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서울』에 실렸던 ‘애인의 선택을 콤퓨타로’는 친절하다. 도식화된 분류법이기는 하지만 각자가 원하는 얼굴형과 헤어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초롬과 다소곳함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미지 사이에서 뭔가 선택하는 일은 일종의 ‘게임’이라는 인상을 줄 뿐이다. 30여 년 전 버전으로 말하면, 나의 애인을 기꺼이 맞춰보고 고를 수 있단다. (!) 콤퓨트데이트센터 광고는 눈, 코, 입을 그려놓고 숫자를 고르며 미지의 얼굴을 완성시키는 어릴 적 놀이를 떠오르게 한다. 뭔가 선택할 수 있다는 데서 위안을 받는 것일까. 이들의 매력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이미지를 ‘우연과 계시’로 만들어가는 열린 경로에 있다. 이미지에 관한 우연과 계시, 독자적인 상상의 작동법을 펴기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편재하는 오늘날의 시각 체계는 정해진 유통 경로가 너무도 확연하다.
이미지의 독법은 2007년 대선을 앞둔 정치인 앞에서는 ‘실천’이 된다. 한 국가의 대통령 후보감들에게 외모는 옵션이 아니다. 유권자의 선택이 지상 최대 과제인 이들에게 이미지와 선전의 관계는 필수적이며, 나아가 필사적인 어법이 된다. 그러니까 이상형의 얼굴에 유유자적 동그라미를 치는 자세를 유지하기에 이미 우리는 이미지의 허상과 권력에 수없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지의 취향과 그것을 둘러싼 게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의 굴절을 벌써 알고 있다고 한들 말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이미지’를 이야기하려는 시도는 그가 헤어스타일을 “더 짧게, 더 강하게” 바꿨다는 최근의 기사 앞에서 한 번 더 굴절된다. 우리 사회에 어디 ‘박근혜 이미지’만큼 그 정체성이 간단치 않은 것이 있겠는가. 눈빛이 형형했던 선진 과학자가 어느 날 헐벗은 축산업계의 농장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기자가 안티냐”는 댓글이 달릴 만큼 동일 인물의 서로 다른 사진에서 굴곡이 드러날 때도 유독 박근혜의 이미지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 일관성은 “정체성은 흔들림에 기초한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닌자의 훈련처럼 절제되어 있고, 역사적 흐름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단아한 자태는 저널리즘을 통해 변한 바 없었고 싸이월드에 공개한 생활의 모습에는 애틋한 정서와 회고적 찬사가 줄지어 따른다. 청와대에서 찍은 유년 시절과 퍼스트레이디 대행 시절의 사진, 테니스 치기, 차 따르기 등 공과 사를 교차하는 사진을 보고 일촌들은 “당신은 영원한 어머니입니다”, “육영수 여사와 똑같네요”라고 감탄하며 현재와 과거를 횡단한다. 우리는 그가 누구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편집된 이미지, 그 ‘이후’만을 보게 된다.
