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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미래의슈퍼히어로

부카레스트국립현대미술관,11년만의한국-루마니아국제교류전

2024/03/13

백현진 <페이퍼 비즈니스> 한지, 애나멜 스프레이 페인트, 영상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3

백현진<페이퍼비즈니스>한지,애나멜스프레이페인트,영상혼합재료가변크기2023

루마니아 부카레스트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래의 슈퍼 히어로 연대기: 두 번째 에디션>(2023. 11. 3~4. 1)이 열렸다. 작가 14명(팀)이 참여해 회화, 조각, 공예, 미디어, 퍼포먼스 등 작품 17점을 선보였다. 한국 작가로는 김희천, 이샘, 백현진이 참여한 국제 교류전이다. 필자는 불확실한 미래를 받아들이는 양국의 태도를 비교하고, 오늘날 ‘미래’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고찰한다. / 이 설 희

<미래의 슈퍼 히어로 연대기>는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열린 한국과 루마니아의 교류전이다. 양국을 오가는 큐레이터 앙카 미흘렛의 큐레이토리얼 연구에서 출발했다. 이번 전시는 총 3부작의 두 번째 에디션이다. 시간의 흐름과 노화, 지구의 미래, 로컬과 글로벌의 균형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상이하면서도 접점을 공유하는 동남부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올리고, 트랜스-로컬이란 의제 아래 미래 예술의 역할을 논의했다. 그 결과물인 전시는 시공간에 편차를 둔 세계관으로 연결됐다. 물질과 디지털, 어린 시절의 기억 창고와 디스토피아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메타 커뮤니티 등…. 렌즈, 아카이브, 기억을 통해 미래를 생각하는 시나리오를 그려나갔다. 이런 세계관은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다니엘: 슈퍼히어로 연대기』(2019)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책은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려는 한 소녀의 노력을 그리는데, 책에서 다루는 이중적 시각을 차용해 전시에 녹여낸 점이 흥미롭다. ‘미래 지향적 사고’와 ‘현재의 실천적 수행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둘의 개별성과 혼재는 작품의 행간을 넓히거나 좁혀 전시에 리듬감을 준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관점과 더불어 희망, 불확실한 현재에 고정되어 있는 두 관점이 공존해 전시에 독특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준다.

불확실함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

라리사 시탈은 건축과 디자인으로 사회적 가치를 전달한다. 특히 사회 정치적 진술로 기능하는 ‘장식의 조각적 맥락’에 관심이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리빙룸 아라베스크>(2019~23)는 거실을 구성하는 요소를 추상화한 설치작품인데, 작가는 장식과 기능의 경계에서 사회주의 모더니즘의 시각적 유산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루마니아 모더니즘의 우월주의 구조를 형식과 물질성이 불러일으키는 고독과 신비함에 대한 경향으로 역설적으로 치환했다.

스타더스트아키텍츠 <메타키트켄>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스타더스트아키텍츠<메타키트켄>혼합재료가변크기2021

마리나 팝 티마루 <모성> 폴리스테린, 유리 섬유, 시멘트, 플라스틱 외 혼합재료 100×160×200cm 2017

마리나티마루<모성>폴리스테린,유리섬유,시멘트,플라스틱혼합재료100×160×200cm2017

뱁티스트 데봄브루그의 <슈팅 스타>(2023)는 사회주의 시대에 특화된 가구의 집합체를 분해해 붕괴된 건물처럼 연출했다. 과거가 현재에 자리를 내주는 ‘트라우마적 전이 현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폭력과 사고, 더 정확히는 사고에 대한 반응을 탐구한다. 이는 극단주의와 신자유주의 부상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반복되는 위기, 분열, 파업의 사이클을 암시한다.

김희천의 <바벨>(2015)은 예상치 못한 자전거 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했던 실제 사건을 계기로 출발한다. 사건 당일 아버지가 차고 있었던 스마트 워치가 기록한 데이터를 추적해 시공간을 역행해 나가고, 작가의 음성으로 아르헨티나에 있는 친구에게 아버지의 비극적 실종을 겪은 솔직한 감정을 설명한다. 이는 현실과 가상, 감정과 데이터 통계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가시화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경계가 사라져 시간성이 미묘하게 교차하고, 작품의 디지털 프레임은 비시간적 구성에 놓인다. 한편, 로렌스 렉의 영상 <검은 구름>(2021)은 버려진 유령 도시라는 설정의 가상 도시 심베이징을 배경으로 한다. AI 시대의 정체성, 감시, 공감에 관해 질문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취약해진 인간-자동화의 개념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달리볼 말티니스의 영상 연작 <영원한 폭력 사태의 불길>(2007)은 동유럽에서 일어난 시위의 조건을 참조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라빈, 스플리트, 자그레브와 오스트리아 그라츠,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세르비아 수보티차 총 7곳에서 자동차를 태우는 장면을 기록했다. 각각의 영상은 돌발적인 사건의 기록물에 지나지 않지만, 이를 마주한 관객은 미디어로 접한 파편적인 기억을 조합하며 불안과 일시적 충동을 동반하게 된다. 백현진의 신작 <페이퍼 비즈니스>(2023)는 부질없고 어리석은 행동이란 의미로 ‘종이 호랑이(Paper Tiger)’와 ‘원숭이 사업(Monkey Business)’을 합성한 제목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사회주의 포스터 디자인과 동유럽 특유의 모더니즘적 몸짓에 영감을 받아 드로잉, 회화, 장소특정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뱁티스트 데봄브루그 <슈팅 스타> 목재 설치 가변크기 2023

뱁티스트데봄브루그<슈팅스타>목재설치가변크기2023

이샘 <사피엔스 주 프리뷰> 싱글채널 비디오 3분 13초 2022

이샘<사피엔스프리뷰>싱글채널비디오3분13초2022

시간,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더불어 현재를 긴밀하게 교차하는 시도는 루마니아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 앙카 미흘렛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다. 루마니아와 한국의 오늘을 ‘어둠’으로 상정한다면, 루마니아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한국의 어둠은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일종의 통로와 같을 터이다. 같은 시간이지만 루마니아와 한국의 현재에 흐르는 시간은 다르다. 이미 ‘먼저 온 미래’를 논하는 한국과 다르게, 루마니아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로 과거의 유산을 현재에 잘 안착시키는 ‘재해석’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현된 전시는 두 나라의 역사적 공통분모인 ‘북한’을 떠올리게 하며, 소설의 상상력을 빌려 궁극적인 미래의 가치가 무엇인가 질문한다.

[만료]오운(2024.03.04~03.18)
[만료]화랑미술제(2024.03.04~4.18)
[만료]BAMA(2024.03.04~4.18)
세화미술관(2024.01.31~)
스팟커뮤니케이션(2024.01.24~)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