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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70년의별자리

합정지구,동시대화가13인의연보프로젝트

2024/08/02

합정지구

<화가들의밤:구르는연보>전경2024합정지구

화가 이제와 손현선이 기획한 <화가들의 밤: 구르는 연보>(6. 22~7. 21)는 신진에서 중진, 원로까지 한국 동시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13인의 연보가 중심이 되는 전시다. 그 주인공은 두 기획자를 비롯해 노원희 박정우 박진아 샌정 신현정 써니킴 이은실 이혜인 임노식 정용국 정희민. 데뷔한 시기도, 활동 무대도 모두 다르지만 그림을 향한 열정 하나는 같았던 아티스트의 ‘삶’을 한자리에 펼쳤다. 출생지, 학창 시절, 미술에 입문한 계기부터 첫 작업실, 화가로서의 등단, 개인적인 시련과 사회적 참사까지…. 전시는 이들의 생애를 정리해 전시장 벽면에 가득 채웠다.

타임테이블은 원로 작가 노원희가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1948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다. 연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미술에 처음 입문한 계기다. 노원희는 중학교 3학년 때 그린 ‘꽃 그림’이 화가로서의 발판이 되었다. 난생처음 미술로 받은 칭찬이 그를 50여 년 화가 인생으로 이끌었다. 한편, 이제는 고등학생 시절 합창부에 지원했으나 담임 선생님이 부서를 미술부로 옮기면서 처음 붓을 잡았다. 정용국은 고등학교 1학년 첫 미술수업에서 친구의 초상화를 잘 그렸다는 이유로 미술부에 가입하게 됐다. 이은실은 예고 입학 전 장르를 고민하다가 한지에 먹을 떨어뜨린 우연을 계기로 동양화에 뛰어들었다. 작가는 그 점 하나를 운명이라고 느꼈다.

서울의 달

이제<서울의달>캔버스에유채45.5×53cm2014

첫 개인전부터 사회적 참사까지

모두 저마다 첫 개인전을 이루고 화가로서의 삶을 고민해 왔지만, ‘헉’하고 숨을 들이마시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 임신, 이주,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 시련에서 사회적 참사와 재난 등, 삶에서 크고 작은 사건은 작업을 중단하는 계기가 되기도, 반대로 창작에 새로운 소명을 더하는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가령 노원희는 혈육의 죽음 이후 집과 가족을 그리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는 정용국이 침몰하는 세상을 그리는 출발점이 됐다. 대학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혜인은 첫 개인전에서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를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 전시는 단순히 화가의 연보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까만 벽에 16점의 작품이 걸려있다. 여느 전시에서 볼 법한 작가 설명은 한 줄도 없지만, 앞선 연보가 소개를 대신한다. 누군가는 화가가 되려면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천재적 재능이나 운명 같은 이끌림 말이다. 그런데 이곳의 작가들은 평범한 우연의 겹침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격랑을 버텨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꿋꿋이 실천하는 삶….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과도 닮았다. 이들의 솔직한 ‘맨얼굴’과 마주할 때, 예술은 우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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