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쓸려간 ‘얼굴’을 찾아서
거대한 역사의 파도는 개인을 익명의 ‘복수(複數)’로 쓸어간다. 저항은 그 반대편, 한 사람의 얼굴, 즉 ‘단수(單數)’를 되찾는 일에서 비롯된다. 정여름은 장소와 기억의 역학을 탐구하며 지배 서사 이면에 은폐된 존재를 추적해 왔다. 주한 미군 기지, 베트남의 비무장 지대 등 지정학적 이데올로기가 응축된 공간을 증강 현실, 인공 지능의 시선으로 가로질러 우리가 진실이라 믿어온 역사의 허구성을 해부한다. 개인전 <복수>(8. 26~10. 17 두산갤러리)에서 그는 줄곧 장소를 향해 던져온 물음을 이제 한 사람의 얼굴 위에서 되묻는다. 주제작 <복수>는 1920년대 초 아버지를 찾아 베트남으로 이주했던 실존 인물에서 출발했다. 주인공이 자발적 이주자에서 남베트남 패망 이후 한국에서 반공 프로파간다로, 다시 디아스포라로 변모하는 과정으로 이데올로기 앞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 증언한다. <양치기>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냄새를 따라 고향을 찾아 떠도는 이야기를, <낮은 곳의 에이프런>은 주인을 흡족게 하는 일에 삶을 저당 잡힌 하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힘의 주인은 누구인가.” 작가가 전시를 시작하며 던진 물음은 시몬 베유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베유는 힘이 그것에 굴복한 자를 사물로 만들며, 지배하든 복종하든 누구도 그 주인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무자비한 힘의 순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베유가 끝내 믿었던 것은 이름과 지위가 모두 벗겨진 뒤에도 인간에게 남겨진 것. 어떤 힘도 사물화할 수 없는 ‘고유한’ 인간성이었다. 한 얼굴이 복수의 어둠으로 사라지기 직전, 카메라가 붙드는 그 단수의 얼굴에서 정여름이 지키려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