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정원’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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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bbles> 캔버스에 유채, 오일 파스텔 38×45.5cm 2022 ©︎2022 ob/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팔로워들>(2020)에는 SNS에 업로드한 그림으로 화단에 등단한 ‘써니’가 나온다. “당신의 인스타를 봤습니다. 만날 수 있을까요? 저희 대표님이 인스타로 써니 씨의 작품을 보시고 여기서 개인전을 열어 달라고 하셨어요.” 띠링~ 소리와 함께 찾아온 데뷔의 기회. 인스타그램에 올린 써니의 ‘소녀 그림’이 우연히 세계적인 작가의 눈에 들어 화려한 개인전을 치르고 일약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다. 온 우주가 주인공을 돕는 드라마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이건 작가 ob의 실제 이야기다. 감독은 ob의 실화에서 모티프를 따고, 그의 대표작을 연출에 적극 등장시켰다. 다른 점이라면 일생일대를 바꿀 ‘별의 순간’을 위해 ob는 훨씬 자기 주도적인 활동을 펼쳤다는 것. 1992년생으로 미술계에선 신진이나 다름없는 그가 페로탕 삼청에서 개인전 <미니어처 가든>(10. 6~11. 19)을 열기까지 순전히 ‘요행’만 따른 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ob는 가고시마에서 태어나 6살 무렵 교토로 이사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만화 영화나 닌텐도 게임에 푹 빠진 여느 평범한 아이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ob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중3. 마음 맞는 친구들과 미술실을 놀이터 삼아 연필이나 수채로 만화 캐릭터를 끄적끄적 그리다, 교토예술고등학교까지 진학하게 된다. 이때 그는 다양한 모임을 이끌었는데, ‘De: Ron!’이라는 서클을 만들어 매달 자체 작품 합평회를 열거나, 교토 타워 앞 행인들에게 손수 그린 그림엽서와 소품 작업을 팔았다. 또한 ob는 고등학교 1학년 말, 일본의 일러스트 커뮤니티 사이트인 픽시브(pixiv)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시각예술 창작자와 교류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ob의 작품이 글로벌 아트씬으로 급물살을 타는 중요한 이벤트가 벌어진다. 발단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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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rect Kiss> 캔버스에 유채, 오일 파스텔 72.7×72.7cm 2022 ©2022 ob/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타카노 아야는 일본 망가와 SF적 배경, 에로티시즘과 자포니즘을 소녀의 세계관으로 삼았고, 미스터는 펑키한 분위기를 내뿜는 세라복 여중고생으로 네오 팝을 계승했다. 청소년 이상 나이대의 캐릭터를 ‘모에화’해 그들에 내재한 성적 판타지를 조형 어법에 활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에 비해 ob는 소녀에서 출발해 ‘아동’으로 나아간다. 사실 본래 작가는 여자아이만 그렸다. 2013년경 그는 “남자애는 안 그린다. 뭐랄까, 굳이 그릴 필요를 못 느낀다. 그들은 내가 다룰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어서 지금은 여자애만 그린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속 인물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머리가 긴 남자애일 수도 있고, 보이시한 여자애일 수도 있다.”라고 입장을 바꾼 것.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던 소녀에서 ‘어린이’로 인물의 정체성을 확장하고 그들의 ‘성장기’에 주목한다.
ob는 ‘어린이의 시간’을 그린다. 여기서 시간은 단순히 종이접기, 인형 놀이 등으로 하루를 보내는 물리적인 흐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이라는 ‘의식 상태’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지금 느끼는 감정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호한 시간. 늦은 밤 방에서 혼자 눈을 끔벅거리며 공허와 적막을 학습하던 때. ob는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해 세상을 판단하기 이전, 그러니깐 가능성의 ‘씨앗’을 품은 작은 인간형을 그리고 있다. 초소형 정원이라는 뜻의 전시명도 아름드리 다 자란 꽃과 나무를 위한 거대 온실이 아니라, 고작 손톱 만한 줄기를 틔운 씨앗들의 인큐베이터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나 ob는 순진무구하고 말랑말랑한 동심의 세계를 포착하는 데 방점을 찍은 건 아니다.
그는 무한한 미래를 상상하며 몽롱하게 꿈을 꿨던 ‘그들의 시간’을 빌려, 모두가 한 마디씩 추억의 단편을 꺼낼 수 있는 ‘매개의 공간’으로 활용했다. “인간 세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그림은 하나의 비밀 정원인데, 누군가 내가 가꿔둔 이곳에 놀러와 각자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면 좋겠다. 2021년 페로탕 뉴욕 개인전에서 한 관객이 내 작품의 해바라기를 보고 자신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놀던 장면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게 내가 바라던 ‘매개의 순간’이다.” ob는 최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아마 그에게 중요했던 건 누군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다가가는 공감의 화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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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 1992년 가고시마 출생. 교토예술고등학교 졸업. 페로탕 뉴욕(2021), 카이카이키키갤러리(도쿄 2020, 2017, 2013, 2011, 타이베이 2011), 홍콩국제아트페어(2011), 교토 0000갤러리(2010) 등에서 개인전 개최. <2021 카이카이 키키 어텀쇼>(카이카이키키갤러리 도쿄 2021), <힐링>(페로탕 상하이 2021, 마티뇽 2020, 서울 2020), <미소녀>(아오모리미현립미술관 2014) 등의 단체전 참여. 작가명 ob는 본명 오바타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