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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음악의‘이진법’

플랫폼엘컨템포러리아트센터에서 다원예술 공모 ‘2022 플랫폼엘 라이브 아츠 프로그램’의 수상자 ‘아하콜렉티브’와 ‘아우어퍼쿠션’이 후속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필자는 두 팀의 신작을 통시적인 미술사 관점에서 분석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한다. / 곽 영 빈

플랫폼엘 라이브 아츠 프로그램의 수상자 ‘아하콜렉티브’와 ‘아우어퍼쿠션’이 신작을 발표했다. 2022년 두 팀이 합작한 공연 <0과 1의 페이징>이 최종 수상작에 선정됐으며 2023년 그 후속작 <ppp pppp ppppp>(9. 21~24)를 발표했다. 아하콜렉티브는 1990년대생 여성 미술작가 4인 김샛별, 박주애, 정혜리, 최지원으로, 아우어퍼쿠션은 타악기 뮤지션 4인 김수진, 이세영, 우리, 안다해로 구성된 팀이다.

2022년 최종 수상한 아하콜렉티브와 아우어퍼쿠션의 합작 <0과 1의 페이징> 공연 전경.

2022년최종수상한아하콜렉티브와아우어퍼쿠션의합작<0과1의페이징>공연전경.

<0과 1의 페이징> 라이브 퍼포먼스 전경 2022 플랫폼엘컨템포러리

<0과1의페이징>라이브퍼포먼스전경2022플랫폼엘컨템포러리

먼저 컬래버의 주축인 아하콜렉티브의 ‘아하’라는 팀명은 감탄사임과 동시에 ‘예술을 싫어하는 예술가들(Artists who Hate Art)’이란 아이러니한 태도를 응축한 용어다. 이는 네 명 모두 동양화를 전공했음에도 ‘동양화’나 ‘전통’을 지켜내는 데 관심이 없다는 의지와도 관련 있다. 팀의 공식적 출발점이라 할 전시 <의문의 K->(아트스페이스이색 2018)에서 콜렉티브는 사​군자나 산수화, 한자와 같은 동양화의 구성 요소를 원뿔 등의 추상적 형체나 벽지, 혹은 전선 다발을 닮은 일상적 대상으로 치환했고, 이러한 시도는 이듬해 열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2019)에서도 이어졌다.

물론 이 고민이 역사적 진공 상태에서 나온 건 아니다. 2000년대만 해도 책가도, 문자도, 화조도 등의 한국화 전통을 다시 쓰거나, 병풍이나 족자에서 그림을 없애고 그 자리에 부수적인 장식으로 간주된 ‘장황’을 집어넣은 김지평(김지혜)의 인상적인 시도가 있었다. 이후 김신혜, 김현정, 손동현처럼 마이클 잭슨이나 힙합 아티스트인 투팍(Tupac), 혹은 배트맨 등의 대중문화 캐릭터를 족자의 초상으로 변주하고, 진공청소기 같은 광고 대상과 전통적 여인상을 병치하는 팝아트적 시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회화적 전통에 에너지를 집중한 선배와 다르게, 아하콜렉티브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소위 ‘미디어아트’ 영역에 주목해 왔다. 올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선보인 4채널 비디오 <몽유도원>(2023)과 수원화성 창룡문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 작업 <극(極) Equilibrium>(2023), 더현대서울과 유진상가의 옥내외 광고판에 설치했던 <Spanning>(2023)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역시 전인미답의 블루 오션이라 하긴 어렵다. <동굴 속 동굴>(2013), <가변적 풍경>(2016), <와유소요: 천천히, 느리게 걷기>(2022)에 이르기까지, 설치와 미디어 파사드, AR을 아우르며 동양화 전통에 대한 고민을 매체 차원에서 심화해 온 이예승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ppp pppp ppppp> 라이브 퍼포먼스 전경 2023 플랫폼엘컨템포러리
위 · <ppp pppp ppppp> 라이브 퍼포먼스 전경 2023 플랫폼엘컨템포러리. 아래 · 사진은 공연 후반부 아우어퍼쿠션의 타악기 연주 장면.

·<pppppppppppp>라이브퍼포먼스전경2023플랫폼엘컨템포러리. 아래·사진은공연후반부아우어퍼쿠션의타악기연주장면.

아하콜렉티브×아우어퍼쿠션 <ppp pppp ppppp> 3채널 비디오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45분 2023.

아하콜렉티브×아우어퍼쿠션<pppppppppppp>3채널비디오혼합재료가변크기45분2023.

시청각의 어긋난 공전

한편 실제 건물의 외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시도는 미디어 장르에서는 이미 레드 오션화되었다. 실질적으로 미디어 파사드를 이용한 실험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지 못한 채 공회전 중이었고, 아하콜렉티브는 자신을 차별화하는 요소로 사운드를 선택했다. 아하콜렉티브의 작업에서 사운드는 초기부터 이미지와 공존했지만, 2019년 <일월오봉>에서 활용한 광화문광장의 시위 소리나 <원(O)ne>(2020)과 같이 최근의 설치작업에서 존재감이 뚜렷해졌다.


