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힐튼

피크닉, 한국 현대건축의 아이콘 ‘힐튼서울’ 회고전
2026 / 01 / 01

호텔 힐튼서울의 역사와 건축을 주제로 회고전 <힐튼서울 자서전>(2025. 9. 25~1. 4 피크닉)이 열렸다. 피크닉과 건축 큐레이팅 콜렉티브 CAC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건축가 김종성을 비롯해 작가 9인(팀)이 참여했다. 필자는 이번 전시의 빈약한 아카이브 자료를 지적하며, 제도적 차원에서 기록의 필요성을 촉구한다.

정지현 <밀레니엄 힐튼 호텔 서울_볼룸> 피그먼트 프린트, 디아섹 100×135cm 2025 이미지 제공: 작가

식민 지배, 전쟁, 군사 독재를 거치며 망각을 강요받고, 망각으로 버텨온 한국에서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부수고 덮고 지우며 ‘미결된 기억’을 쌓아왔다. 건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카이브는 사치요, 철거는 (재)개발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보존은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힐튼서울 자서전>전은 그 불안정한 기억의 계보 위에 있다. 1983년 완공된 힐튼서울은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이었다. 그러나 서울시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되지도, 보존 운동이 힘을 얻지도 못한 채 2025년 5월 철거됐다. CAC와 피크닉이 철거 현장에서 파편을 그러모아 만든 이번 전시에서 힐튼서울은 스스로 발화하지 않는다. 참여 작가는 각자의 언어로 복화술하고, 건축가 개인의 단편적 기록은 ‘아카이브’로 승격된다. 전시는 한국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의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CAC의 공동 디렉터 정다영이 반복해 온 방식은 건축을 ‘작가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들은 각자의 실천을 힐튼서울에 적용했다. 하지만 ‘자서전’을 쓸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이 방식엔 한계가 있었다. 작품은 힐튼서울의 건축 자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 ‘사라짐’, ‘기억’, ‘애도’라는 추상적 주제에 배치된다. 왜일까? 파편적 아카이브만으로는 전시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아카이브 전시처럼 보이지만, 실상 자료는 단편적이다. 아카이브의 빈틈을 작업으로 메우려는 것 같다. 또한 예술전시처럼 작업을 배치했으나, 힐튼서울과의 유기성은 부족하다. 화려한 전시디자인은 어중간한 틈을 보충하려는 방책일지도 모른다.

<힐튼서울 자서전>전 전경 2025 피크닉 이미지 제공: 피크닉

이번 전시 구성에선 전시장 입구가 인상적이다. 전시는 힐튼서울의 역사 대신 죽음부터 보여준다. 4개 층에 걸친 전시의 도입부 1층에는 호텔의 아카이브 대신 건물 파편으로 만든 서지우의 설치작품이, 두 번째 공간에는 철거 과정을 촬영한 정지현의 사진이 놓였다. 김종성 건축가의 도면과 건설 과정을 담은 임정의의 사진 등 실제 아카이브는 다음이다. 설계 과정과 건물의 잔해는 남아있지만, 안타깝게도 40년간 호텔로 작동한 시간의 기록은 단편적이다. 한국에서 건축 아카이빙은 여전히 단면적 자료를 과잉 해석하고 감정적으로 연출하는 방식에 기댄다. 전시는 그 불안한 계보를 잇는다. 철거 후 이뤄진 추도식이다. 도쿄의 나카긴캡슐타워처럼 철거 전 10년 동안 아카이빙한 경우와 대조된다. 우리의 기억은 아직 사후성과 죽음을 앞세우는 구조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전시는 존재 자체로 반갑다. 국공립 기관도 움직이지 않을 때 CAC와 피크닉은 철거 현장에서 파편을 주웠다. 다만 ‘우리에게 남은 건 이것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아카이브에 난 구멍을 인정하고 예술가의 상상력에 더 적극적으로 기댔다면 어땠을까. 불완전한 아카이브와 50가지 해석을 담은 <힐튼서울의 50가지 그림자>전을 만나게 됐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부재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전시는 그 출발선을 보여줬지만, 부재와 빈틈을 정직하게 고백할 용기는 다음으로 남겨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