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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서스펜스

YPC스페이스,젊은작가박론디개인전

2024/08/02

박론디 프로필

박론디/1993년생.화이트노이즈서울(2021)에서개인전개최.<즐겁게!기쁘게!>(아트선재센터2023),<끝에서번째세계>(하이트컬렉션2022)단체전참여.2023년프리즈서울의포커스아시아섹션에선정됐다.바젤에서거주중.

“귀여워 보이면 끝이야!” 어느 순간 상대가 귀엽게 느껴지면, 진짜 사랑에 빠졌다는 신호라고 한다. 마음의 빗장을 풀고 정신적 무장 해제를 돕는 ‘귀여움’의 마법. 한국 사회에서 귀여움은 동글동글, 말랑말랑, 아기자기 등의 상태를 가리키는 형용사가 아니라, ‘나 이거 마음에 들어!’라는 의미의 감탄사가 되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징그러운 물건도 귀엽다는 수식어가 붙으면 금세 애호의 대상으로 승격한다. 박론디는 페인팅, 텍스타일, 세라믹, 오브제, 퍼포먼스 등으로 ‘귀여움’의 조형을 탐구해 왔다. 그가 개인전 <Will You Still Love Me When I’m No Longer Young and Beautiful>(7. 6~8. 11 YPC스페이스)을 열고 귀여움에 ‘쉬는 시간’을 주었다. 신작 12점과 퍼포먼스는 번아웃과 휴식을 다룬다. 사실, 귀엽게 변신하려면 얼마나 번거로운가. 이제 작가는 귀여움에 숨은 욕망을 포착하고 그 깜찍 당돌한 감정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에 주목한다.

라나 델 레이의 노래에서 따온 전시명은 ‘내가 더 이상 젊고 아름답지 않아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 줄 건가요’라는 뜻이다. 작가는 최근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탈모 증상에서 개인의 불안을 연료로 삼아 작동되는 시스템을 떠올렸다. 어리고 아름답다는 건 상대적 개념일 뿐임에도, 사람들은 타인의 애정을 얻지 못할까 안달 내며 온갖 상품과 서비스에 눈먼 돈을 갖다 바친다. 박론디는 귀여움이라는 표현에 압축돼 있는 동시대인의 인정 욕구와 이를 자극해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신자본주의 구조를 직시했다. “샤워실에서마저도 대머리가 될까 두려워하는 내 모습이 피로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외적인 퀄리티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개인의 휴식 시간까지 잠식하다니···. 내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저 성난 눈은 나를 따라다니며 쉬지 못하게 감시하는 유령과 같다.”

품속에서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어. 파고드는 손톱은 손에 쥔 것마저 낚아채고, 약속 시간은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걸. 열심히 말고 적당히가 미덕인 세계는 없는 걸까? 매번 석양을 원망하는 것도 지겹고, 어차피 누울 건데 매일 일어나야 하는 것도,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매일 치우는 것도 힘들어.

<품속에서쉬고싶어도수가없어.파고드는손톱은손에것마저낚아채고,약속시간은부릅뜬눈으로지켜보고있는걸.열심히말고적당히가미덕인세계는없는걸까?매번석양을원망하는것도지겹고,어차피누울건데매일일어나야하는것도,어차피더러워질텐데매일치우는것도힘들어.>캔버스에과슈330×155×4cm2024

“그래도 날 사랑해 줄래?”

작가는 전시장 전반을 불안의 형상화에 할애했다. 박론디는 2023년 프리즈 서울 포커스 섹션에 참여하며 번아웃을 겪었다. 과하게 힘준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의 노력이 오히려 압박으로 다가왔다.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극도의 피로감이 작가를 잠식했고, 이를 작품으로 남겼다. <품속에서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어. 파고드는 손톱은 손에 쥔 것마저 낚아채고, 약속 시간은 부릅뜬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걸. 열심히 말고 적당히가 미덕인 세계는 없는 걸까? 매번 석양을 원망하는 것도 지겹고, 어차피 누울 건데 매일 일어나야 하는 것도,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매일 치우는 것도 힘들어.>(2024), <그들은 진짜 맛있는 희망을 처먹고 있다. 얼마 남지도 않았다는 걸 모르는 건지, 못 본 척하는 건지, 눈물을 먹이로 주며 호시탐탐 희망을 차지할 기회를 사방에서 노리고 있다. 우리는 정작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시들어 간다.>(2024). 신작 회화의 제목은 작품명이라기보다 두서없는 일기에 가깝다. 이는 작가의 번아웃 상태를 암시하는 동시에, 그 피로감을 사적 감상에서 공적 논의로 확장하려는 태도를 내비친다. “나는 사회 현상에 관심을 두고 이를 작업에 담지만, 잘못을 채찍질하는 건 아니다. ‘다들 티는 안 내지만 우리 모두 힘들지’와 같은 정신적 연대를 모색한다. 나로 말미암아 세태를 진단하고, 소프트하게 변화를 이끌어 나가고 싶다. 귀여움의 미학도 이와 연관해 있다. 귀여움이란 불완전하고, 아마추어스럽고, 위협적이지 않아 보여서 ‘갖고 싶다’라는 심리를 자극하니깐. 그러니 변화를 욕망할 수도 있는 법.”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눕는다. 아니, 사실 그건 핑계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드러누웠다. <끝장 났을 때> 39p

<할있는것이없어눕는다.아니,사실그건핑계다.해야것이너무많아드러누웠다.<끝장났을때>39p>도자에유약,가위110×155cm2024

한편 바닥의 세라믹 작업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눕는다. 아니, 사실 그건 핑계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드러누웠다. <끝장 났을 때> 39p>(2024)는 얼굴이 뻥 뚫린 채 누워있는 인물 형상을 띤다. 엉엉 우는 것 같기도, 곤히 잠든 것 같기도 한 이 작업은 종일 따라다니는 성난 눈(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탈진한 작가 내면의 자소상이다. 그 위의 천장 설치작업은 <수자야 그동안 달리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니? 앞으로 달릴 생각에 잠도 못자고.>(2024)는 그러한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다. 질주하는 ‘말’은 그간 박론디 작업의 모티프로 등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말 ‘수자’는 마치 도륙당한 듯 너덜너덜한 가죽의 형상으로 걸려있다. 단단한 알맹이는 사라지고 얄팍한 외피만 남은 ‘수자’는 모조리 다 타고 껍질만 남은 욕망의 민낯이자, 영면으로 ‘대리 휴식’하는 일종의 토템이다. 전시장 가장 안쪽의 회화 <휴식 판타지, 휴식 페티시>(2024)는 ‘쉼’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화와 같다.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휴식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신념과 의지의 영역이라는 것.

회화와 설치뿐 아니라 서랍, 조명, 테이블 등의 오브제작업을 곳곳에 배치한 전시는 누군가의 ‘방’을 닮았다. 일상 사물을 연상하는 작품으로 공간을 꾸며 사적인 방에 들어온 듯한 감각을 자아낸다. 여기서 방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방의 의미는 자기 존재, 개인 정체성을 넘어 문화, 사회, 역사적 시대상이 고스란히 겹치는 공간이다. 이제 박론디는 귀여움의 미학에서 출발해 그것을 둘러싼 거시 세계, 즉 ‘메타-귀여움’에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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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