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증언하는 전쟁의 현실

아트인컬처 다시 읽기
2003년 6월호 「사진이 증언하는 전쟁의 현실」
2025 / 06 / 18

지난 겨울 미군 장갑차에 짓밟힌 두 소녀의 처참한 사진은 전국을 분노하게 했고, 촛불 추모를 이끌었다.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글과 말로 전할 수 없는 진실을 전달한다. 우리는 사진으로 역사의 현장을 기억한다. 애디 아담스의 베트공의 사살 사진은 반전 여론을 들끓게 했고, 베트남전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넝마처럼 길에 널린 시체들, 죽음에 무감각해져 버린 사람들의 초점 잃은 시선, 공포의 표정으로 일그러진 포로들의 얼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순간의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그럼에도 이들 시선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다. 사진의 감동은 구도나 표정, 배경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의 극적인 순간을 함께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 현장성에 있다.

전쟁 사진은 섬뜩한 진실, 바로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증언한다. 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과거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작가들은 분노의 포효를 작품에 담았다. 화보에 담은 전쟁 사진은 중립적인 기록도 아니고, 흥미를 돋우는 볼거리도 아니다. 인간의 폭력성을 일깨우는 경고의 메시지다. 전쟁 사진엔 아군과 적군이 없다. 죽음을 마주한 이성을 잃은 폭력과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 사진들이 전쟁을 담은 인류의 마지막 사진이기를 바란다.

1) 래리 버로즈 <헬리콥터> 1965
2) 피커렐 <베트남의 피에타> 1965
3) 홀로코스트 1945
4) 래리 버로즈 <전우애> 1966

1) 월남전은 사진기자가 전투의 한가운데에서 생생한 사진을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양키파파13부개 기장이 추락한 헬리콥터에서 두 명의 부상병을 옮겨 실은 후 이동하던 중, 발사하던 기관총이 말을 안 듣자 소리치고 있다.

2) 피에타는 예수의 죽음에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으로 서양에선 모성애의 아이콘이다. 월남전에서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어머니.

3) 유대인집단수용소 홀로코스트의 비참한 모습. 종전과 함께 맨 처음 다가간 미군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뭘 할까요?" 아도르노는 우리 인류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4) 부상 당한 흑인 병사가 후송되던 중 쓰러져 있는 다른 동류 부대원을 발견하고 다가가려는 것을 옆에서 만류하고 있다. 피부색의 다름을 뛰어넘는 동료애가 전쟁터의 살벌함을 새삼 강조한다. 『라이프』지의 대표적인 전쟁사진으로, 사진을 촬영한 래리 버로즈는 이후 헬리콥터 추락으로 라오스에서 죽음을 맞았다.

1) 미단스 <맥아더의 필리핀 상륙> 1945
2) <네이팜탄> 1972
3) 소련군 탱크 1991
4) 토판 <방공호의 아이들> 1940

1) 사진은 때로 전쟁을 미화하고, 영웅을 만든다. 이 사진은 미군과 맥아더를 동시에 미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 사진의 장면은 한 조각가에 의해 동상이 되어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한 조각으로 인천에 서있다.

2) 네이팜탄이 잘못 조준되어 미군 지역과 시민들이 사는 곳에서 폭발했다. 한 어머니는 그 와중에 이미 죽어버린 아이를 들고 뛰쳐나왔다. 한 소녀는 불 붙은 옷을 벗어버리고 뛰어나왔다. 사진작가 닉 웃은 그 소녀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그 후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종전 후 닉 웃은 미국에 와 살았다. 그 소녀(Phan Thi Kim)는 캐나다로 갔고, 킴과 웃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킴은 웃을 '삼촌 아저씨'라 불렀다.

3) 크리미아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소련군부의 탱크. 쿠데타는 출혈 사태 일보 직전에서 고르바초프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4) 영국에서 독일군의 폭격을 피해 방공호에 들어간 아이들.

1) <해골의 길> 1981
2) 피터 턴레이 <세계의 잃은 사람들> 1988
3) 프레이저 도허티, 헨드릭스, 어빙 페트린 <질문: 아이들마저도? 대답: 아이들마저도.> 1970
4) <탱크에서 노는 아이> 1982

1)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킬링 필드'의 풍경화. 킬링 필드에서 오리가 물 위를 더가는 풍경화가 그려질 수 있을까?

2) 서구 식민지에서 해방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종족 전쟁이 일어났다. 현재에도 빈발하고 있는 이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와 부녀자,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농부들이다. 작가 피터 턴레이는 질곡의 현장, 아프리카 6개국을 오가며 찍은 사진을 모아 『세계의 집 잃은 사람들』이란 책을 펴냈다.

3) 아직 걷기도 어려운 아이와 전혀 저항할 수 없는 민간인마저도 흔히 희생되는 전쟁을 사진 위에 무전이나 전화의 대화 방시긍로 재현하고 있다.

4) 니카라과에서 아직 포탄이 장착된 탱크에서 노는 아이들. 전쟁과 폭력이 일상화된 현실을 보여준다.

1) 워너 비숍 <한국전> 1953
2) 애디 아담스 <즉결 처형> 1968
3) 로젠탈 <이오지마의 성조기> 1945
4) <인민군 포로들> 1950~53

1) 한국전쟁 중 부모를 잃은 아이들. 이 사진은 1950년 당시 '강구리'라는 아이와 함께 한국의 인상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2) 체포된 '베트콩'을 즉결 처형하는 장면이 시리즈로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 장면을 찍은 애디 아담스는 이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길 위에서 총을 쏜 사람의 이름은 구엔 곡 로안 남베트남 경찰국장이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수십 년 후 그가 미국의 한 마을에 살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사진 속의 처형자라는 신분이 밝혀지자 그는 동네 주민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떠나줄 것을 요청받았다.

3) 미군의 이오지마섬 탈환 작전은 전사에 남는 치열한 전투였다. 단지 8평방 스퀘어마일의 섬을 빼앗기 위해 2만 여명의 일본군과 7천 여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이 탈환에 성공한 후 이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의 승리를 알리는 '상징'이 됐다. 사진이 너무 그림처럼 멋있어 '헐리우드식 연출' 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자신이 있었을 뿐이라며, 당시 함께 있던 동료의 동영상 촬영과 함께 구체적 상황을 제시했다.

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편된 세계 속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것은 최초의 이념에 의한 전쟁, 즉 '냉전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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