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소수자의 소리

오슬로 뭉크뮤지엄, 키네틱아티스트 김한결 개인전
2026 / 05 / 07

오슬로 뭉크미술관에서 김한결의 개인전 <Shore>(2. 27~5. 17)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뭉크미술관의 신진 작가 플랫폼 ‘SOLO OSLO’의 일환으로, 오슬로 기반 아티스트에게 미술관의 대규모 공간을 전면적으로 커미션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베르겐에서 순수미술, 음악 및 디자인을 전공한 김한결은 소리와 움직임을 결합한 키네틱설치를 통해 기술, 신화, 주변화된 몸 사이의 접점을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는 그 실천을 개별 오브제에서 공간 전체로 확장한 환경 속에서 지각하도록 한다.

<Shore> 나무, 알루미늄, 케이블 혼합재료 900×1,500×550cm 2026 Photo: Tor S. Ulstein / KUNSTDOK, Munchmuseet

10층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더 이상 지상에 있지 않다. 8미터 높이의 공간을 점유한 장소특정적 설치는 관객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낸다. 카펫으로 덮인 바닥은 해저를, 천장에 매달린 구조물은 수면 아래를 유영하는 잔해를 연상시킨다. 굴절된 빛과 방향을 잃은 소리 및 기계적 움직임이 결합하여 하나의 ‘잠수된 세계’를 구성한다. 전시의 핵심인 ‘바다’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제도와 보호에서 밀려난 존재들이 머무는 경계의 공간이다. 작가는 북한 이탈 주민, 거제도 해녀 공동체, 수중 재난 대응 잠수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성했다.

이들의 파편화된 음성, 기계 소음, 파도와 유사한 리듬은 얽히고설켜 이해 불가능한 상태, 혹은 그 이전의 상태를 지속시킨다. 이 지점에서 ‘번역의 실패’를 마주하게 되는데, 한국어 음성과 네온사인의 국문 단어들은 의미를 번역하기보다 오히려 언어에 내재한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관객은 의미를 붙잡지 못한 채 소리와 이미지 사이를 부유하게 되고, 전시는 의도적인 불협화음으로 남는다. 세 개의 목소리는 증언이 끝내 완전히 전달될 수 없다는 조건 자체를 노출한다.

<Shore> 나무, 알루미늄, 케이블 혼합재료 900×1,500×550cm 2026 Photo: Tor S. Ulstein / KUNSTDOK, Munchmuseet

리오타르의 『Le Différend』(1983)에서 제시된 ‘증언 불가능한 것(le différend)’을 상기해 보면, 어떤 경험은 그것을 말로 옮기는 언어 체계 자체가 결여되어 진술되는 순간 이미 왜곡된다. <Shore>전의 음성 역시 발화와 번역을 거칠지언정 결코 동일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전시는 그 간극을 되려 지속시키고 작가의 사운드는 이러한 불가능성을 더욱 증폭한다. 작가는 나무, 금속, 모터 등 물리적 오브제로 소리를 생성하는 기술인 폴리(Foley)를 이용해 사운드 장치를 제작했다. 이 키네틱 조각은 소리를 토해내며 끊임없이 떨리고 뒤틀려 하나의 ‘경련하는 사이보그 괴물’처럼 작동한다. 항구, 충돌, 노동의 감각이 호출되는 듯하지만 특정한 장면을 소환하진 않는데, 인간의 목소리가 의미를 조직하려 할 때 기계의 사운드가 이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서사는 구성되기 직전에 해체된다.

여기서 바다는 탈출의 경로이자 죽음의 장소이며, 동시에 생계의 기반이자 배제의 조건이 된다. 이 맥락에서 조르조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명(nude vita)’을 통해 법적·정치적 보호의 바깥으로 밀려난 삶, 죽음과 생존의 경계에 놓인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몸을 떠올린다. 국경을 넘지 못한 채 사라지는 몸, 생존을 위해 바다에 잠수하는 몸, 타인의 죽음을 수습하는 노동의 몸은 동일한 조건에 있지 않으며, 그 불균등성은 전시 전체를 관통한다.“육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공간”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바다는 고정된 경계를 허용하지 않는 매질이다. 이 모호한 공간에서 김한결은 국가, 언어, 몸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리고 겹치며, 미끄러지는 상태로 본다.

결국 이 전시에서 관객은 의미를 파악하기보다 감각의 층위 속에서 방향을 잃게 되는데, 그 상실의 상태이자 길을 잃는 경험이 작업의 중심이다. 따라서 <Shore>전은 신체를 재배치하는 여러 장치를 통해 감각의 조건을 재구성한다.

바다 건너 소수자의 소리 •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