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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은바다를건너

제주4·3평화기념관,임흥순개인전<기억샤워바다>

2023/11/17

<등대> 설치 전경

<등대>설치전경

임흥순은 한국의 대표적인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 담론에서 소외된 이들의 서사를 설치, 영상, 다큐멘터리 등으로 기록해 왔다. 공장의 여성 노동자 문제를 다룬 <위로공단>부터 일제강점기, 6·25전쟁, 제주4·3사건의 상흔을 기록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까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여성의 관점으로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지금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임흥순의 개인전 <기억 샤워 바다>(9. 16~11. 12)가 열리고 있다. 4·3사건을 겪고 일본으로 밀항한 재일 제주인 김동일(1932~2017) 할머니의 삶을 중심으로 제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자리이다.

임흥순이 4·3사건을 작업 주제로 삼기 시작한 기점은 2009년이다. 당시 제주 여행을 떠나면서 재일 한국인, 디아스포라, 난민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게 됐다. “2009년 2월, 작가들끼리 여행과 답사를 목적으로 제주에 갔다. 그때 김민경 프로듀서의 할머니 댁이 있는 납읍리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4·3사건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후 김민경 프로듀서가 4·3사건을 모티프로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제주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4·3사건의 유족인 강상희 할머니를 만나면서 임흥순의 대표작 <비념>이 탄생했다.

할머니의 옷,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임흥순은 <비념> 이후 4·3사건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던 중 김동일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2015년 한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아티스트 파일: 동행 2015>전(도쿄 국립신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작가는 먼저 단행본 『자유를 찾아서-김동일의 억새와 해바라기의 세월』을 읽으며 김동일의 삶을 접했다. 김동일은 조천중학원 학생으로서 4·3사건의 연락책으로 활동했고, 6·25전쟁을 잇달아 겪으며 한평생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과 시대의 아픔을 피부로 느꼈다. 자유를 찾아 오사카로 밀항해 난민 여성의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항일 운동가 집안의 자손이자 제주항쟁 활동가라는 자부심만은 잃지 않았다. 임흥순은 2015년 도쿄에 있는 김동일의 집을 두 차례 방문해 인터뷰하고, 제주4·3연구소 소장에게 김동일 구술집도 전해 받았다.

<해바라기와 선착장: 2023 김동일 컬렉션> 런웨이 전경

<해바라기와선착장:2023김동일컬렉션>런웨이전경

<기억, 샤워, 바다>전 전경 2023

<기억,샤워,바다>전전경2023

2017년 현대차시리즈 프로젝트로 열린 개인전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김동일의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전시였다. 당시 작가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4·3사건 등을 겪은 할머니 4명을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여기에 김동일이 포함됐다. 김동일은 이 전시를 준비하는 중 세상을 떠났는데, 임흥순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유품 2,000점을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 전시했다.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유품을 가져오기 위해 일본에 갔다. 할머니의 옷을 한 벌 한 벌 정리하고 기록하는데, 문득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할머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할머니 옷’ 하면 떠올리는 칙칙한 이미지와는 다른, 화사하고 장식적인 옷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할머니의 유품을 전시하기로 계획하면서 그것들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했다. 만약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누추하고 먼지 쌓인 상태로 공개되기를 원하셨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세련된 의상실이나 소품실의 콘셉트를 떠올렸다.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모습보다는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면모를 강조하고 싶었다.”

이번 <기억 샤워 바다>전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담론을 연장하는 동시에 확장한다. 전시는 크게 7개의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제주4·3 평화기념관 메인 홀에 설치한 <등대>이다. 김동일이 남긴 알록달록한 뜨개 132점을 천막, 우산, 커튼 등 다양한 형태로 엮어 로비 천장에 걸어두었다. 기념관의 돔 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면 뜨개질 모양대로 빛 그림자가 생기면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번째는 <해바라기와 선착장: 2023 김동일 컬렉션>이다. 53명의 워크숍 참여자가 김동일이 남긴 옷 63벌을 입고 전시 개막식에서 런웨이 퍼포먼스를 펼쳤다. 세 번째 <바다>는 임흥순의 3채널 영상 신작이다. 시인 김시종, 축구선수 안영학, 요코하마미술관 큐레이터 히비노 민용, 비영리 단체 ‘바다’ 회원들, 활동가 이영 등 1세대부터 3세대에 걸치는 재일 조선인 및 재일 한국인의 구술을 기록해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네 번째는 <세월>이다. 김동일의 흑백 사진과 김시종의 시구를 번갈아 배치해 시대의 격랑을 헤치며 살아간 이들의 지난날을 반추했다.

<바다> 3채널비디오 48분 45초 2023

<바다>3채널비디오48분45초2023

<친애하는 흥순> 피그먼트 프린트 50×70cm 2007

<친애하는흥순>피그먼트프린트50×70cm2007

다섯 번째 <옷의 바다>에서는 김동일의 유품을 옷가게처럼 한가득 걸어두었다. 관객은 이곳에서 각자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어보거나 가져갈 수 있는데, 김동일의 옷에 스며든 과거 기억을 우리의 현재 삶과 연결하려는 의도이다. 여섯 번째 <풍경의 틈새에서>는 대합실을 콘셉트로 꾸몄다. 이곳은 여행자와 난민이 국경을 오가며 거치는 임시 공간을 암시한다. 또한 임흥순이 제주 여수 광주 베트남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서 찍어온 사진도 함께 전시했다. 마지막 <말의 바다>는 임흥순과 사회학자 윤여일이 공동 기획한 강연 및 퍼포먼스이다. 강정 평화 활동가 최성희, 기후 평화 행진 기획자 엄문희, 월정리 해녀 김은아, 성산의 조류 관찰자 김예원, 채식과 동물권 표현자 임지인 등 여성 5명이 각자의 이야기를 발언하는 자리이다. 제주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들려준다. / 이현 부편집장

임흥순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원대 회화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더페이지갤러리(201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2017), 엔젤스바로셀로나(2015), 포리아트뮤지엄(2015), 뉴욕현대미술관 PS1(2015)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현재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거주한다.

임흥순은1969년서울에서태어났다.경원대회화과와동대학원회화과를졸업했다.더페이지갤러리(2019),국립현대미술관서울(2017),엔젤스바로셀로나(2015),포리아트뮤지엄(2015),뉴욕현대미술관PS1(2015)등에서개인전을개최했다.현재서울과제주도를오가며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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