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미술과 패션
패션과 미술전시에는 디자이너나 작가가 만든 작품을 특정 공간에 배치하고, 사람들이 그걸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과정상의 공통점은 최근 들어 옷에서 나아가 다각도의 의미를 구축하려는 패션이나, 패션을 매개로 대중성과 화제성을 탐색하려는 미술전시의 입장에서 서로를 활용하는 유인이 된다. 하지만 옷은 구매하고 입는 대상이다. 이것이 감상의 대상이 되려면 그저 전시장에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플래그십 매장의 디스플레이나 다큐멘터리, 생활사 박물관의 느낌을 극복하려면 옷과 전시물 사이의 거리감과 더불어 다른 방식의 태도를 이끌어 내야만 한다.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대복장>(5. 30~7. 20)전은 전시장을 배경으로 패션 브랜드를 모은 경우다. 현시점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인 지용킴, 포스트아카이브팩션(이하 PAF), 혜인서 이렇게 세 디자이너 브랜드를 ‘지금 서울의 의복’이라는, 느슨하지만 K컬처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동시대에 중요하다 할 만한 요소로 묶었다. 먼저 지용킴은 원단을 햇빛에 노출시켜 자연스러운 탈색을 유도하는 선 블리치(sun-bleach) 기법으로 22벌의 같은 옷에 불규칙한 개별성을 부여했다. PAF는 옷의 기본 단위인 패턴을 바닥에 흩뿌리고, 컬렉션을 진행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집약한 구조물을 선보였다. 혜인서는 영감을 받은 이미지, 스케치와 드로잉 등 옷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벽에 촘촘히 나열해 작업대를 재구성했다. 전시는 각자의 패션 세계가 지닌 모티프와 제작 과정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이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라는 긴장과 충돌을 목격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이 충돌은 옷을 보러온 사람과 전시를 보러온 사람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시대복장>전이 전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패션이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에 주목했다면, 할로미늄에서 열린 <페도라>(6. 6~30)전은 미술작품이 패션 문화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고요손, 김춘미, 송민정, 이해선, 한이경 다섯 작가의 작품이 할로미늄의 쇼룸에 들어가 섞였다. 작품은 매장 디스플레이 속 옷걸이 사이부터 벽과 테이블에 비치된 액세서리 사이, 피팅룸 선반까지 곳곳에 숨어있다. 일부 작품에는 할로미늄의 태그와 가격표가 붙어있어, 전시 안내서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면 자칫 판매 중인 제품으로 착각할 가능성도 있다. 이 뒤섞임은 각 작가의 작품 세계가 할로미늄의 옷과 연관성을 가지든 말든 딱히 구애받지 않는다. 연결이 있다면 드러내고, 그렇지 않다면 충돌 자체로 기능한다. 이는 예술작품을 마치 패션처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동시에, 패션을 예술작품처럼 감상의 대상으로 만드는 행위다. 따라서 쇼핑하러 왔다가 마주친 작품인지, 전시를 보러 왔다가 마주친 시즌 컬렉션인지는 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금, 패션과 미술은 양쪽 모두 각자에게 없는 것을 통한 확장을 노리고 있다. 패션이 전시장을 찾아가거나, 전시가 패션을 찾아오는 경우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동기와 목표가 다르므로 패션과 미술, 소비자와 관람자는 한 공간에서도 각자의 통념으로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협업이 계속된다면, 서로의 방식을 더욱 정밀하게 활용하는 노하우를 축적해 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