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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조각의역습

아트스페이스보안3,신진작가이유성개인전<카우보이>

2023/09/11

<약사여래입상> 석고 붕대에 소민경의 드로잉, 나무 40×45×165cm

<약사여래입상>석고붕대에소민경의드로잉,나무40×45×165cm

어두컴컴한 전시장에 새하얀 군상이 빛나고 있다. 유적지 발굴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닥에는 갑옷투구를 입은 사람이 누워있다. 가까이 가니 이 인체상들은 모두 ‘반쪽’이다. 고대 이집트 조각을 닮은 남성 부조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신부도 겉모습만 온전할 뿐 뒷판과 속이 뻥 뚫렸다.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은 ‘인물조각’은 작가 이유성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가 아트스페이스보안3에서 4년 만의 개인전 <카우보이>(7. 28~8. 20)를 열었다. 석고 붕대로 제작한 인물상 5점과 알루미늄 파편으로 작가의 몸을 본뜬 자소상 1점을 선보였다.


껍질과 봉합의 방법론


이번 전시에는 캐스팅한 인물조각을 시도했지만 사실 이유성의 출발점은 회화였다. 초기 작가의 관심은 ‘프레임’이었다. 형식적으로는 회화의 프레임인 캔버스와 패널, 주제적으로는 내용을 담는 틀이라는 의미에서 사물의 ‘몸(body)’이 중요했다. 첫 개인전 <플로피 하드 컴팩트>(갤러리175 2016)에는 플로피 디스크, 클라우드 등의 저장 장치를 주제로 텍스타일과 회화를 선보였다. 메모리를 압축해 가상 데이터로 보관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인식을 역전해 장치의 외형을 회화로 재현했다.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를 재고한 예술적 시도였다.

두 번째 개인전 <제인>(위켄드/투더블유 2019)에는 부조와 환조를 함께 전시했다. 첫 전시에서 추상적인 관념인 ‘메모리’와 ‘보디’를 다뤘다면, 이 전시에서는 주제 의식이 ‘실제 인물의 삶과 몸’으로 구체화되었다. <제인>은 이유성이 회화에서 조각으로 매체를 전환하는 과도기적 전시였다. 당시 작가는 부조를 ‘벽에 거는 회화’라고 불렀다. 손에 익은 회화의 형식을 응용해 캔버스와 패널의 나무 프레임에 글자와 기호를 새겼다. 환조는 신체 일부에 공산품을 결합한 형태로 선보였다. 작가는 소비 사회 속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하이브리드 신체’로 은유했다. 이처럼 동시대의 시스템을 관찰해 온 작가는 점차 인간에서 ‘인체’로 관심을 모은다.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와 네 개의 질문을 던져보자. 먼저, 왜 인체일까? 이유성은 조각을 시작한 후 인체는 ‘은연중 회피한 주제’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인체상은 한 재료를 연마할 때 가장 심화 과정으로 다룬다. 해부학적으로 구조가 복잡하고 초심자에게는 움직이는 사람을 관찰해 구현하는 게 정물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전까지 선보인 조각에도 온전한 형태의 인체는 없었다. 즉, 직립할 수 있는 전신상에 도전한 신작은 페인터 출신인 그가 새로운 과제와 정면 승부한 결과물이다.

<계곡> 석고 붕대, 철사, 실 40×55×165cm 2023

<계곡>석고붕대,철사,40×55×165cm2023

<신부> 석고 붕대에 철사, 털실, 나무 40×44×184cm 2023

<신부>석고붕대에철사,털실,나무40×44×184cm2023

다시 이번 전시로 돌아와 네 개의 질문을 던져보자. 먼저, 왜 인체일까? 이유성은 조각을 시작한 후 인체는 ‘은연중 회피한 주제’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인체상은 한 재료를 연마할 때 가장 심화 과정으로 다룬다. 해부학적으로 구조가 복잡하고 초심자에게는 움직이는 사람을 관찰해 구현하는 게 정물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전까지 선보인 조각에도 온전한 형태의 인체는 없었다. 즉, 직립할 수 있는 전신상에 도전한 신작은 페인터 출신인 그가 새로운 과제와 정면 승부한 결과물이다.

