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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회화,‘나’를비추다

더페이지갤러리,미국화가한국개인전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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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ghtWave>유리 190.5×236.22cm2019

롭 윈(Rob Wynne)은 유리를 물감처럼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고체로 표현한 이미지는 빛이 일으키는 산란과 표면의 스케일을 따라 회화와 조각을 오간다. 작품 정면에 드러나는 것은 작가의 움직임이지만, 측면은 그가 통제하지 못한 우연한 양감을 노출한다. 평면의 제스처와 입체의 공간성을 동시에 표출하는 조각적 회화다. 그러나 작가가 처음부터 유리 작업에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이후 활동 초창기에는 추상화를 주 장르로 삼았다. 또한 마르셀 뒤샹, 레이 존슨 등이 추구했던 다다이즘에 관심을 두고 산업 재료를 이용한 조각, 설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변화는 1996년 개인전 <Sleepwalking>(뉴욕 홀리솔로몬갤러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왔다. 롭 윈은 당시 자신의 발 모양을 본뜬 유리 조각을 계획하고 있었다. 주형을 들고 공방을 찾아 제작에 돌입했다. 모래를 화로에 넣었다가 용융 상태의 유리를 화로에서 꺼내려던 찰나, 살갗이 타는 듯한 열기에 그만 용기를 놓치고 말았다. 붉은 액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작가는 빠르게 식으며 투명해지는 유리에 그만 시선을 빼앗겼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그곳에 우주가 있었다.” 올망졸망한 방울이 펼쳐져 별빛처럼 반짝이던 순간, 롭 윈은 유리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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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fall>유리241.3×177.8cm2016

거울 세계, 당신이 주인공

더페이지갤러리에서 롭 윈의 한국 첫 개인전 <After Before>(8. 19~9. 30)가 열리고 있다. 캘리그래피와 추상, 조각 등 총 26점을 선보인다. 의도적으로 어순을 어긴 제목엔 우연한 실수를 계기로 탄생한 작업 세계를 반영했다. 일탈이 새로운 발상을 주었던 작가의 경험처럼, 관객 역시 전시를 통해 새로운 사유에 도달하기를 바란다고.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텍스트’다. 캘리그래피는 롭 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 스타일이다. 한국 관객에게 롭 윈을 알린 첫 작품도 텍스트작업이었다. 2015년 하우스오브디올에서 롭 윈은 브랜드 카피를 딴 <J’adore>를 공개했다. 디올의 럭셔리 아이덴티티를 투영한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번 개인전에도 ‘Finally!’, ‘The Taste of Rain’, ‘I have been Looking for Myself’ 등 다양한 문구를 작품화했다.

롭 윈은 유년 시절 난독증이 심했다. 작가에게 활자는 의미가 불투명한 추상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가 작업 초기에 추상화를 그렸던 배경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롭 윈은 더 이상 장애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유년 시절 나를 괴롭혔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었다. 태도의 변화는 곧 인생을 바꿔놓았다. 독해의 어려움이 오히려 학구열을 진작했다.” 유리 글씨를 쓰기 위해 롭 윈은 끊임없이 대화를 기록하고 책을 읽는다. 주로 차용하는 레퍼런스는 17~18세기 하이쿠다. 같은 문자가 반복되더라도 모양이 모두 다르다. 고유한 형태를 지닌 롭 윈의 서체는 문맥이 아닌 이미지의 힘을 빌린다. 그 결과 어떤 글보다 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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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AfterBefore>전경2022더페이지갤러리

두 번째 키워드는 ‘미러링’. 롭 윈의 작품 공정은 질산 은 코팅과 광택제를 바르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이 후처리는 유리 바닥에 빛 반사를 만든다. 멀리서는 투명한 유리가, 가까이서 바라보면 거울처럼 상을비춘다. 2019년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Float>는 거울 효과를 극대화한 전시였다. 당시 롭윈은 상설전이 진행 중인 신고전주의 전시관을 그대로 사용했다. 18~19세기 조각을 유리 회화에 투영해 고전과 동시대미술의 상관관계에 접근했다.

한편 미러링은 감상자에게도 적용된다. 관객은 텍스트를 읽고 이미지를 관찰하는 동시에 그곳에 비친 자신을 바라본다. 이때 관객은 작품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다’고 적은 <I have been Looking for Myself>는 감상자가 작품의 거울에 들어오면서 그 문장의 의미를 실현한다. <Yes!>, <Finally!>에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감상자에게 전이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마지막 키워드는 ‘연결’이다. 그리드에 맞추어 작품을 설치하는 일반적인 전시와 달리, 롭 윈은 작품을 불규칙적으로 배열한다. 또한 프레임의 부재는 비정형 이미지와 맞물려 작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불규칙한 배열과 불투명한 경계. 두 특성은 독립된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서로 다른 텍스트와 이미지가 호응하며 하나의 주제로 통합된다. 가령 <Blue Day>는 캘리그래피작업 <Shine> 왼편에 놓임으로써 심상을 배가한다. 작품의 파란 나비는 짧은 벽을 건너 햇빛을 만난다. 볕이 쏟아지는 은결 위로 나비가 나풀거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한데 배치된 <Bright Wave>와 텍스트작업 <Tip toe>, <2 Seconds of Happiness>도 하나의 풍경으로 연결된다. 포말이 부서지는 파도를 그린 <Bright Wave>의 모서리는 발끝 <Tip toe>에 닿는다. 눈부신 물결이 마음을 함께 적시자, 짧은 순간에 ‘행복’ <2 Seconds of Happiness>가 찾아온다.

문자 배열을 바꿔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아나그램 놀이처럼 롭 윈의 조합엔 정답이 없다. 작품의 주인공, 즉 거울에 비친 ‘나’가 내놓는 해석이 곧 답이다. 롭 윈은 자신의 작품을 처음 보는 한국 관객을 위해 한 가지 당부를 전했다. “열린 마음과 모든 상상력을 동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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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뉴욕출생.뉴욕프랫인스티튜트순수미술전공.플로리다가블락갤러리(2022,2017),파리갤러리미테랑(2022,2016),필라델피아록스갤러리(2020),플로리다노턴미술관(2019),뉴욕브루클린미술관(2019),로스앤젤레스아서로저갤러리(2016),뉴욕39그레이트존스(2016)등에서개인전개최.뉴욕현대미술관,파리퐁피두센터,보스턴미술관등에서작품소장. 현재뉴욕에서거주하며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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