솔직한 마음이 있는 그대로 투영되도록,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오직 머릿속의 인상만을 화폭에 곧장 옮긴다. 구체적으로는 내면을 비우기 위해 선을 긋거나 원을 그리는 상상에 집중하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정교한 획을 긋는다.

마지막 키워드는 ‘내면을 반영하는 재료’. 내면의 힘을 강조하는 작품 세계는 이를 담는 작품의 내구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어려서 옻칠로 마감된 베트남 가전을 사용하며 자랐다. 그 덕에 안료를 중첩하면 표면이 단단해지는 성질을 일찍 깨달을 수 있었다. 옻칠의 원리를 적용해 직접 제조한 물감을 여러 겹 덧발라 내구성을 높였다. 또 작가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회화 재료의 약한 보존성에 아쉬움을 느꼈다. 학교에서 접한 유화, 아크릴 물감은 건조되면 쉽게 갈라졌다. 대신, 미술사를 공부하며 접한 템페라와 프레스코가 그의 이목을 끌었다. 오래전 개발된 재료임에도 화학 재료보다 오래가는 성질에 주목했다. 그가 특히 매료된 재료는 물감의 주원료인 ‘광물’과 ‘석재’. 학부 시절 프랑스 남부 도시 그라스(Grasse)와 발로리스(Vallauris)의 도자 장인과 교류하며 지역의 흙에서 색을 내는 안료의 주성분을 찾았다. 집을 짓는 데도 사용했던 흙은 튼튼한 물감을 찾던 도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료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내구성을 넘어 원하는 색과 질감 표현까지 구현하게 되었다.

<K.A. 144> 캔버스에 자연 안료, 천연 바인더 98×98cm 2011

<K.A.144>캔버스에자연안료,천연바인더98×98cm2011

도딘 작업의 재료와 주제를 아우르는 궁극적 목표는 ‘비워냄’이다. 고요한 내면은 균형으로 유지되고, 균형을 이룬 다음에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도딘은 “완전한 자유를 향해, 모든 구속을 비워낸다”라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평가에서 벗어나 긴 세월 작품 발표를 마다하고, 다른 작가와 교류도 없이 자신에게만 몰입한 것은 자유를 위해서였다. 이제야 세상의 빛을 본 그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스스로 ‘동서양을 잇는 메신저가 되겠다’는 것. 자유로이 고향과 터전을 이을 그의 남은 여정이 기대된다. / 주예린 기자

흐엉 도딘 / 1945년 베트남 속짱 출생.

흐엉도딘/1945년베트남속짱출생.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졸업.베니스코레르박물관(2022),파리국립기메동양박물관(2021),포츠담룬케갤러리(2010),파리갤러리리파오후앙(2010),파리크루아시쉬르센생레오나르드예배당(2008),브뤼셀그랜드오리엔트(1999)등에서개인전개최.광주비엔날레(2023),<AsiaNow>(2021),<L’AsieMaintenant>(파리국립기메동양박물관2021)등의단체전참여.

[만료]오운(2024.03.04~03.18)
[만료]화랑미술제(2024.03.04~4.18)
[만료]BAMA(2024.03.04~4.18)
세화미술관(2024.01.31~)
스팟커뮤니케이션(2024.01.24~)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