지난 9월 말 열린 두 팀의 신작 발표에서는 시청각을 아우르는 전략으로 ‘디지털’에 대한 고민이 강하게 드러났다. 우선 제목은 ‘작게’ 또는 ‘여리게’를 뜻하는 ‘피아노(p)’, 즉 음량을 키우는 ‘포르테(f)’의 대척점에 선 기호를 나열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가 일종의 경합을 벌였다. 먼저 시각 요소는 입구 좌측을 제외한 삼면의 스크린에 영사되었다. 화면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인용구를 포함한 파편적인 구문과 더불어 점멸하는 이미지가 등장했고, 갤러리 바닥에 가깝게 설치된 채 제자리를 도는 반원 형태의 조형물이 서로 시차를 두고 공존했다.

여기에 청각 요소가 개입한다. 여성 성악가가 단선율의 무반주 아카펠라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으며 뒤이어 마림바를 주축으로 삼는 연주팀 ‘아우어퍼쿠션’이 곡을 이어받았다. 전반부의 마림바 연주는 작은 북인 ‘스네어 드럼(Snare Drum)’을 동반했고, 공연은 선율과 화성이 배제된 타악기 연주로만 마무리되었다.


<ppp pppp ppppp>의 중핵은 이 후반부 연주라 할 수 있다. 공연에서 연주한 곡이 미국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곡가인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나무 조각들을 위한 음악>(1973)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에는 스티브 라이히의 대표작 <피아노 페이즈>(1967)에서 유래한 ‘페이징(phasing) 기법’을 사용했다. ‘페이징’은 여러 악기가 같은 소절을 연주하다 점차 한 박자씩 어긋나게 해 새로운 음의 조합을 찾아내는 작곡 기법이다. 공연의 키포인트인 ‘페이징’을 활용해 동일한 음형이 조금 빨리, 때론 늦게 겹치며 소리의 패턴을 만들어냈다.


아우어퍼쿠션은 새로운 청각 패턴을 찾기 위해 사용하던 타악기 ‘클라베(Clave)’ 대신 다른 악기를 찾았다. 원래 클라베는 스페인어로 ‘열쇠’를 뜻하는데, 나무로 된 단소 모양의 타악기는 각각 라(A), 시(B), 도 샵(C#) 레 샵(D#), 한 옥타브 높은 레 샵(D#)을 낼 수 있다.

아하콜렉티브×아우어퍼쿠션 <ppp pppp ppppp> 3채널 비디오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45분 2023.

아하콜렉티브×아우어퍼쿠션<pppppppppppp>3채널비디오혼합재료가변크기45분2023.

공연 종료 후 관객에게 인사하는 아하콜렉티브와 아우어퍼쿠션.

공연종료관객에게인사하는아하콜렉티브와아우어퍼쿠션.

한편 음악과 디지털이 공유하는 감각의 논리를 포착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두 팀의 시도에는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홍수의 시대에 감각 실험의 논리를 ‘미니멀리즘’으로 설명한다는 건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공연에서 연주된 <나무 조각들을 위한 음악>이 웅변하듯, 라이히가 미니멀리즘을 천명하고 규정했던 건 이미 반백 년도 전의 일이다. 챗GPT와 미드저니로 대표되는 이른바 ‘딥 러닝’ 시대의 인공 지능이 만들어내는 시청각적 작업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 기계적(mechanical)이라 규정할 수 없다. 가령 팝과 아방가르드를 오가며 작업해 온 대표적 전자음악가인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1996년부터 ‘생성 음악(Generative Music)’을 꾸준히 세공했고, 이는 몇 년 전 블룸(Bloom)이라는 앱으로 대중화됐다. 이런 흐름 가운데 페이징 기법처럼 초기 설정한 조건에 따라 무한대로 변형되는 형식의 음악을 ‘기계적’이라 부르며 매체 실험 삼는 건 거의 범주 착오에 가까운 일이다.

생성 음악의 특성을 ‘창발적(emergent)’이라 해보자. 이는 플랫폼엘 공연장의 스크린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던 라이히의 기계적 이미지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아하콜렉티브와 아우어퍼쿠션의 퍼포먼스는 모든 예술가에게 숙명과도 같은 ‘성취의 우울’을 잘 보여준 사례다. 다만 이 우울감을 적극적인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두 팀이 함께하는 실험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ppp pppp ppppp> 라이브 퍼포먼스 전경 2023 플랫폼엘컨템포러리.

<pppppppppppp>라이브퍼포먼스전경2023플랫폼엘컨템포러리.

스팟커뮤니케이션(2022.01.24~)
세화미술관(2024.01.31~)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