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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미쳤어요!!

제19회에르메스재단미술상,수상작가류성실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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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사랑의노래>스틸컷싱글채널비디오10분2022

“체리장 선생님, 돌아오실 것을 알지만 저도 데리고 가셨어야지요. 선생님만 믿고 따른 지 3년이 넘었읍니다. 아직도 이날만을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앞날이 캄캄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게 왜 저를 두고 가셨나요. 일등 시민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 돌아와 주세요. 체리장 선생님 없는 곳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체리장의 유튜브에는 그의 부활을 애타게 기다리는 댓글이 가득하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추종자처럼 보이는 이들은, 작가 류성실이 짜둔 ‘체리장 세계관’에서 일등 시민권을 원하는 ‘오빠’로 과몰입해 장단을 맞춘다. 그간 류성실은 아프리카TV라는 1인 미디어의 자극적인 형식과 문법을 빌려 동시대의 이슈를 살벌하게 반영해 왔다. 그가 아뜰리에에르메스에서 <불타는 사랑의 노래>(7. 29~10. 2)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의 배경은 ‘화장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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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불타는사랑의노래>전경2022

‘진짜배기’ 사랑

전시에 들어가기 앞서, 류성실이 2018년부터 구축해 온 세계관의 등장인물을 알아야 한다. 체리장, 나타샤, 이대왕. 체리장은 천국 가는 일등 시민권을 볼모로 삼아 여론을 쥐고 흔드는 ‘오피니언 리더’다. 공식적으로는 2019년 돌연 과로사해, 많은 이가 그의 ‘컴백’을 기다리고 있다. 나타샤는 체리장과 생김새는 똑같지만 평행 세계에서 이대왕의 수족 노릇을 하는 ‘클론 일꾼’이고, 이대왕은 기회주의적인 자본가의 표본이다. <불타는 사랑의 노래>에서는 그간 조연이었던 이대왕이 전면에 나선다. 이대왕은 돈 되는 건 모조리 다 갖다 파는 ‘수완 좋은’ 사업가다. 그는 사랑도 팔고, 효도도 팔고, 낭만도 판다. 그것도 아주 저렴하게. 이대왕은 창고 대방출로 폐업 처리를 하듯 절절한 사연을 남기며 무엇이든 팔아젖히는데, 코로나19로 ‘전염병의 시대’를 맞아 죽음도 팔기로 결심한다. 그중에서도 짧은 생애 덕에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반려견 화장터를 차리고, 강아지 ‘공주’의 장례식을 거행하며 추모객을 맞이한다. “여러분은 사람을 화장할 때 얼마나 많은 환경 오염이 발생하는지 아십니까? 적은 연료비로도 하늘나라에 잘만 가시니깐 너무 좋습니다.” ‘에코의 시류’를 읽고 알뜰살뜰 환경까지 생각하는 이대왕이다.

