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온기, 여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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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캔버스에 유채 130.3×130.3cm 2023
화가 이제는 20년간 한국 사회의 이면과 여성 초상을 그려왔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순간을 포착하고, 작은 힘들이 모여 만든 큰 연대를 꿈꾼다. 최근 에이라운지에서 이제의 아홉 번째 개인전 <아직 약간의 빛>(3. 10~4. 1)이 열렸다. ‘빛’을 주제로 신작 및 근작 풍경, 인물, 정물화 13점을 선보였다. 되돌아보면 ‘빛’은 이제의 그림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 시작은 2005년 첫 개인전 <우리의 찬란한 순간들>(조흥갤러리)이다. 작가는 이 데뷔전에 서울 금호동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고지대에서 내려다본 도로, 닭장 같은 아파트, 눈 내린 운동장, 한적한 금호터널, 낡은 주택과 흙먼지 폴폴 날리는 공사 현장…. 광주에서 태어난 이제는 서울로 올라와 20년간 거주한 금호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한낮의 ‘찬란한 순간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2009년 개인전 <꽃배달>(갤러리킹)로 넘어오면 작가와 피사체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다. 높고 먼 곳에서 대상을 바라봤던 그는 이제 땅을 딛고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시점의 이동은 곧 신체의 움직임. 관망하던 자세에서 개입하는 태도로 변했다. 이 시기 작가는 <등 다는 사람> 연작으로 전봇대를 수리하거나 샹들리에를 설치하는 노동자의 몸짓에 주목했다.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 그림자처럼 살아가지만, 이들의 손을 거쳐 전기가 조명의 빛이 된다. 작가는 <등 다는 사람>의 윤곽선을 연노랑으로 덧칠해 전기가 흐르듯 은은한 발광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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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기억> 캔버스에 유채 60.6×50cm 2022
최초의 밤, 최초의 아침
2010년 네 번째 개인전 <지금, 여기>(OCI미술관)는 이제 예술세계의 전환점이자, 막 서른을 넘긴 청년 작가의 투지를 보여준 자리였다. 부지런한 사생과 얌전한 색조로 나아갈 방향을 조심스레 탐색하던 그는 과감한 생략, 높은 채도, 거친 붓질로 조형 언어를 갱신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두 가지 형상은 ‘재개발’과 ‘여성’이다. 2005년 금호동 연작도 재개발 현장을 그린 작품이었지만, 아기자기한 뒷골목은 황량한 흙더미, 깨진 돌과 팬 땅, 괴수 같은 포클레인으로 뒤바뀌었다. 하지만 금호동과 다르게 작가는 이제 현실의 ‘앞’이 아니라 ‘안’에 서있다. <너의 노래, 지혜>(2010)는 삭막한 공사장 한가운데서 호기롭게 웃통을 벗은 자화상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살갗은 무르고 연약하지만, 무표정으로 정면을 노려보는 눈빛에는 굳은 의지가 서려있다. 그 주변에는 또래의 여성들이 함께 웃고 노래하고 기타 치며 서로의 ‘옷’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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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캔버스에 유채 53×45.5cm 2023
2011년 이제는 <최초의 밤> 시리즈를 발표했다. 인물이나 사물의 부분을 확대하고 사실 묘사를 최소화해 추상성을 한껏 끌어올렸다. 어둡고 음울한 색, 정돈되지 않은 붓 터치는 ‘밤’이라는 심리적 상태를 표상한다. 하지만 ‘최초의 밤’이 있다면 이어서 ‘최초의 아침’이 찾아올 터. 2014년 개인전 <온기>(갤러리조선)가 바로 그 시간이다. 초저녁, 한밤, 새벽이라는 배경은 <최초의 밤>과 같지만, 작가는 그 밤을 견디는 불빛을 그림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퇴근길 노동자의 시야를 밝혀주는 <퇴근>(2014), 모닥불을 둘러싸고 ‘불멍’을 때리는 <온기>(2014),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심야 포장마차 <서울의 달>(2014) 등이다. 이제에게 ‘빛’은 언제나 어둠 속의 빛, 밤을 넘어 찾아오는 아침이다. 이후 2015년 개인전 <폭염>(갤러리버튼)에서 원전 사태, 세월호 참사, 싱크홀 등 사회 문제를 불쾌한 ‘폭염’에 빗댄 작가는 2017년 ‘여성의 연대’로 관심사를 넓혀 개인전 <손목을 반 바퀴>(갤러리조선)를 개최했다. 당시 그림에는 ‘토기’라 명명된 둥그런 사물이 자주 등장했다. 크지 않지만 한 손에 쥐기는 애매하고, 단단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깨질 것 같지도 않은 토기들. 작가는 이 토기에 뚫린 작은 구멍을 ‘입’이라 부르며 가슴, 겨드랑이, 가랑이에 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사물에 뚫린, (기능을) 알 수 없는 구멍에서 흘러나올,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비물…. 애브젝트아트와도 맞닿아 있는 이 ‘입’들은 지금 사회가 여성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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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약간의 빛> 캔버스에 유채 53×45.5cm 2023
에이라운지에서 열린 이번 개인전은 지난 20년간 이제의 발자취와 나란히 볼 때 더 큰 의의를 지닌다. 동네 재개발 풍경에서 출발해 거대한 재난을 인식하고 여성으로 향하기까지, 이제는 늘 사회의 짙은 어둠에서 반딧불이 같은 미약한 빛을 발견해왔다. 그래서 전시명 또한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약간의 빛’이다. 전시의 출품작 면면을 살펴보면 크게 인물화와 풍경화로 나뉜다. 먼저 <디너>(2023)는 몇 해 전의 집들이를 묘사한 작품이다. 맛깔스러운 음식이 놓인 식탁을 중심으로 익명의 인물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다. 이들 머리 위에 놓인 동글동글한 조명은 저녁 식사 자리를 더욱 평온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이끈다. <온기>(2022)는 얼핏 분홍빛 추상화로 보이지만, 가장자리에 불쑥 튀어나온 세 명의 발이 캠프파이어 장면을 연상시킨다. <온기>와 배경이 비슷한 <무제>(2022)에서는 손전등을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이 길을 잃은 관객에게 이쪽으로 따라오라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반면 <국도>(2022~23)는 안개가 자욱하거나 폭풍우가 쏟아지는 날 차도를 그린 풍경화 연작이다.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뭉개진 화면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가로등만이 방향을 제시해 준다.
정리하자면 이제에게 ‘빛’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있다. 첫째, 작품의 주제. 작가는 재개발, 세월호, 싱크홀, 여성 등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캔버스에 소환하고, 어두운 시대의 얼굴을 조명한다. 둘째, 작업의 원동력. 이제의 그림에는 가족, 친구, 여성이 모여 연대를 형성한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곁을 내어주고 함께 춤추면서 온기를 공유한다. 셋째, 화가의 태도. 사실적 재현에서 추상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회화의 비전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때로는 다른 매체와 장르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오늘의 회화가 확장될 가능성을 찾는다. 그에게 빛은 과거를 치유하는 도구이자, 현재를 바꾸는 수단이며, 미래를 개척하는 방법이다. 이제는 빛을 그린다. 아니, 빛으로 그린다. / 이현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