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평의 비명, 이것이 문제다!
얼마 전 나는 한 국공립 미술관에서 주관하는 평론상의 심사위원을 맡아 약 3달간의 긴 심사 과정을 거치며 여러 생각을 했다. 그간 다양한 종류의 심사를 경험했지만 정작 본업인 비평을 심사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부터가 동시대 현장에서 비평가로 생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심사가 없음은 공적 지원이 없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작가 수가 증가하고 기관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저널도 늘어나면서 소위 글쓰기 시장은 전보다 확대되지 않았냐고. 온라인 플랫폼이 증가한다고 오프라인 잡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니 물리적으로야 글을 요구하는 창구는 늘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확대가 글쓰기 환경이 나아졌음을 의미하는가? 해당 심사에서 나는 5명의 외부 심사위원 중 미술비평가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는 유일한 참여자였다. 심사평을 쓰며 이전의 심사위원 명단을 보자 비평가의 희소성이 굳이 올해만의 특수성은 아님이 분명해졌다.
첫 회(2015)의 경우만 5명의 심사위원 중 3명이 현장 비평가 출신이었고, 2회(2017)는 전업 비평가는 없었으며 평론과 연구 활동을 병행해 온 교수/비평가가 대세를 이뤘고, 3회(2019) 역시 미학이나 미술사, 사회학을 기반으로 연구 활동을 하며 비평을 겸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심사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글쓰기와 평론 역량에 대한 판별 능력이므로, 비평가 여부가 심사의 자격이나 질에 직결되진 않는다. 하나 전업 비평가가 첫 회 2명을 제외하고 올해 필자 이전까지 전무하다는 사실은 심사를 할 정도의 이력이 쌓일 시간을 비평만으로 버티기 쉽지 않음을 뜻한다. 현재 여러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동을 시작한 젊은 필자들이 심사를 할 단계가 되면 비평가 풀이 풍성해질 것인가? 유감스럽지만 구조적 쇄신이 동반되지 않는 한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이하는 이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짧은 논평이다.
‘수량 경제’의 시대
아마도 일선에서 느끼는 현장의 가장 큰 변화는 갈수록 가속되는 속도와 작가 수의 증가일 것이다. 전시가 너무 많아서 반의 반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¹⁾ 전시의 폭증이 비평 환경에 끼치는 영향은 촉박한 마감, 짧은 원고 분량에서부터 질적 검증 부재, 글 가치 하락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고 다층적이다. 2017년 이후 수도권 주요 레지던시의 경쟁률은 모두 25:1을 넘어섰다. 제도가 보완되며 창작 기금이 늘어났지만 작가 수의 증가는 이를 상회해 질적 우수성이 공모 선정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경쟁의 가속화는 상대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남보다 많이 우수한 성과를 생산해야 함을 뜻한다. 이는 곧 전시의 폭증이다. 예산은 한정되고 공간도 유한한데 수요는 많으니, 기관 입장에서는 한 전시에 투자를 집중하기보다 전시를 가능한 많이 유치하고 예산을 분배하는 것이 네트워크 형성이나 투자율 향상에 유리하다. 이런 까닭에 중대형 미술관의 중견 작가 전시를 제외한 대부분 기관의 청탁은 제한된 예산에 맞춰 짧은 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작가 대상의 작가론은 A4 2~3장을 넘지 않으며, 잡지의 기사도 긴 경우 2~3장, 리뷰 등 짧은 경우는 1장이고, 레지던시 매칭 원고도 1.5~2장이 평균이다. 짧은 글을 선호하는 풍토는 근본적으로 긴 호흡의 글이 효율성이나 홍보 측면에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탓이다.