이유성은 신체를 사물의 집합체로 보고 ‘껍질’과 ‘봉합’의 방법론을 도입했다. 사물을 조립하듯 신체를 다양한 면으로 나눠 결합했다. 과거에는 사물과 오브제를 붙여 ‘사물화된 인간’을 조각했다면, 이번 전시에는 따로 제작한 신체의 파편을 겹치고 꿰매 전신상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이 꿰맬 수 있는 조각의 재료는 무엇일까? 답은 바로 ‘석고 붕대’다. 원래 석고 붕대는 대형 캐스팅 작업을 하기 전 간이 캐스팅에 사용하는 재료다. 취약한 내구성 때문에 대개 조각의 주재료로는 잘 선택하지 않는다. 반면 이유성은 석고 붕대의 성질을 역이용했다. 피부에서 떼어낸 석고 조각은 굉장히 얇아 표면에 살과 근육의 형태가 정교하게 찍힌다. ‘살아있다’는 흔적을 드러내기에는 오히려 무른 성질이 적합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얼핏 단단하고 온전한 인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속 빈 강정, 그의 말을 빌리면 ‘유령적 원형’에 불과하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총 6점의 인물상이 등장했다. 이들은 누구인가? 신체로 관심을 좁혔지만 여전히 이유성의 작업 세계는 동시대적 시스템의 패턴을 추적한다. 먼저 <약사여래입상>에는 현대인을 질병에서 구원해 줄 부처를 상상했다. 과거에는 서민들이 작은 질병에도 약을 구하지 못해 억울하게 죽었다면, 오늘날 사회는 너무 손쉽게 약을 접한 부작용으로 병들어 있다. “21세기에 약사여래가 온다면 각종 약에 중독된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대신 약을 섭취해 주는 존재가 아닐까?” 이유성은 작품에 생기를 더할 방법을 궁리하다 소민경 작가의 세포 같은 드로잉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2021년 이인전 <대사관>(카다로그)을 함께한 인연으로, <약사여래입상>의 제작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소민경은 시체처럼 말라버린 조각의 살갗에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는 지팡이와 뱀을 그리고 척추와 혈관을 강조하는 색점을 찍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유성 개인전 <카우보이> 전경 2023 아트스페이스보안3

이유성개인전<카우보이>전경2023아트스페이스보안3

<Dandelion Acceleration> 나무, 천, 알루미늄 50×60×102cm 2020 

<DandelionAcceleration>나무,천,알루미늄50×60×102cm 2020

알루미늄 조각 <달걀껍질>은 출품작 중 유일하게 작가 자신의 몸을 캐스팅한 작품이다. 그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동시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관찰의 대상임을 밝힌다. 한편 알루미늄은 메탈릭한 질감과 대비되는 가벼운 무게가 특징으로, 이유성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캐스팅하기 간편해 선택했다. 이런 이유로 <달걀껍질>은 다른 작품보다 파편 간의 연결이 성글고 표면이 투박해 온전한 몸과 거리가 멀다.


마지막으로 그는 왜 사물 같은 신체를 조각할까? 작가에게 조각은 현실을 넘어 인체를 신비화하는 매체다. 인체와 다르게 조각은 혼이 없지만, 그로써 생사의 굴레에 예속되지 않는다. 그는 동서양 미술사에 등장한 고전 인체조각을 모티프로 두고 고민했다. 다비드상, 약사여래상, 데스마스크, 미라의 역설적인 지점이 마음에 걸린 것. “조각사의 위상이 산 사람보다 사물을 더 신성화해 쌓은 유산의 탑 같았다.” 이유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보다 사물을 우선하는 조각가의 태도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는 고민 끝에 <카우보이>라는 전시명을 지었다. 카우보이는 ‘강인한 탐험가’라는 인식과는 반대로 실상 서부 개척 시대의 부적응자였다. 이유성은 조각의 모순에서 방황하는 카우보이의 그림자를 봤다. <카우보이>는 이유성의 세 차례 개인전 중 가장 진지한 전시다. 그는 예쁜 걸 만드는 일이 제일 쉬워진 세상, 피상적인 감각에 대한 반기가 지금 창작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껍질 아래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태도, 여기 이유성 작품의 핵심이 녹아있다. / 주예린 기자

이유성 / 1989년 서울 출생. 홍익대 회화과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 위켄드/투더블유(2019), 갤러리175(2016) 등에서 개인전 개최. <Yolk>(실린더2 2023), <Memory of Ribs>(N/A 2022), <대사관>(카다로그 2021), <트랜스포지션>(아트선재센터 2021), <크리스탈 스크래치>(실린더 2021), <나메>(뮤지엄헤드 2020),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하이트컬렉션 2020), <장식전>(캔파운데이션오래된집 2020) 등 단체전 참여.

이유성/1989년서울출생.홍익대회화과한국예술종합학교조형예술과전문사졸업.위켄드/투더블유(2019),갤러리175(2016)등에서개인전개최.<Yolk>(실린더22023),<MemoryofRibs>(N/A2022),<대사관>(카다로그2021),<트랜스포지션>(아트선재센터2021),<크리스탈스크래치>(실린더2021),<나메>(뮤지엄헤드2020)단체전참여.

[만료]오운(2024.03.04~03.18)
[만료]화랑미술제(2024.03.04~4.18)
[만료]BAMA(2024.03.04~4.18)
세화미술관(2024.01.31~)
스팟커뮤니케이션(2024.01.24~)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