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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은각성하라!

더페이지갤러리,새디라스카개인전

2023/10/04

<Walking with Fire and Scissors> 리넨에 유채 152.4×121.9cm 2023

<WalkingwithFireandScissors>리넨에유채152.4×121.9cm2023

뉴욕 기반의 화가 새디 라스카(Sadie Laska)는 잔혹한 캐릭터로 사회 이슈를 풍자한다. 그가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개인전 <일렉트로스모그>(9. 4~10. 20)를 열고 신작 회화 24점과 <깃발> 연작 11점을 선보였다. 작가는 뉴스, 잡지, 영화 등 미디어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재구성해 종말론적인 풍경을 그린다. 제목 <일렉트로스모그>는 소리 소문 없이 대기를 오염시키는 전자파를 의미한다. 작가는 기술 문명의 이기에 젖어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인류의 모습을 컬트적인 이미지로 고발한다.


라스카의 강한 화법은 그가 살아온 삶과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했다. 웨스트버지니아에서 태어난 작가가 성장기에 접한 문화예술은 가족과 함께 시청한 MTV 뮤직비디오와 팝이었다. 이후 작가는 고향에서 학업을 마치자마자 뉴욕에 입성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브루클린에서는 많은 지하 음악 공연장과 창고를 중심으로 거친 파티가 열렸고, 그는 여기서 펑크와 록 음악 등의 하드코어 문화에 매료됐다. 그 영향으로 라스카는 인디 문화가 발달한 브루클린을 예술적 고향으로 삼는다. 한편 그는 미술인이 아니라 뮤지션으로 예술계에 첫 걸음마를 뗐다.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졌던 미술관보다 거리 음악이 더 와닿았기 때문이다. 라스카는 2007년부터 밴드 I.U.D의 드러머로 활동하며 뉴욕현대미술관 PS1에서 공연하는 등 뉴욕 미술씬과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2010년 늦깎이로 바드칼리지 석사에 진학해 처음 회화를 제작했다. 캔버스에 자유롭게 붓을 내두를 때면 하드코어 음악과 일맥상통하는 전율을 느꼈고 이것을 터닝 포인트 삼아 진지한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유머러스한 종말 풍경


라스카는 대중문화의 도상과 히피 정서를 버무려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네 가지 핵심 키워드는 ‘푸른 지구’, ‘비행기’, ‘손가락’, ‘머리 없는 인간’. 첫째, 푸른 지구는 인류가 지켜야 할 이상적인 삶의 터전이다. 구체적으로는 1970년대 아폴로 17호가 촬영한 위성 사진 ‘블루 마블’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지구를 의미한다. 깃발 작품 <Untitled(Down)>(2022)은 지구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손가락이 돈 얘기만 하는 사람을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 지목한다. 둘째, 비행기는 세계화를 상징한다. 세계화 시대에 비행기는 인적, 물적 자원을 나르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또 전염병을 옮긴 매개이자 전쟁과 테러의 무기로 사용된 역사도 있다. <Crash Landing>(2023)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영감을 받아 추락하는 비행기로 전쟁의 참상을 강조했다. 셋째, 손가락은 양극화가 심한 현대 미국 사회를 가리킨다. 손가락은 선전 포스터에 자주 쓰여 특정 후보나 이념을 지지한다는 상징물이다. 한편 오늘날에는 ‘손가락질’이라는 비난의 뜻이 강해져 서로 다른 가치관을 수용하지 못하고 양분된 분위기를 암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머리가 잘린 인간은 통제력을 잃은 ‘무지성’을 가리킨다. 작가는 성별과 인종 구분이 모호한 중성의 인간상을 그렸다. 여기에는 “누구도 발전을 핑계로 몰상식한 환경 파괴를 일삼은 행태에서 자유롭지 않다”라는 작가의 비판이 담겼다.