전시 수가 급증하면서 홍보는 기관이 사활을 거는 제1의 가치가 된다. 어떻게든 보여야 생존이 보장되므로 홍보는 내년 예산과 업계의 인정을 위한 핵심 통로다. 홍보의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글도 플랫폼 특성에 맞춰 짧은 분량이 선호된다. 더욱이 온라인 플랫폼도 텍스트 중심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이미지 중심인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기에, 해독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하는 밀도가 높은 글은 매체 적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급하게 진행되는 한국식 행정과 비교적 많은 전시의 양 또한 긴 글을 선호하지 않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다. 준비 기간이 넉넉하지 않기에 글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고, 홍보를 위해서는 더더욱 글이 최대한 일찍 나올수록 좋다. 촉박한 마감 일정이나, 전시 개막 전 선도록의 요구는 홍보와 행정 편의가 양질의 글 생산보다 우선된 결과다.²⁾
이런 환경에서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젊은 필자의 경우 짧은 원고를 반복 생산하는 것으로 글쓰기 훈련을 시작하게 된다. 아마도 처음에는 문제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글이 짧으니 부담 없고 연습하기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1~2장짜리 쪽글을 반복하다 보면 사고와 상상력의 폭도 그 정도 수준에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긴 글이 요구하는 호흡과 밀도는 재기나 문장 감각만으로 감당할 수 없고, 방대한 자료를 소화하고 전시의 성격과 작가의 궤적에 맞게 글의 방향을 설정해 작업을 떠내고 이론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획득된다. 다른 한편, 현장이 긴 글을 아예 요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견 작가의 대형 회고전이나 큰 규모의 국제전의 경우, 전시에 담론적 의미를 부여하고 작가의 미술사적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연구 성격의 심층 비평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동시대 현장의 글은 담론의 권위가 필요할 때 간혹 요구되는 긴 글과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요구되는 짧은 글로 양분되어 있다. 하지만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글 다수가 짧은 글이고, 갈수록 빨라지는 현장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버거우므로, 긴 호흡의 글을 훈련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기가 쉽다.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무게감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중견 필자의 토대는 장기적으로 박약해질 수밖에 없다.
글 분량의 감소, 홍보의 비중 증가, 짧은 집필 기간은 모두 미술계의 양적 팽창 및 속도의 증가와 결부되어 있으며, 보다 근원적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요구받는 동시대 자본주의의 효율 경제에서 미술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긴 글이 필요한 경우에도 연구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인류세, AI, 신유물론 같은 유행하는 주제를 외주의 형태로 빠르고 얕게 흡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주제의 트렌디함과 전문가의 명성만 취하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비판적 거리감과 숙고의 시간이 필수적인 비평과 담론이다. 긴 호흡의 글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생산과 무관하게 멈춰서 현황에 대해 통찰하고 질문을 던지며 기존과 다른 생각을 하는 잔여의 시간”³⁾의 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곧 비평의 자리다. 더군다나 동시대가 이미 “생산하기, 소비하기, 폐기하기가 쉬지 않고 이뤄지는, 그리하여 삶의 소진과 자원의 고갈이 재촉되는”⁴⁾ 24/7의 항구적 불면 상태이기에, 미적 자율성의 기치 아래 교환 가치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미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촉구된다. 수량 경제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잠시 멈춰 서서 성찰하고 토론하며 숙고할 수 있는 비평의 시간은 끝없는 연결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저항이자 미술 본연의 무용함의 가치를 수호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성과 효율성에 밀려 밀도 있는 글을 생산하기 어려운 여건이 시장 논리가 장악한 한국 동시대미술계의 현주소다. 전반적인 글 가치 하락의 시대에 좁아지는 비평의 지반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도적인 지원의 필요성
가장 시급하고도 어려운 실천은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조금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경우 기관에 속한 직원의 입장에만 서지 않고 전문가이자 미술계의 일원으로서 보다 양질의 글이 나올 수 있도록 행정적 뒷받침을 할 수 있다. 최소한 설치를 보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 주는 것도 큰 지원이다. 미술사 논문과 다르게 비평은 작업의 구체적인 질감과 전시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설치 상황에서 작업을 실견할 때 첫인상이 글의 키워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이 구현하는 의미 층위 중 관람자에게 가장 강력하게 다가오는 요소가 해당 작업의 중심 테마이기 때문이다. 작업의 실체와 유리된 비평은 해당 작업의 본질을 통찰하지 못한 것이기에 정확하지 않으며 완성도가 떨어진다. 미세하지만 실상은 거대한 이 같은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질적으로 우수한 글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제일 중요한 토대다.
