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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세계‘뒤집기’

갤러리바톤,젊은화가이재석신작개인전

2023/09/06

<하늘과 바람과 별>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9×112.1cm 2023

<하늘과바람과별>캔버스에아크릴릭193.9×112.1cm2023

이재석은 현실의 사물을 재조합해 초현실적인 풍경을 그린다. 잘린 신체, 기하학적 도형, 주변 자연물을 낯설게 배치해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가 갤러리바톤에서 개인전 <극단적으로 복잡하나 매우 우아하게 설계된>(8. 23~9. 27)을 열고 신작 회화 13점을 공개했다. 출품작은 크게 세 가지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나무, 텐트, 파도이다. 하나의 전시 주제를 설정해 작품을 선별하기보다 이제까지 해온 작업을 다양하게 펼쳤다. 전시명은 얼핏 장황하게 느껴지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잘 요약해 주는 문장이기도 하다. 온갖 요소가 ‘극단적으로 복잡’하게 병치되어 있지만, 동시에 ‘매우 우아하게 설계된’ 화면! 단단한 형태감과 절제된 필치가 특징인 이재석의 그림은 한마디로 ‘쫀쫀하다’. 작가는 어떤 여정을 거쳐 지금에 도달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


대전 토박이인 작가는 유년 시절 인쇄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때는 만화가를 꿈꾸며 입시를 준비했지만, 결국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지금의 화풍이 조금씩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한 기점은 2017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과학과 예술의 컬래버레이션을 주제로 열린 기획전 <팝업랩>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작가는 토막 난 인체와 기계 부품을 마치 제품 사용 설명서 도안처럼 평면적으로 배열한 회화를 선보였는데, 이 작업에 영감을 얻어 ‘신체와 사물의 결합’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집필했다. 이어서 그는 2018년 대전비엔날레에서 ‘사이보그 퍼포먼스’의 대표 작가 스텔락의 작품을 보면서 변형된 신체, 확장된 신체에 관심을 크게 기울였다.

2018년 이재석은 대전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M2에서 공식적인 첫 개인전 <비인간적인>을 가졌다. 호젓한 자연을 배경으로 절단된 손과 몸통이 붉은색 총 부품과 합체되어 있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듯한 포즈의 해골을 그린 그림이 출품되었다. 모두 ‘신체와 사물’이라는 주제를 심화한 결과물로서, 이러한 형상은 2020년 갤러리밈 개인전 <정렬된 세계>까지 이어지며 초기 작업 스타일을 구축해 갔다. 이때 해골은 역사적인 정물화의 메멘토 모리로 해석되기 쉽지만, 그보다 이재석의 작업 주제를 상징하는 소재로 선택됐다. “해골은 살아있는 사람이 죽었을 때 드러난다. 그래서 신체가 되기도, 또 사물이 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의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것이다.”

2020년은 이재석의 시그니처 도상 ‘텐트’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이던 시절, 그는 동시대상을 어떻게 작업에 투영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직접 겪은 사건에서 새 작업을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 ‘기억 주머니’를 뒤적이다, 군대에서 익숙하게 보던 텐트가 번쩍 생각났다. 전국 어디에나 천막형 선별 검사소가 늘어서 있기도 했고, 또 실내와 실외 구분이 엄격한 분위기도 두루 반영하는 소재였다. 이후 작가는 녹색과 흰색 천막을 주요 모티프 삼아 작업 전환을 시도했다. 군용 텐트를 반복해 그리면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 읽히기도 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주제는 여전히 ‘신체’였다. 이재석에게 텐트의 천은 피부, 철근은 뼈대, 밧줄은 혈관이었다.

<별자리_2>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9×112.1cm 2023

<별자리_2>캔버스에아크릴릭193.9×112.1cm2023

<연결을 위한 구성> 캔버스에 아크릴릭 193.9×112.1cm 2023

<연결을위한구성>캔버스에아크릴릭193.9×112.1cm2023

2020년은 이재석의 시그니처 도상 ‘텐트’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이던 시절, 그는 동시대상을 어떻게 작업에 투영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직접 겪은 사건에서 새 작업을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 ‘기억 주머니’를 뒤적이다, 군대에서 익숙하게 보던 텐트가 번쩍 생각났다. 전국 어디에나 천막형 선별 검사소가 늘어서 있기도 했고, 또 실내와 실외 구분이 엄격한 분위기도 두루 반영하는 소재였다. 이후 작가는 녹색과 흰색 천막을 주요 모티프 삼아 작업 전환을 시도했다. 군용 텐트를 반복해 그리면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 읽히기도 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주제는 여전히 ‘신체’였다. 이재석에게 텐트의 천은 피부, 철근은 뼈대, 밧줄은 혈관이었다.

