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레이스’의 귀환

평론 프로젝트 ‘피칭’ 제22회 선정자 유현진
2025 / 11 / 10

모든 과거가 돌아오고 있다. 회귀, 복고, 귀환, 재림, 레트로 열풍은 과거를 퍼 올리는 동력이다. 일찌감치 저물 것이라 예고된 복고 유행이 스테디셀러가 된 것처럼, 과거는 계속해서 현재에 틈입한다. 르네상스나 고딕 리바이벌 등 과거를 소환해 현재를 갱신하려는 욕망은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게 아니다. 최근, 사조와 양식으로서 고딕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음울하고 기이하며, 어둡고 불편한 ‘고딕’은 늘 죽어있는 동시에 끊임없이 부활하며 영원히 사는 것만 같다. 고딕은 세계의 무엇을 비추기에 부활을 거듭하는지, 우리는 고딕으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고찰할 때다.

고딕은 과거의 것을 정의하고 호명하기 위해 후대에 고안된 개념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과거 로마를 침공한 고트족을 지칭하는 부정적 단어로 처음 등장했고, 17세기에는 중세건축 양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다시 사용됐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고딕의 이미지는 18~19세기 미술에서의 부흥과 문학 작품을 통해 형성됐다. 건축과 회화 분야에선 중세미술 양식의 순수성, 수공예적 노동의 가치, 장인 정신 등을 회복하려 했으므로 영광스러운 과거로 회귀하려는 노스탤지어가 감돌았다. 반면 고딕 소설에서 과거는 돌아가고 싶은 애틋한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죽일 듯이 쫓아오는 오래된 망령과 괴물로 표현된다. 현대 고딕은 중세건축의 시각성과 근대문학의 정서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식을 띤다.

헬싱키 아테네움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고딕 모던: 어둠에서 빛으로>(2024. 10. 4~1. 26)전은 근대 이후 미술에 내재된 고딕적 감수성을 전면에 부각하며 서양 미술사학계에 고딕의 부활을 알렸다. 전시는 모더니스트 예술가가 인간 존재의 불안, 고통, 성욕, 죽음을 다루며 고딕 양식과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조명했다. 여기서 고딕은 실존적 감정을 심미적 조형 언어로 전환하고, 모더니즘의 실험과 의식 탐구를 매개한 동력으로 제시됐다. 이로써 고딕은 이성과 논리의 대척이 아니라, 그 내부의 균열과 심연을 드러내는 근대미학의 통로로 서양 미술사 계보에 재위치했다.

한편, 아시아 현대미술계에서 고딕의 정체는 파편화되고 코드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베이징 중간미술관에서 열린 <괴물이 말할 때>(2024. 5. 23~9. 1)전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에서 영감을 받아, 시대를 초월한 사회적 불안과 기술에 대한 공포를 조명했다. 전시는 현대 미디어 환경 속 공포, 가짜 정보, 현실과 인식의 낙차 등을 상징하는 존재로 ‘괴물’을 내세우고, 이를 고딕적 패러디와 서사를 경유해 마주했다.

한국의 콜렉티브 야광은 가공된 서사를 담아내는 형식으로 고딕풍의 물리적 환경을 구축해 왔다. 영상설치 <크세노스>(2025)와 <다크 라이드>(2025)는 낡고 늘어지고 그을린 듯한 레이스와 검은 커튼, 불탄 자국 혹은 생물의 점액과 살점이 눌어붙은 것 같은 기묘한 풍경을 연출했다. 이는 그로테스크하고 고스적인 문화 코드를 강화하며, 고정된 이념과 시각성에 반동하는 감각을 날카롭게 일깨운다. 특히 <다크 라이드>는 월미도 테마파크 ‘유령의 집’을 배경으로 삼고, 사건이 발생하는 장으로 고딕을 전용하는 공간을 조성했다. 여기서 고딕은 하위문화의 전형성을 넘어 불안과 공포를 직면하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고딕은 본질적으로 시대의 불안과 공명한다. 침략을 받았을 때, 기계와 공장이 도입됐을 때, 처음 전신선이 설치됐을 때 등 급격한 세계관의 변화에서 고딕이 출현했다. 지금 고딕은 불황, 전쟁, 전염병, 기후 위기 속에서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유령과 악몽, 병증 등 고딕이 다루는 정서는 현대인의 내면과 정서에 긴밀히 연결된다. 레이스, 십자가, 날개, 뱀파이어, 폐허 등 낡고 기이한 모티프는 동시대의 미감을 자극하며, 고딕 기호는 스타일을 넘어 억압과 혼란의 감정을 표출한다. 오늘날 문화 전반에 포진한 고딕은 불안과 혼돈을 응시하며 이를 미적으로 재구성하는 예술실천으로 주목받을 만하다. 고딕을 영속화하고 재해석하며, 동시에 그것이 내포한 불안과 공포를 교란함으로써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다. 고딕을 다시 사유하는 일은 과거의 망령을 전 지구적 위기 앞에 소환하고, 동시대를 성찰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