작가 또한 비평을 작업을 돋보이게 해주는 수사나 장식이 아닌, 또 다른 협업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태도는 비판적 존중이다. 비평가가 자유롭게 생각을 개진하도록 협조하되,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 성실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필자도 긴장감을 가지고 성의 있게 글에 임할 것이다. 필자의 명성만 보고 글의 내용을 보지 않거나 글을 네트워킹의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태도는 열심히 글을 쓸 이유를 상실케 한다. 이렇게 형성된 자괴감이 모이면 비평의 질은 갈수록 추락한다. 비평가도 노력해야 한다. 짧은 글만 요구받는다 하더라도 막 써도 되는 글은 없다. 현실적 어려움과 별개로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존의 해석을 답습하지 않고, 자기 복제를 하지 않으며, 계속 공부하고 발전해야 한다. 글 자체의 질적 차이를 판별하고 이에 맞는 평가가 수반돼야 건강한 방향의 선순환이 시작된다.
직접적인 이익과 연계되는 양적 가치가 질적 가치보다 우위에 놓이는 수량 경제의 시대는 느리고 긴 호흡과 비판적 성찰 및 거리감을 요구하는 비평의 위기를 심화한다. 제도적인 직접 지원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저널의 역할이다. 전시가 너무 많아졌기에 이를 선별해 기록하는 미술잡지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특히 종이 형태로 인쇄되는 오프라인 잡지의 책임이 막중하다. 도메인이 없어지면 흔적조차 사라지는 온라인 플랫폼은 기록용으로 불안정하다. 더군다나 이미 정보 제공의 기능이 소셜 미디어로 이전된 상황에서, 오프라인 잡지의 역할은 트렌드를 단순 반영하기보다 현상의 의미를 분석하고 기록하며 역사화하는 쪽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것은 현장을 공시적·통시적으로 분석하는 세태 비평과 시대 비평이 강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역사를 쓰는 첫 번째 자리로서 저널은 비평이 비판적 거리라는 예봉을 유지하도록 동반자로서 지원해야 한다.
다음으로 제언하고 싶은 것은 긴 호흡의 비평에 대한 연구 기금의 마련이다. A4 2장 남짓하는 짧은 글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젊은 비평가는 비슷비슷한 작가론을 쓰다 소진되어 사라진다. 장기적으로 중견 필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비평가가 생계를 위해 짧은 글에 매이지 않고 관심 주제를 충분히 연구하고 심층 비평을 쓰도록 연구 성격의 지원이 필요하다. 전시처럼 보여줄 유형의 성과물이 없는 비평은 공공 기금 지원에서도 가장 소외된 영역이다. 작가, 큐레이터의 창작 준비 및 활동을 지원하는 기금의 수와 규모에 비해, 비평가를 지원하는 기금은 극히 드물다. 비평적 시선과 깊이는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형성된다. 동시대미술계를 수평적이고 수직적으로 관통하는 비평적 예리함은 가능성 있는 인재가 성장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중견이 된 전업 비평가가 늘어나야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평론상의 응모작들은 생각보다 가능성이 많았다. 이들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전개할 수 있는 구조적 지원이 많아지길 바란다.
1) 문혜진, 「대량 이미지 시대와 동시대 미술 현장의 변화」, 『한국근현대미술사학』(제42집, 2021), pp.108~126.
2) 선도록의 문제는 다음을 참고하라. 문혜진, 「비평이 목도한 21세기」, 『월간미술』(2021년 1월호), p.97.
3) 문혜진, 「대량 이미지 시대와 동시대 미술 현장의 변화」, p.124.
4) 조너선 크레리, (김성호 역), 『24/7 잠의 종말』(문학동네, 2014), p.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