최근 그의 작업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2022년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 입주하며 시골 풍경을 자주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캔버스의 팔 할을 차지하던 텐트를 걷으니, 그 뒤로 쭉 뻗어있는 자연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이번 개인전은 그 새로운 실험의 양상을 한눈에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제 전시에 출품된 신작을 세 가지 시리즈별로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전시장의 벽에 일렬로 걸린 ‘나무’가 있다. 작가는 창작촌 뒷산을 산책하다 우연히 죽은 나무를 발견하고, 이를 작업에 소환해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우리는 부피가 있는 사물을 보면 생명이 있다고 느낀다. 통통한 벌레를 보고 무서워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죽은 나무에 커다란 몸을 주고, 팔다리처럼 뻗어나오는 잔가지로 의인화하듯 표현했다.” 다음으로 ‘텐트’ 시리즈는 2020년부터 진행해 온 텐트 그림의 연장선이다. 기존의 산봉우리 같은 텐트를 과장, 변형해 조형적 원숙미를 더했다. 팽팽히 당겨진 천, 천을 지탱하며 균형 잡는 철 골조는 텐트라기보다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파도’는 ‘정렬’을 주요 개념어 삼은 시리즈이다. 이재석에게 정렬의 의미는 자연 에너지부터 사회 구조까지 폭넓게 걸쳐있다. 태양, 달, 지구가 일렬을 이루는 개기 일식, 유사한 패턴으로 작동하는 사회, 반복되는 역사의 메커니즘…. 그에게 정렬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다.

신체에서 출발해 자연을 탐구하기까지, 이재석의 전작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바로 ‘경계’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 해골, 안과 밖의 경계로서 텐트,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로서 자연물. 또 작가는 캔버스 뒷면에 안료를 덧칠하고 앞면에 배어나도록 하는 기법으로 건조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작업 과정에서의 ‘앞면’이 그림을 완성한 후에는 ‘뒷면’이 되는 것이다. 이재석이 바라보는 세상은 고정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경계를 넘어 순환한다. 죽은 나무에 생명을 주고, 안과 밖이 무의미해진 텐트를 상상하며.

이번 신작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시각 장치가 있다. 화면 곳곳에 반짝이는 하얀 별이다. 작가는 천안에 정착한 이후 하늘을 수놓은 별을 보며 경외심을 느꼈다. 그전까지 알던 별이 빛나는 점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자연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게 됐다. 밤하늘의 별을 찾고 별자리를 그리는 천문학자의 태도와 이미지를 모으고 형상을 창작하는 화가의 행위를 겹쳐보았다. 지구에서 보이는 별이 사실은 수만 년 전에 죽은 별이라고 하듯, 이재석은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 넓은 관점에서 세계의 이면을 주시하려 한다. 아마 수만 년 떨어진 어느 별에서는 그가 그린 죽은 나무가 아직 살아있는 존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 이현 부편집장

<허상> 캔버스에 로프, 아크릴릭 193.9×112.1cm 2023

<허상>캔버스에로프,아크릴릭193.9×112.1cm2023

이재석 / 1989년 대전 출생. 목원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챕터투(2023), 서울시립미술관 세마창고(2021), 학고재디자인프로젝트스페이스(2021), 갤러리밈(2020), 대전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M2(2018) 등에서 개인전 개최. <히스테리아>(일민미술관 2023), <수집된 풍경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2022), <코쿤2020: 스쳐 지나간다> (스페이스K 과천 2020), <Next Code 2019>(대전시립미술관 2019) 등 단체전 참여.

이재석/1989년대전출생.목원대서양화과동대학원석사졸업.챕터투(2023),서울시립미술관세마창고(2021),학고재디자인프로젝트스페이스(2021),갤러리밈(2020),대전이응노미술관신수장고M2(2018)등에서개인전개최.<히스테리아>(일민미술관2023),<수집된풍경들>(광주시립미술관하정웅미술관2022),<코쿤2020:스쳐지나간다>(스페이스K과천2020),<NextCode2019>(대전시립미술관2019)단체전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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