이번 전시를 영상과 구조물이라는 두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10분가량의 영상작업은 공주의 장례식 절차를 보여준다. 이는 추모 영상 시청, 화장, 애견과의 마지막 교감, 추모곡 제창이라는 식순에 따라 상영되는 한 편의 신파 드라마에 가깝다. 여기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등장하는 나타샤는 소각로로 들어가는 반려견을 보고 오열하는 견주에게 심금을 울리는 서비스 멘트를 날린다. “어머니는 중력을 거스르는 비결을 아십니까? 그 비결은 휘발유도 아니고 등유도 아니에요.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마음이 힘든 견주는 사기꾼 커뮤니케이터가 건네는 어불성설의 위로도 덥석 믿어버린다. 저 말대로 ‘우리 애기’ 천국 가는 데 드는 연료가 사랑이라면, 기름값 걱정할 필요 없이 무한히 줄 수 있을 테니. 이어서 영상은 이대왕이 통기타를 들고 나와 ‘진짜배기 사랑’이라는 추모곡을 부르는 클라이맥스로 넘어간다. 이대왕은 김광석 흉내를 내며 ‘나 그대를 어찌 잊으리오’라는 구절을 열창한다. 이대왕은 구슬프지만 진정성이라곤 한 톨도 없는 가사로 빠르고 쉽게 카타르시스를 유발하고 장례식을 서둘러 마무리 짓는다. 다음 장례 타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퍼할 겨를도 돈으로 사는 세상이다. 이렇게 두 인물은 이별의 의식에 은근슬쩍 ‘돈’ 얘기를 꺼내고, 죽음도 ‘산업’에 포섭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영상이 얼렁뚱땅 장례 의식을 정리하면, 구조물이 바통을 이어받아 전시를 이끌어간다. 장례식 영상이 나오는 거대한 구조물 뒤편에는 화장터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총천연색 이국적인 벽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대왕트래블’, ‘대왕에어’를 성공적으로 경영했던 이대왕의 과업이 화려하게 수놓여 있다. 그런데 군데군데 숨어있는 모니터와 QR코드를 잘 찾아보면, 이대왕이 당국의 추적을 받는 경제 사범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과시는 곧 결핍이라고 했던가. 이는 이대왕의 천박한 실체를 까발리는 ‘진실의 벽’인 것이다. 류성실은 구조물의 앞뒤를 상반되게 연출한 ‘양면 구성’으로 이대왕의 자본 숭배적인 속셈을 폭로한다. 사실 이곳은 엄숙한 화장터가 아니라 감정을 악용해 한 밑천 잡으려는 이대왕의 콘서트장이다. 그의 ‘진짜배기 사랑’은 돈을 향한 세레나데였던 것이다.

한편 이대왕은 싸구려 욕망을 ‘숭고한 예술’로 포장하는 습관을 가졌다. 가수나 화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화장터 벽면에는 기념비 부조를 흉내 낸 시트지를 부착해 두었다. 또한 아치형의 대형 구조물은 마치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를 닮았다. 유려하게 구부러진 세라의 강철 조형물을 조악하게 번안한 듯 보인다. 실제로 작가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 리처드 세라를 리서치했다고. 그렇다면, 이대왕의 최종 목표는 위대한 예술가일지도 모르겠다. 그 예술가의 작품은 아무리 값비싸도 그럴만하다고 의미를 붙여주니깐. 예술가의 야심과 사업가의 욕심은 한 끗 차이로 나뉜다. “가족을 포함해 주변 사업가들이 돈에 품는 열정을 보면서 그 순수함과 괴상한 창의성에 경도될 때가 있다. 사실 창의성이란 간절함의 부산물이다. 예술가가 가장 창조적이라는 소리는 환상에 불과하다.” 이처럼 벽면의 키치한 이미지와 이대왕의 황당한 사업가적 마인드는 작가의 주변 환경에서 연유했다. 트로트 가수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 팔도의 지역 축제를 돌아다닌 경험, 그곳에서 본 품바 공연과 급조된 광고판 등 시선을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대상을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다.

마지막으로 전시의 주변부에서 제 역할에 충실한 근조 화환을 보자. 일렬로 늘어선 화환들은 ‘돈 주는 사람 앞에서 어디 허리를 펴나’의 마인드로 ‘어서 옵쇼’ 자세를 깍듯하게 취한다. 화환은 대개 특정인의 대리물로 행사에 놓이는데, 여기서는 언제든 돈 앞에서 굽힐 준비가 돼있는 이대왕식 욕망의 표상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런데 이 화환은 대형 구조물의 측면에서 갈기갈기 찢겨 돌아가고 있다. 마치 분쇄기에 들어간 것처럼. 작가는 끈적한 욕망도 죽음 앞에선 도리가 없다고, 진시황도 죽었는데 우리네야 어떻게 하겠냐고 되묻는 듯하다. 그에게 화환은 동시대의 요란한 바니타스다. “영원함은 낭만적이면서도 공포스럽다. 이승과 저승을 무한히 연결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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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불타는사랑의노래>전경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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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1993년생.서울대조소과졸업.탈영역우정국(2019)에서개인전개최. <황혜홀혜>(경남도립미술관2021),<Follow, Flow,Feed>(아르코미술관2020),<CHERRYGO-ROUND>(백남준아트센터2019), <뉴스,리플리에게>(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2018)등의단체전참여.2021년제19회 에르메스재단미술상최연소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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