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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조각내는회화

리만머핀서울,미국화가로리엘벨트란국내개인전

2023/12/14

<OB Atmosphere(interrupted)> 패널에 라텍스 페인트 101.6×228.6cm 2023

<OBAtmosphere(interrupted)>패널에라텍스페인트101.6×228.6cm2023

베네수엘라 출신 미국 화가 로리엘 벨트란(Loriel Beltrán). 그가 리만머핀 서울에서 개인전 <완전한 붕괴 그 이면에 남는 것>(11. 9~12. 23)을 열고 신작 회화 7점을 공개했다. 작가의 관심사는 재료와 색채, 회화와 조각의 관계다. ‘깨진 추상화’에 현대 사회의 분열된 시스템을 담았다. 그를 만나 작업 세계의 핵심을 물었다. / 주예린 기자

― 당신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나 15살에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했다. 고등학생 때 미술을 접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개인전을 열었다. 일찍이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계기는?


Beltrán 어릴 적 베네수엘라 사회는 무척 불안정했다. 차베스 정권 집권기에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혼란을 피해 마이애미로 이사하며 우리 가족도 터전을 옮겼다. 당시엔 고향을 떠나는 게 싫었지만 마이애미는 내 예술인생을 열어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여기서 예술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디자인, 건축, 파인아트를 두루 접했다. 이때 ‘마음껏 창작할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되겠다’고 직감했다. 그렇게 작업에 매진해 여기까지 왔다.

<부서진 화면> 패널에 라텍스 페인트 121.9×213.4cm 2023

<부서진화면>패널에라텍스페인트121.9×213.4cm2023

벨트란 스튜디오 이미지. 물감과 알파벳 조각을 레이어로 굳히고 있다.

벨트란스튜디오이미지.물감과알파벳조각을레이어로굳히고있다.

― 이번 전시로 들어가 보자. 전시 제목은 <완전한 붕괴 그 이면에 남는 것>이다. 영어로는 ‘Total Collapse’인데 무슨 의미인가?


Beltrán 이 세상을 이루는 경계, 카테고리의 ‘붕괴’다. 작업을 관통하는 말이다. 난 늘 모순적인 개념을 한 화면에 담아왔다. 그래서 작업 주제는 ‘회화와 조각’, ‘광학과 물질’, ‘가상과 실재’라는 상반된 키워드를 아우른다. 그런데 양극단이 한 점에서 만나면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겠나? 회화에서도 성질이 다른 재료를 섞으면 균열이 생긴다. 흔히 균열을 실패로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이걸 창작의 시발점으로 쓴다. 코딩하듯 짠 물감 층에 ‘창조적 오류’를 일으키는 균열! 오류를 실험하는 게 내 관심사다. 지금 이 시각에도 기후 위기, 전쟁, 정치 스캔들이 끊이질 않지만, 갈등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기존의 개념,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가능성이 탄생한다는 것이 내 예술적 신념이다.

경계의 균열, 창조적 오류

― 작품 제목에 ‘색 이름’, ‘빛’, ‘공기’가 자주 등장한다. 재료나 모티프에 관한 힌트 같은데.


Beltrán 알파벳이 언어의 코드이듯, 내겐 색상의 DNA인 ‘빛’과 ‘안료’가 코드다. <레드, 그린, 블루, 블랙홀>(2023)은 가산, 감산 혼색의 원리를 주제로 풀어냈다. 빛의 삼원색인 RGB를 겹치면 흰색이 되지만, 이를 회화로 옮긴 CMYK에선 검정색이 나온다. 빛의 삼원색이 ‘블랙홀’로 수렴하는 과정을 화폭에 담았다. <아닐린 빛>(2023)의 ‘아닐린’은 땅에 묻힌 수소 화합물인데 물감의 원료를 캘 때 공기 중으로 나온다. 꼭 땅속에서 ‘빛’을 길어 올리는 것 같달까. 그래서 난 물감을 쌓고 패턴을 만드는 작업을 회화의 ‘지층’을 쌓는 일에 비유한다.


― 대표작인 ‘패턴 추상화’는 노동 집약적인 과정으로 유명하다. 2007년 작가 생활을 시작한 후 무려 16년 동안 방법을 갈고 닦았다.


