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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검은바다’로

페로탕도산파크,카라조슬린아시아개인전

2023/05/09

Is This Desire?/The Age of Machines

<IsThisDesire?/TheAgeofMachines>캔버스에아크릴릭,차량용분말페인트183×152.6cm2023

신화와 역사를 비틀어 미국적인 낭만을 탐구해 온 카라 조슬린(Kara Joslyn). 그가 페로탕 도산파크에서 개인전 <Please Throw Me Back in the Ocean>(4. 5~28)을 열고 신작 회화 10점을 공개했다. 작가는 오래된 종이 공예품에서 신화적 알레고리를 상상한 정물화, 인물화 연작을 선보여 왔다. 차량용 분말 페인트를 아크릴릭에 섞는 기법으로, 단색조 회화에 홀로그램 효과를 입혀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환영 세계를 그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나고 자란 샌디에이고 해안을 배경 삼아, 은은하게 빛나는 검은 바다에 감정, 무의식, 잃어버린 낙원을 투영했다.

1983년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나 미국 대도시에서 성장한 조슬린에게 아메리칸드림은 ‘옛것이 된 낭만’이다. 작가는 ‘미국적인 풍물’을 뜻하는 아메리카나(americana)를 염두에 두고 1950~70년대 사진에 주목했다. 조개껍데기, 나침판, 인형, 갈고리와 같이 핵가족이 형성되며 가정집을 장식한 조각품 이미지, 대량 생산된 상품의 전단 등. 이 시기 사진에는 급속도로 성장한 미국의 경제사가 포착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뿌리내린 소비 자본주의 문화 정체성에는 황금기 미국의 낭만적 정취가 배어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후 아메리칸드림의 잔재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선은 양가적이다. 조슬린은 기후 위기, 신냉전, 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지금, 고리타분해진 낭만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호시절에 향수를 느낀다.

Second Star to the Right, and Straight on ‘til Morning

<SecondStartotheRight,andStraighton‘tilMorning>캔버스에아크릴릭,차량용분말페인트84.1×58.7cm2023

오래된 미래, 미국적인 낭만

조슬린의 작업에는 종이 인간 ‘휴머노이드(Humanoid)’가 등장한다. 신작 <Love, Peace and Harmony? Oh Very Nice, Very Nice. But Maybe in the Next World.(The Decollation of Alan Watts/Grooving on the Eternal Now as Sacrament)>(2023)에는 1950~70년대 캘리포니아에 동양 철학을 도입한 히피족의 정신적 지주 앨런 왓츠(Alan Watts)의 이야기를 소환했다. 그림 속 왓츠는 주류 문화를 바꾸고 참수당한 세례자 성 요한처럼 묘사된다. 성 요한의 죽음은 히피 정신을 상실한 시대상을 나타낸다. 왓츠가 전파한 요가와 명상은 당시에는 생소했지만, 이제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주류 소비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성경 속 요한은 부패한 권력에 맞서다 참수를 당했지만, 조슬린이 그린 왓츠는 히피의 아이콘인 장미를 건네받는다. 휴머노이드가 사는 종이 세계는 현실의 거울이다. 바로크 회화 속 성 요한에 실존 인물을 빗댄 알레고리는 낭만이 사라진 미국의 현주소를 비춘다.

Love, Peace and Harmony? Oh Very Nice, Very Nice. But Maybe in the Next World.

<Love,PeaceandHarmony?OhVeryNice,VeryNice.ButMaybeintheNextWorld.(TheDecollationofAlanWatts/GroovingontheEternalNowasSacrament)>캔버스에아크릴릭,차량용분말페인트81.4×117cm2023

