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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의생명력

갤러리2서울,박주애개인전<허공에차오르는>

2023/08/02

박주애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섬사람이다. 그림 공부도 제주대에서 마쳤고, 작품 활동도 제주시에서 하고 있다. ‘서울 공화국’의 정점에 있는 한국 미술계 풍토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지역 기반의 ‘희귀 작가’다. 박주애가 2년 만의 개인전 <허공에 차오르는>(7. 6~8. 5 갤러리2)을 열고 제주 자연에서 출발한 신작 60 여 점을 발표했다. 인터뷰차 만난 그에게 곧장 질문을 던졌다. “작가님께 제주도는 어떤 의미예요?” 돌아온 대답은 그지없는 ‘자연인’이었다. “제가 태어난 곳이자 제 일부죠. 저 역시 제주의 DNA를 물려받은 피조물이니까요.”

전시장에는 대형 회화를 중심으로 소품 작업이 위아래 불균일하게 배치돼 생동감이 가득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숨바꼭질하는 정령, 총총거리는 정체불명의 새, 가만히 내려앉은 물잠자리가 어두운 숲 그늘을 누리고 있다. 이번 회화의 배경은 바로 ‘곶자왈’. 제주 말로 곶은 숲, 자왈은 덤불이다. 바위를 휘감은 나무줄기와 폭포처럼 쏟아지는 덩굴이 마구 뒤엉켜 있는 제주의 숲 지대를 일컫는다. 곶자왈은 빛이 잘 들지 않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심해’의 삼림 버전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돌무더기에 이끼가 잔뜩 끼어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불모지이지만, 박주애는 이곳에서 식생들의 ‘생존 욕구’를 보았다.

<숲의 양막 2> 캔버스에 아크릴릭 91.5×117.3cm 2023

<숲의양막2>캔버스에아크릴릭91.5×117.3cm2023

<공기의 씨앗42> 캔버스에 아크릴릭 72.5×60.5cm 2023

<공기의씨앗42>캔버스에아크릴릭72.5×60.5cm2023

나의 해방 일지


박주애의 작업 세계는 나선형을 그리며 전진해 왔다. 회화, 조각, 설치, 도자의 방법론을 빙글빙글 돌면서 폭과 깊이를 넓혔다. 회화를 선보인 첫 개인전 이래 작가는 네 장르를 따로 혹은 함께 전시로 선보이며 주제 의식을 확립하고 있다. 일견 한 작가의 작품이라 매칭되지 않을 만큼 표현 방식의 스펙트럼이 넓다. 그렇다면 이 소용돌이를 꽉 붙드는 ‘중심축’은 무엇일까? 박주애 작업의 주요 키워드는 제주와 여성. 두 개념을 다른 말로 바꾸자면 ‘지리적 고향(제주)’과 ‘심리적 고향(여성)’이다. 박주애 작업은 자신의 영혼이 기거하는 운명의 땅이자 정신의 집인 ‘고향’을 향해있다. 그는 다종다양한 장르의 작업으로 ‘근원’에 가닿고자 하는 주술적 염원을 불어넣는다.

제주와 여성이라는 두 키워드를 축으로 작가의 기존 작업을 살펴보자. 박주애는 2016 년 제주 아트스페이스씨에서 개인전 <피를 데우는 시간>을 열었다. 이때 그는 ‘집에 가는 길’을 주제로 회화 연작을 발표했다. 당시 작가는 제주 시내에 살다가 함덕 부근으로 이사 가며 제주 방언으로 일명 ‘시에따이(시내에 사는 아이)’에서 ‘초네따이(촌에 사는 아이)’가 됐다. 바닷바람에 부대끼는 파도 소리와 사납게 흔들리는 야자수 그림자가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이에 작가는 을씨년스러운 귀갓길 인상을 투영해 물에 잠겨 지붕만 둥둥 떠다니는 집, 목욕탕과 나무뿌리를 거처 삼아 살아가는 반인반수 등을 그렸다. 박주애 작업에서 ‘첫 제주’는 ‘또 하나의 집’이었다. 한편, ‘여성’으로서의 의식은 <Breast Milk>(제주 새탕라움 2020), <박주애>(갤러리2 서울 2021)에서 연달아 발표한 도자작업에 선명히 드러난다. 그는 시험관 아기 시술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도자를 시작해 임신, 태동, 출산, 수유 등이 연상되는 여성 신체를 형상화했다. 아이를 밴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젖과 배, 알을 담은 손과 발 모양의 조각을 만들었다. 그로테스크하지만 어딘가 귀여운 모양의 도자는 개인의 심각한 고민을 ‘블랙 유머’로 승화하는 매개체였다. 작가는 ‘기복적 토템’의 동시대 버전을 제작해 스스로 생명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기를 바랐다.