Beltrán 시행착오를 오래 겪었다. 먼저 물감을 굳힐 틀인 사각 몰드를 평평한 바닥에 누이고 그 안에 찰랑거리는 라텍스 페인트를 들이붓는다. 다 마르면 사각형 페인트 덩어리가 한 층 탄생하는데 같은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두꺼운 페인트 레이어가 완성된다. 이걸 작은 조각 여러 개로 자른 뒤 퍼즐을 맞추면 작품 완성! 굳은 레이어를 어떻게 자르고 맞출까 고민하는 과정이 내겐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공간(스티로폼)> 패널에 라텍스 페인트 228.6×149.9cm 2023

<공간(스티로폼)>패널에라텍스페인트228.6×149.9cm2023

<스튜디오 붕괴> 패널에 라텍스 페인트 165.1×254cm 2023

<스튜디오붕괴>패널에라텍스페인트165.1×254cm2023

― 단면에 작업실 쓰레기를 결합한 신작이 인상적이다. 작품 곳곳에 쓰레기를 그대로 박아 두었다.


Beltrán 실제로 작업실에 가장 많이 굴러다니는 게 못 쓰는 페인트 덩어리랑 남은 재료다. 작품의 촘촘한 결을 해치는 ‘오류’로 버려졌지만, 이게 스튜디오의 실상 아니겠는가. 가까운 환경에서 창조적 오류를 만들어 줄 단초를 찾고 싶었다. <스튜디오 붕괴>(2023)와 <공간(스티로폼)>(2023)에는 각각 굳은 물감 조각과 폐스티로폼을 페인트 레이어에 결합했다. 페인트가 굳기 전 몰드 안으로 쓰레기를 ‘던져 넣어’ 이물질이 낀 단층을 완성했다.

― 추상화가로 알려졌지만 2010년대에는 버려진 크레이트를 태워 나뭇결을 패턴화한 <손상된 작품>(2011) 연작으로 설치에 도전했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탐구하던 시기로 보인다.


Beltrán 경제적인 이유로 잠시 라텍스 페인팅을 중단했었다. 매체는 바뀌었어도 사회 시스템에서 ‘패턴’을 찾는 방식은 그대로였다. 미술작품의 보관과 운송을 주제로 ‘전시 시스템’을 다뤘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다시 도전하고픈 주제다.

<대기의 붕괴> 패널에 라텍스 페인트 152.4×273.7cm 2023

<대기의붕괴>패널에라텍스페인트152.4×273.7cm2023

<레드, 그린, 블루, 블랙홀> 패널에 라텍스 페인트 215.9×102.9cm 2023

<레드,그린,블루,블랙홀>패널에라텍스페인트215.9×102.9cm2023

― 작업 바깥의 이야기를 해보자. 2013년 당신은 동료 작가 두 명과 마이애미의 작은 동네 리틀 아이티에 아티스트 런 갤러리를 열었다. 왜 이런 시도를 했는가?


Beltrán 마이애미 아트씬의 한계를 느껴 ‘구찌비통(Guccivuitton)’을 열었다. 당시 리틀 아이티에선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이었고 예술공간이 사라진 자리에 상업 시설이 마구 들어섰다. 이 모습이 안타까워 친구들과 ‘직접 마이애미에서 보고 싶은 전시를 열자’는 취지로 운영에 뛰어들었다. 운 좋게 여러 콜렉티브, 기관과 협업하며 노구치브레턴이란 이름으로 리브랜딩을 거쳤다가 현재는 문을 닫았다. 그래도 이 경험이 시야를 넓히는 좋은 밑거름이 돼주었다.


― 올해 2월 리만머핀에 합류해 뉴욕과 서울에서 연달아 개인전을 열며 숨 가쁜 한 해를 보냈다.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


Beltrán 2023년 오래 작업하며 쌓아온 주요 작품을 글로벌 무대에 전시하는 영광을 누렸다. 남은 건 마이애미로 돌아가 양질의 실험을 이어가는 일뿐이다.

로리엘 벨트란(1985년생)은 마이애미 뉴월드스쿨오브아트에서 전자 미디어, 미술사를 전공했다. 리만머핀 뉴욕(2023), 마이애미 센트럴파인(2022, 2020), 마이애미 뮤지엄오브아트앤디자인(2021) 등에서 개인전 개최. 현재 마이애미에서 거주 및 활동.

로리엘벨트란(1985년생)은마이애미뉴월드스쿨오브아트에서전자미디어,미술사를전공했다.리만머핀뉴욕(2023),마이애미센트럴파인(2022,2020),마이애미뮤지엄오브아트앤디자인(2021)등에서개인전개최.현재마이애미에서거주활동.

스팟커뮤니케이션(2022.01.24~)
세화미술관(2024.01.31~)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