작가는 환영이 자아내는 회화의 호소력을 믿는다. 그는 흑백 사진과 종이가 접힌 자국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래픽 이미지처럼 편집해 화폭에 옮긴다. 작가는 총 네 가지 방법으로 미국인의 노스탤지어를 환기한다. 첫째, 검은 바탕에 흰 종잇조각을 그리고, 모서리와 접힌 선을 따라 검은색 물감층을 두껍게 남겨 날카로운 경계를 강조한다. 전통 유화 기법이 빛을 받는 부분에 흰 물감을 겹겹이 쌓아 명암을 표현한다면, 작가는 어두운 부분만 검은 아크릴릭으로 칠하고 밝은 면은 캔버스 바탕색을 그대로 남겼다. 둘째, 차량용 분말 페인트를 에어브러시로 분사해 홀로그램 효과를 낸다. 또, 어떤 부분에는 안료를 집중적으로 도포해 푸른빛을 주고, 가벼운 종이가 금속처럼 보이도록 착시를 일으켰다. 셋째, 카라바조의 명암법과 바니타스 정물화의 구도를 차용한다. 사물이나 인물 정면에 사선의 강한 빛을 드리워 연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지막으로, 작품 제목에 노래 가사를 인용하거나 음악적 특징을 활용한다. 갈고리를 그린 작품 <[Hook] Repeat This Hook Line, over and over, Until You’ve Got It Memorized>(2023)는 제목에 후렴구를 반복해 중독성을 만드는 ‘훅(hook)’의 기법을 서술했다. 인트로 트랙, 발라드, 댄스 등으로 앨범을 완성하듯, 작가는 그림 제목으로 서사를 만들어 관객에게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를 준다.

Hook

<[Hook]RepeatThisHookLine,overandover,UntilYou’veGotItMemorized>캔버스에아크릴릭,차량용분말페인트160×58.6cm2023

조슬린은 레코드 광이자 DJ로도 활동했다. 그는 자신을 ‘낭만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오늘날 낭만주의가 살아있다면 “역경에 맞서는 큰 결심과 상상”이리라 말하며, 이를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미국의 ‘잃어버린 낙원 신드롬’에는 영원히 오지 않을 달콤한 미래를 기다리는 열망이 녹아있다. 작가는 아메리카나의 이면, 무의식과 내면의 욕망을 검은 물감으로 그린다. 레버를 돌리자 장난감 상자 밖으로 튀어나온 종이 인형의 손은 무의식에 묻혀 있던 발칙한 욕망을 자극한다. 검은색은 작가의 고향인 샌디에이고 바다이자 무중력의 우주, 낭만 너머의 탐욕을 상징한다.작가는 어두운 허공에 별처럼 떠있는 조각을 즐겨 그린다. 특히 출품작 <Nope(After Magritte and Peele)>(2023)에는 기하학적인 파도 위로 거대한 꽃 조각이 떠올랐는데, 제목이 말해주듯 마그리트의 작품 <피레네의 성>(1959), <이미지의 배반>(1929)의 구도를 차용했다. 작가는 초현실주의 미술사를 그림에 끌어들이며 현실을 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조슬린의 회화에는 경계가 없다. 수평선을 기준으로 하늘과 바다가 서로를 비추며 닮듯, 그림 속 바다는 현실과 심연을 잇는 연결고리다.

NOPE

<NOPE(AfterMagritteandPeele)>캔버스에아크릴릭,차량용분말페인트183×152.6cm2023

Cracked Actor

<CrackedActor>캔버스에아크릴릭,차량용분말페인트183×228.6cm2023

정리하자면, 조슬린의 회화는 ‘레트로 퓨처리즘’이다. 작가는 과거의 향수를 미래적인 그래픽 이미지로 구현하고, 모순적인 개념을 조합해 화면 너머의 진실을 포착한다. 미술사와 신화적 도상을 차용해 알레고리를 만들고, 휴머노이드의 서사에 현실을 반영한다. 또 연극적인 명암과 홀로그램 효과로 고전 이미지에 광택을 더해 모순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작품 제목에 노래 가사를 인용하며 세계관을 종합한다. 달빛처럼 푸른 반짝임이 검은 바다에 일렁이며 조슬린의 그림에는 환상적인 공기가 흐른다. “내게 회화는 호기심과 두려움의 바다이다. 나는 그곳으로 끝없이 몸을 내던진다.” 그의 바다에는 미국인의 이상과 현실, 시대적 애환을 넘어서는 강한 ‘낭만과 믿음’이 넘실거린다. / 주예린 기자

Kara Joslyn

카라조슬린/1983년샌디에이고출생.캘리포니아예술대회화전공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시각예술석사졸업.페로탕뉴욕(2022),로스앤젤레스M+B(2021,2019),로스앤젤레스보조맥(2018),시카고LVL3(2017)로스앤젤레스마운틴워싱턴유르트(2016)등에서개인전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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