<Diver>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2×130.3cm 2023

<Diver>캔버스에아크릴릭162.2×130.3cm2023

<계절을 토해 내는 숲>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3×162.2cm 2022

<계절을토해내는숲>캔버스에아크릴릭130.3×162.2cm2022

박주애는 제주현대미술관의 젊은 작가 단체전 <탐색자>(2022)를 계기로 제주와 여성을 한데 엮어냈다. <밤을 마시는 숲>(2022)은 대형 전시실에 곶자왈 숲을 조성해 둔 설치작업이었다. 와이어에 알록달록한 색상의 천을 감싸고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뜨려 곶자왈의 줄기와 덩굴을 구현했다. 우거진 ‘인공 수풀’ 사이에는 태아, 유방, 탯줄 등 모성을 모티프 삼은 패브릭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곶자왈이 엄마의 뱃속이라도 된 양 자연이 인간을 잉태하는 장면을 연출해 냈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박주애에게 자연과 자궁은 만물을 품어 기르는 ‘집’이자 모든 생명의 ‘고향’으로서 동일한 지평을 공유하게 됐다. “최근 몇 년간 제주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어 360여 개 되는 오름을 틈틈이 하나씩 오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숲은 영원히 죽지 않는 장소예요. 아무리 깊고 어두울지라도 반드시 생명을 틔워내죠. 4·3을 겪은 할머니, 가부장적 결혼 풍습으로 늦게 미대에 진학한 어머니를 보고 자란 저는 내 고향 제주에서 강인한 ‘생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요.”

<허공에 차오르는>전으로 돌아와 보자. 작가는 곶자왈 풍경에 초현실적 상상을 가미해 크고 작은 회화를 제작했다. 그런데 신작에는 기존 곶자왈 작업에서 볼 수 없던 ‘용해’와 ‘균열’의 모티프가 보인다. <허공의 냄새>(2023), <하늘걷기>(2023), <계절을 토해내는 숲>(2023)에선 땅과 나무가 줄줄 녹아내리고, <숲의 양막 1>(2023), <숲의 양막 2>(2023)의 알에는 금이 쩍 가있다. 갈라지고 터져 종국에는 재탄생하는 변태(變態)의 전조 증상이 감지된다. 또한 기존 회화에서는 유기적인 ‘알’의 형태로 존재하던 생명체가 <허공에 차오르기 1>(2023)에서는 긴 허리를 가진 인체상으로 변화했다. 알에서 부화한 독립된 개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각자만의 방식으로 숲을 즐기는 듯이. 그에게 과거 숲을 다룰 때와 무엇이 달라졌느냐 물었다. 박주애는 자연의 법칙에서 ‘예술가의 열망’을 읽어냈다.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원초적 본능. 작가는 자연의 끈덕진 자생력과 화가의 가열한 창작욕을 겹쳐 보았다. “숲에서 나무를 베면 다른 생명체의 집이 되도록 옆에 눕히고 와요. 작가도 마찬가지로 새 작업을 할 때마다 과거의 어떤 부분을 죽이고 다시 태어나야 하거든요. 곶자왈 숲이 살아가는 모습이 꼭 작업하는 저 같더라고요. 내면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인정했더니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달까요.” 박주애는 제주도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탐구를 거쳐 이제 예술가라는 ‘정신적 고향’에 당도했다. 삶과 예술의 합치를 꿈꾸는 작가는 ‘원(原) 풍경’을 찾아 떠나는 길고 긴 ‘해방 일지’를 쓰고 있다. / 김해리 선임기자

<Boiling1> 캔버스에 아크릴릭 117.3×91.5cm 2023

<Boiling1>캔버스에아크릴릭117.3×91.5cm2023

박주애 / 1990년 제주 출생.

박주애/1990년제주출생.제주대서양화과졸업.갤러리2서울(2021,2019),제주새탕라움(2020),제주아트스페이스씨(2016)등에서개인전개최.<어떤삶,어떤순간>(금호미술관2022),<1명의어린이와1000명의어른들>(울산시립미술관2022),<탐색자>(제주현대미술관2022),<ZZZSpace>(제주새탕라움2022),<줌인이아>(제주예술공간이아2020),<Conectivity-Jeju>(대안공간루프2018),제주비엔날레(2017),<로터스랜드>(광주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7)등의단체전참여.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