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술, 보고 만지고 느껴라!

여성 예술가 그룹전 <다른 공간 안으로>
2026 / 05 / 29

여성 작가의 선구적 실험을 복원한 기획전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5. 5~11. 29)이 리움미술관에서 열렸다. 2023년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를 시작으로 2024년 로마 국립21세기미술관, 2025년 홍콩 M+를 거쳐 3년 만에 서울에 상륙한 대규모 순회전이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마리나 푸글리에세(Marina Pugliese)와 안드레아 리소니(Andrea Lissoni)가 1950~70년대에 걸쳐 ‘환경(ambiente)’이라는 새로운 미술언어를 개척한 11인의 작품을 선보였다. Art는 두 기획자를 만나 이번 전시의 막전 막후를 물었다.

야마자키 츠루코 <빨강> 볼트, 전구, 비닐 혼합 재료 270×360×360cm 1956/1985 야마자키 츠루코 재단 대여, 오사카 LADS 갤러리, 도쿄 타케 니나가와 제공 ©Tsuruko Yamazaki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 뮌헨에서 출발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1956년부터 1976년 사이 여성 작가가 선보인 환경미술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이 20년의 기간은 환경미술사에 있어 어떤 전환점이었는가?
MP 먼저 1956년은 야마자키 츠루코가 <제2회 구타이 미술전>에서 <빨강>을 선보이면서 여성 환경미술의 출발을 알린 해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조각이 바로 그 작업이다. 직육면체 구조물에 새빨간 비닐을 감싸 조명을 틀고, 관객이 작품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구조물을 지면으로부터 일정 높이 띄워 매달았다. 작품 안에서는 붉은 대기에 휘감기는 몰입의 경험을, 밖에서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1976년은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제르마노 첼란트가 <환경/예술. 미래주의부터 보디아트까지>전을 선보인 해다. 이 전시는 환경미술에 역사성을 부여한 최초의 사례다. 동시에 이때부터 ‘환경’ 대신 포괄적 의미의 ‘설치(installation)’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환경이 관객을 직접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에 가깝다면, 설치는 관객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기능한다. 따라서 우리는 환경이 설치로 대체되는 이 시기를 중요한 경계로 설정했다.

— 참여 작가 11인은 각기 다른 문제의식 아래 ‘환경’이라는 형식을 실험한다. 주디 시카고는 부드러운 깃털, 레아 루블린은 폴리에틸렌 튜브(풍선) 등 가벼운 재료로 전통조각의 단단한 재료가 가진 권위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비틀었다. 정강자와 야마자키는 전쟁, 정치 이념의 갈등 등 전후 사회에 도사리던 억압과 불안의 감각을 환기한다. 한편 마리안 자질라, 라 몬테 영, 최정희와 난다 비고는 비물질적 요소인 빛과 관객의 움직임을 극대화해 몰입적 공간을 조성했다. 여러 주제 사이에서도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면?
MP 11인의 작업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이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되찾으려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 1960~70년대 여성 아티스트에게 ‘몸’은 가장 필연적인 주제였다.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 자신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보디아트에만 머물지 않았다. 환경미술은 영속성을 전제한 전통조각과 달리 저렴하고 일상적인 재료로 만들어졌고, 일시적으로 공간을 점유했다가 사라진다. 그렇기에 당시 미술시장에서는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여성 작가는 보다 자유롭게 자신이 상상하고 꿈꿨던 공간을 구축할 수 있었다.
AL 깃털, 안개, 나일론, 플라스틱 등 20세기 중반까지만해도 미술재료로 간주되지 않았던 물질을 사용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는 전통조각의 역사를 전복하는 급진적인 시도이다. 우리는 각 작가의 방대한 커리어에서 한두 점의 환경작업을 뽑아내고, 이를 공시적으로 이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이들의 작업은 연속적인 내러티브라기보다, 특정한 형식이 이 시대에 열어놓는 ‘가능성의 지도’에 가깝기에 여러 층위가 공존한다.

마르타 미누힌 <뒹굴고 살아라!> 천, 스피커, 혼합 재료 270×245× 335cm 1964/2023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레플리카 ©Marta Minujín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환경미술사의 빈틈을 채우다

— 오늘날 ‘몰입형 전시’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나 상업적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고는 한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의 블록버스터 전시와 어떻게 차별화되는가?
AL 전 세계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같은 거장의 작품을 영상 프로젝션을 통해 ‘환경처럼’ 연출하는 몰입형 전시가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잘 알려진 미술사의 서사를 반복할 뿐이다. 작품 해석은 피상적이며, 전시는 상업성과 오락성에 주도된지 오래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목표는 오늘날의 상업적 몰입형 전시가 차용하고 있는 감각적 환경의 역사를 다시 그 본래의 맥락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즉 ‘환경’을 실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미술사로 다시 위치시키는 일이다. 여기서 관객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락적 참여가 아닌 비판적 참여다. 가령 시카고의 <깃털의 방>은 관객에게 부드럽고 몽환적인 쾌락을 선사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왜 조각은 반드시 대리석이나 철처럼 무겁고 견고한 물질로 만들어져 왔는가’, ‘공간은 왜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왔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따라서 이 전시가 유도하는 경험은 관객에게 공간, 재료, 신체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다시 질문한다는 점에서 오락형 블록버스터 전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알고리즘과 스크린에 의해 특정한 곳만 바라보도록 꾀이는 ‘주의의 사회(society of attention)’에 놓여있다. 반면 이 전시는 고정된 시점만을 유도하지 않는다. 관객은 전시장을 누비며 시선을 이동하고, 타인의 존재, 빛과 소리 등으로 이뤄진 공간을 총체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레아 루블린 <침투/배출(플루비오 섭튜날에서)> 폼, 물, 고리, 목재, 밸브, 티셔츠, 파이프, 회전 압축기, TPU 200×200×2,000cm(앞), 275×275×275cm 1970/2023 ©Lea Lublin 사진: 홍철기. 리움미술관 제공

— 솔직한 답변에 감사드린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전시처럼 방대한 리서치와 국제적 협업이 필요한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큐레이터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AL 뮌헨에서 출발한 이번 프로젝트는 현지 미술관에 이미 존재하는 전문성과 지식을 십분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으로 보존연구가다. 보통은 작품의 컨디션을 점검하는 사람 정도로만 여겨지지만, 실상 작품의 재료와 제작 방식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다.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작품을 재구성해야 했던 이번 전시에서 이들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나는 이 방식이 단 하나의 프로덕션 팀이 전 세계를 순회하며 일방적인 기술적 지원을 요구하는 전시 기획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MP 우정과 신뢰다. 리소니와 나는 30년간 친구로 지냈고 함께 공부해 왔기에 서로를 깊이 알고 있다. 한국, 일본, 남미 등 전 세계 연구자와의 네트워크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이 땀 흘려 쌓아온 연구가 하나의 전시에 그치지 않고, 미술을 둘러싼 기존의 서사를 새롭게 쓰며 또 다른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마리나 푸글리에세(왼쪽) /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 예술감독. 런던 테이트모던 수석큐레이터, 밀라노 피렐리앙가르비코카 큐레이터 역임. Photo: Agostino Osio
안드레아 리소니 / 밀라노 뮤데크박물관장. 로스앤젤레스 베르그루엔연구소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