<Untitled(Walk)> 깃발, 패브릭, 아크릴릭 페인트, 페인트 마커 152.4×91.4cm 2020

<Untitled(Walk)>깃발,패브릭,아크릴릭페인트,페인트마커152.4×91.4cm2020

<Crash Landing> 리넨에 유채 152.4×238.8cm 2023

<CrashLanding>리넨에유채152.4×238.8cm2023

라스카의 주요 방법론은 콜라주다. 그는 평소 즐겨 보는 정치 만화, 뉴스, 잡지, 포스터에서 이미지와 글귀를 수집해 회화, 판화, 패브릭 콜라주로 변형해 왔다. 이런 그에게 2020년 팬데믹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동 제한으로 작업실을 사용할 수 없었고, 집에는 어린아이가 있어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야 했다. 이에 그는 천 바느질에 돌입했다. 예전부터 민속 전통 퀼트에 관심을 가져 수작업을 중시하던 그에게 꼭 맞는 제작 방법이었다. 라스카의 대표작 <깃발> 시리즈는 여러 옷감과 천을 꿰맨 대형 패브릭 콜라주다. 처음에 작가는 패브릭을 회화의 대체재로 여겨 작품을 벽에 걸었다. 하지만 곧 시사성이 강한 작업 의도와 깃발의 선언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 천장에 매달아 설치작품으로 완성했다.

깃발을 들여다보면 라스카가 남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이번 출품작에 뉴스 기사나 시사 팟캐스트의 내용을 발췌했다. <Untitled(Make Words Less Human)>(2020)의 부제는 인공 지능에 관한 팟캐스트에서 인용했다. 본래 언어는 인간 고유의 특징이었지만, 오늘날 인공 지능의 언어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렀다. 언어를 인간만의 속성이라 보기 어려워지자 “덜 인간적으로 말하라”라는 표현이 마치 인간이 인공 지능에게 보내는 비굴한 슬로건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이 문구를 단어로 해체해 언어 능력의 상실을 비꼬았다. 작품 속 머리가 없는 인간은 기술에 의존해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민낯을 비춘다.

<Waiting for a Call> 리넨에 유채 45.7×61cm 2023

<WaitingforaCall>리넨에유채45.7×61cm2023

새디 라스카 개인전 <일렉트로스모그> 전경 2023 더페이지갤러리

새디라스카개인전<일렉트로스모그>전경2023더페이지갤러리

최근 라스카는 다시 유화에 매진하고 있다. 부드러운 리넨에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같은 그래픽을 구현했다. 콜라주한 이미지를 유화로 옮겨 팝적인 만화풍으로 완성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만큼 신작에는 ‘유머’를 더했다. 작가는 아메리칸드림이 유행하던 시절 미국 산업의 명암을 동시에 겪었다. 문화적으로는 ‘MTV 르네상스’를 누렸지만, 무기 수출로 성장한 미국인의 입장에서 수많은 테러와 전쟁의 피해를 지켜봐야 했다. 이런 경험을 종합한 주제가 ‘올드 미디어’다. <Waiting for a Call>(2023)에는 중절모 쓴 남성이 유선 전화기로 소통하고, <Broken Screen>(2023)에는 화면이 깨진 브라운관 TV로 유해 콘텐츠를 시청하다 발각된 상황을 위트 있게 묘사했다. 작가는 경제 성장기 미국적 풍물과 지구, 비행기, 손가락, 인간 도상을 섞어 시대의 단면을 포착했다. 그는 신작의 변화를 “때론 어려운 진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유머로 바라보는 게 더 쉬울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웃음이야말로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 방법’이라는 라스카. 이 한마디에 날카롭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인류를 그려온 그의 태도가 녹아있다. / 주예린 기자

새디 라스카 / 1974년 웨스트버지니아 출생. 웨스트버지니아대 및 뉴욕 바드칼리지 회화과 석사 졸업. 생테티엔 세손앤베네테르(2023, 2017), 브뤼셀 오피스바로크(2016), 갤러리버나드세손(2015, 2014, 2012) 등에서 개인전 개최. <Drunk vs Stoned 3>(뉴욕 더랜치 2023), <Last Days of Summer>(디어프로젝트 서울 2023), <Twenty-One Humors>(페이스갤러리 온라인 2022) 등 단체전 참여.

새디라스카/1974년웨스트버지니아출생.웨스트버지니아대뉴욕바드칼리지회화과석사졸업.생테티엔세손앤베네테르(2023,2017),브뤼셀오피스바로크(2016),갤러리버나드세손(2015,2014,2012)등에서개인전개최.<DrunkvsStoned3>(뉴욕더랜치2023),<LastDaysofSummer>(디어프로젝트서울2023),<Twenty-OneHumors>(페이스갤러리온라인2022)단체전참여.

예술경영지원센터(2024.06.27~)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2024.07.04~)
스팟커뮤니케이션(2024.01.24~)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