선거를 앞두고 전투복을 착용하고 국가 지도자답게 헤어스타일을 바꿨다는 기사 너머에 한 오락 TV 프로그램에서 박근혜는 ‘국민의 대표 여성이자 귀감’으로 묘사된다. 당 홍보 광고에서는 잘못하는 아들을 회초리로 때리는 어머니라는 허구적 존재로 상징되기도 했다. 그 스스로 세상이 변화하는 만큼 기존의 여성적 이미지를 벗어나겠다고 일갈하는 시점에서, 현모양처라는 단어는 너무도 구태의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다 지나가 버린 이미지라고 치부하는 사이, 스펙터클한 사회의 반동적 상징인 ‘현모양처’풍의 기억과 권력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이미지를 실체에 덧씌운다. 말하자면 일관성 있게 변하지 않는 것은 박근혜의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여자 고등학교에서 교훈으로 수렴되는 그 오래된 단어의 작용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이상적인 여성 이미지는 여전히 그 단어를 빗겨나가지 못했다. 미술평론가 김장언이 작가 송상희의 작업을 읽어내며 이야기하듯 육영수는 “근대성의 의미 구조 내부에서 현모양처의 가장 완성된 형태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기능했으며, 현모양처는 초역사적이고 탈속적인 존재로 사회에 존재했다. 작년 5월 신촌 피습 사건 당시, 몇 센티미터만 내려왔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는 의사의 진단에 “나의 상처로 국민의 상처가 봉합되었으면 한다”라는 박근혜의 정치적 수사에는 상처를 구국의 정화 과정으로 확대하는 이미지의 오류가 보인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성과 민족적 정체성으로서의 전통성 취득은 사회 구성원인 여성에게 부과되는 공적 임무였다. 보통 여성이든 국모(國母)를 지향하는 여성이든 그들은 갈등과 모순, 긴장을 매개하는 보완적인 사회적 기호로 ‘이상화’되었다. 여성 이미지의 사회적 기제와 그 경로를 살펴볼 때, 식민지 시기 조선미술전람회에서의 여성 재현은 남성과 일제라는 이중의 주체에 의해 대상화된다. 당시 작가가 그린 여성 이미지는 일제가 표방했던 ‘양처현모로서의 자질을 얻고 (…) 황국 여성의 양성’을 분명히 하는 여성 교육 지침과 조응한다. 현모양처는 비단 유교적 신분관이 아니라 근대 제도를 마찰 없이 정착시키고자 했던 하나의 충격 흡수 장치였다. 즉 일제가 원하는 국민을 만들고 어머니에 의해 그것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도록 전략화한 것이다. 최우석의 <여인상>(1938)이나 김기창의 <모임>(1943), 윤효중의 <현명>(1942) 등은 사적인 공간에서도 국가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여성의 모습, 보호자이며 개선자인 역할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현모양처 담론은 박정희 정권이 근대화 프로젝트에 활용한 이미지이자 눈에 띄게 표방한 여성 교육의 지침이기도 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뽑은 15명의 ‘위인’ 중에서 여성으로는 신사임당과 유관순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난당한 민족과 현모양처를 표상하는 두 이미지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 요구되는 희생과 인내의 벡터(vector)였던 셈이다. 국가적 사업으로 화가 김은호는 신사임당 영정을 그렸고, 놀랄 만큼 스테레오 타입이 된 여인상이 1960~70년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꾸준히 재생산되었다. 당시 사회적으로는 이과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었던 반면, 여성은 향토적이고 전근대적인 이미지가 곧 일종의 전범으로 그려졌다. 다양한 차이가 있으나 그들이 입고 있는 전통 의상, 시선, 조신한 자세 등은 앞서 이야기했듯 초역사적이고 탈속적이다. 이렇듯 이상적인 여성상의 재현은 주체적이어야 할 이미지에 덧씌워진 타자의 ‘수동적인 이상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타자의 필요가 증폭되면서 만들어낸 이상화(理想化)의 징후들은 여전히 지금의 시점에서도 존재한다.
다시 박근혜의 이미지로 돌아가서, 그를 두고 한쪽에서는 아버지의 ‘독재’와 ‘개발’ 시대의 향수를, 다른 한쪽에서는 현모양처로 집약되는 어머니의 ‘자애’를 투사한다. 그래서일까. 혹자는 박근혜를 ‘박정희와 육영수 이미지의 혼재됨’이라고 읽어내면서 그가 가는 곳에는 1960~70년대의 박정희 향수와 과거로의 회귀가 뒤따른다고 설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 있는 타인의 기억들이 유일무이한 이미지의 힘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핀을 이용해 뒷머리를 부풀리는 육영수 여사식 헤어스타일에서 벗어나 숏컷으로 변모한 것은 대상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다. 이제는 힐러리와 대처라는 또 다른 타자이자 모델이 저 멀리서, 그러나 아주 강력한 힘으로 주위를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하계에서 보내온 이미지라면 모를까. 낯선 이미지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수많은 사람이 달려들어 해석하고 그 이미지의 운동 방향을 점치며, 의도를 포착한다. 많은 이미지가 있었지만, 또 많이 사라진다. 박근혜 이미지를 생각하다가 지하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 사람 덕분에 힐러리의 헤어스타일을 보게 되었다. 과잉된 ‘이미지 정치’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미지의 느슨한 쓰임 또한 견디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