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재미 말고 ‘사는’ 재미
요즘 전시 관람의 진짜 피날레는 작품 앞 인증 샷이 아니라 ‘아트숍 매대 털기’다. 전시장 문을 나서는 순간 시작되는 이 2차전에서 우리는 종종 지름신을 마주한다. 그저 그런 에코백과 엽서를 사 들고 나오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아트굿즈는 ‘나’의 추구미을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스몰 럭셔리’이자 일상의 ‘킥’이니까. 국립중앙박물관 뮷즈(MU:DS)의 메가 히트 너머, 남들 다 아는 거 말고 내 공간에만 슬쩍 올려두고 싶은 감도 100% 니치 아이템만 추렸다. 이번 달 카드값의 명분은 이걸로 충분하다.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따끈따끈한 신상의 좌표는 추상미술 거장 유영국의 개인전 <산은 내 안에 있다>(5. 10~10. 25)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의 굿즈는 그야말로 ‘색감 맛집’이다. 퍼즐, 양말은 기본이고 영국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룬드런던’과 손잡고 선보인 텀블러까지 라인업이 짱짱하다. 에디터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은 건 양·우산이다. 유영국의 1989년작 <Work>를 캐노피 전체에 대담하게 입혔는데, 우산을 펼치는 순간 흐린 날씨의 채도마저 끌어올리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4만 원으로 소장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내 손안의 캔버스’. 비 오는 날 출근길이 은근히 기다려진다면 순전히 이 우산 때문일 거다.
나이키, 겐조, 휴먼메이드가 사랑하는 그래픽아티스트 베르디(Verdy) 개인전 <I Believe in Me>(4. 24~7. 19 롯데뮤지엄)의 아트숍은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플’이다. 지드래곤과 협업해 품절 대란이 일었던 야구 캡도 탐나지만,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관객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끝판왕 오브제는 단연 ‘비스티 플러시 인형’. 파스텔톤 털을 복슬복슬하게 두른 이 몬스터 녀석의 몸값은 무려 93만 원이다. “인형 하나에 백만 원?” 그러나 단순한 굿즈가 아닌 팝아트 오브제로 이 제품을 바라본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극소량 발매라는 희소성, 바라만 봐도 도파민이 터지는 귀여움까지! ‘아트토이’ 작품을 소장한다는 마인드 셋이 필요할 때다.
‘웰메이드 아트굿즈’의 대명사 리움미술관 스토어는 언제 가도 마감의 퀄리티가 남다르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대리석 조각 <Eye Bench> (1996~97)를 본뜬 비누부터 김윤신의 나무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 미니어처 키링까지, 이 중에서 에디터가 꼽은 숨은 보석은 올해 초 막을 내린 이불 개인전 <1998년 이후>의 실버 키링(3만 5천 원)이다. 전시장 입구, 공중을 압도하던 17m짜리 거대한 은빛 비행선 조각 <Metallized Ballon>을 손바닥만 한 오브제로 앙증맞게 압축했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광택 덕에, 에코백이나 밋밋한 백팩에 ‘칠(chill)’한 감성을 주기에 이만한 게 없다.
마지막은 다가올 여름휴가를 위한 가장 스마트한 선택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의 문화 상품점 들락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용세라와 협업해 내놓은 비치 타월은 특유의 쨍한 RGB 컬러와 과감한 패턴만으로 시원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100% 극세사 소재라 툭 털어 해변에 깔면 피크닉 매트로, 거실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걸치면 훌륭한 인테리어 커버로 변신하는 전천후 아이템. 올여름 SNS에 올릴 바캉스 인증 샷의 숨은 치트 키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ACC의 상징인 채광정을 모티프로 한 ‘빛의 숲 테이블 조명’도 놓치기 아쉽다. 전당의 어두운 지하 공간에 스며들던 자연광을 무드등으로 완벽하게 번역했다. 마지막으로 데스크테리어 아이템을 찾고 싶다면 <아시아의 장치들>(3. 19~9. 27)전의 ‘필름 북마크’가 제격이다. 참여 작가 6인의 작품을 책갈피로 구현했다. 얇은 필름 너머로 빛이 스며들 때, 책의 텍스트와 작품이 겹치는 오묘한 레이어링이 독서의 감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전시는 짧고 굿즈는 길다. 화려했던 조명이 꺼지고 작품들이 수장고로 돌아간 뒤에도, 아트굿즈는 그날 전시장에서 느꼈던 감성을 일상으로 연장해 준다. 전시의 여운을 가장 선명하게 간직하는 방법이자,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나의 일상을 채워나가는 가장 힙한 큐레이션이다. ‘취향 저격’ 아이템을 발견했다면 지금 나만의 기획전을 펼쳐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