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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선율

갤러리비선재,오리진창립멤버신기옥개인전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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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옥은전북부안에서태어나전주고와홍익대회화과를졸업했다.2007년작품활동재개이후한가람미술관,인사아트센터,갤러리라메르등지에서개인전을열었으며,키아프여러아트페어에출품했다.

화가 신기옥이 대규모 개인전 <영혼의 선율>(3. 11~4. 30 갤러리비선재)을 열었다. 단색화 계열의 대작 <선율(Line Rhythm)> 연작을 선보였다. 그는 화단의 촉망 받던 신인으로 활동하다가 중년에 오랜 시간 붓을 놓고 말았다. 그 이름이 잊히었다가 67세 노년에 이르러 다시 창작 세계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작품 결실을 이번 개인전에서 펼쳤다.
신기옥은 홍익대 서양화과 60학번. 이 60학번이야말로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던 ‘전설의 학번’이다. 이들은 1963년 오리진회화협회를 창립했다. 회원은 권영우 김수익 김택화 서승원 신기옥 이상락 이승조 최명영 최창홍. 앵포르멜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그룹이다. 4·19혁명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청년 화가들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시대정신을 외치며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리진회화협회에 이어지는 <청년작가연립전>, 한국아방가르드(A.G)협회의 활동은 오늘날 ‘한국 실험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에서 각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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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중앙공보관에서열린오리진회화협회창립전.앞줄왼쪽부터최명영서승원이승조이상락,뒷줄김수익신기옥최창홍권영우김택화.신기옥은4회전까지출품했으며,모임의총무를맡았다.

30년 외유 끝에 2007년 재기

신기옥의 청년 시절은 실로 빛났다. 1963년에 앵포르멜 작품으로 <제2회 신상회(新象會) 공모전> 장려상, 『조선일보』 주최 <현대미술작가 초대공모전> 차석상(대상은 하종현)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러나 신기옥은 졸업, 군대, 결혼과 함께 창작 활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양방송 무대 디자이너를 거쳐 중고교 미술교사로 일했다. 그 와중에 <오리진> 4회전까지 참가했으며, 모임의 총무를 맡기도 했다. 1968년 <청년작가연립전>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이후 화단 활동은 접고 말았다. 1980년대 대학 입시 호황기에는 화실을 운영해 이 업계의 강자로 이름을 날렸다. 또 1990년부터 건축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회적 성공 뒤엔 예술적 좌절이라는 아픔이 숨어있었다.
신기옥이 오랜 외유 끝에 미술계로 돌아온 것은 2007년. 늘 그림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가 마침내 정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30년 만에 이젤 앞에 서서, 설렘으로 붓을 들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아가는 길은 가열한 방황과 깨우침의 과정이 따랐다. 앵포르멜, 구상과 추상의 혼합, 기하학적 추상 등의 조형 과정을 다시 거쳤다. 마침내 그가 천착한 세계는 <선율> 연작. 씨줄 날줄의 직조, 동어반복의 선, 전면 균질(all-over)의 구성, 모노 톤의 색채…. <선율>의 조형 요소는 한국 단색화의 유전인자와 겹친다. 신기옥은 자신의 작품 내력을 고백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종일 베틀로 명주를 짜던 모습을 보고 자랐다. 명주 베는 날줄 실과 씨줄 실이 교차 직조된다. 무념의 호흡이 스며든 씨줄과 날줄의 반복, 그 인고의 세월에 깃든 고된 노동의 수행성. 나는 그것을 가장 한국적인 영혼의 선율이라 믿는다. 내 작품 <선율>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선(禪)의 세계와도 같은 울림을 담아내고자 한다.”
미술평론가 이진명은 <선율> 시리즈를 두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선율> 연작은 우리 시대, 특히 디지털리티에 흠뻑 젖어 순수 사유의 빛과 수직적 천착을 더는 믿지 않은 세대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신기옥 작가의 필선은 여전히 생동하며 유려하다. 그것의 구성은 세계의 구조를 상징한다. 한자 중에 ‘천맥(阡陌)’이라는 단어가 있다. 경작지인 밭 사이로 난 길을 뜻한다. 남북으로 난 것을 ‘천’이라 하며, 동서로 난 것을 ‘맥’이라 부른다. 천은 수직의 시간을 뜻하며, 맥은 수평의 일상을 뜻한다. 예술적 시간(시적 시간)과 범용한 시간을 함께 연주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작가는 캔버스 화면에 천맥의 길을 인도하여 그 안쪽으로 영혼의 선율을 파종한다.”
<선율> 연작은 여러 단색화 화가의 조형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 추상회화의 동시대적 유사성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미세한 ‘차이’의 정체성을 다지기 위해 오늘도 담금질을 하고 있다. 화가 신기옥의 뒤늦은 재출발, 그 마지막 질주가 자못 흥미롭다.
“나는 종종 창작 행위를 시지프스 신화와 견주곤 한다. 숙명 같은 인고의 세월에서 탄생하는 작품이야말로 생명력을 지닐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선의 축적이 비로소 숨을 토할 때….”

아트프라이스(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