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회전목마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깜찍한 코디, 천진난만한 미소와 밝은 내일에 기대감으로 가득 찬 표정…. 소코는 귀여운 캐릭터 그림과 조각으로 특별한 동심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에게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우리 모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지만, 차가운 현실에서 잊고 살던 내면의 노스탤지어이다. 작가는 누구나 쉽게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조형 언어로 관객과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난다.
소코(장세훈) / 1993년 서울 출생.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츠 일러스트레이션 학사, 마스터즈 인 브랜딩 석사 졸업. 뉴욕 어허그프롬더아트월드(2024), 뉴욕 롱스토리쇼트갤러리(2023), 마드리드 VLAB갤러리(2023), 캘리포니아 칸토르 갤러리(2022) 등에서 개인전 개최. 뉴욕에서 거주 및 활동 중.
지금 엘리제레에서 소코의 <영원한 여정>(11. 8~12. 6)전이 열리고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한국 데뷔전이자, 아시아 최초 개인전이다. 신작 페인팅 15점과 조각작품 5점을 출품했다. 고국에서 선보이는 첫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시도한 키네틱 조각도 공개했다. 개인전을 맞아 방한한 작가와 갤러리에서 만나 이번 전시의 구성과 작업 변천사, 그의 예술세계를 아우르는 핵심 개념을 물었다. 작가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신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북미권을 무대로 활동해 왔지만, 한국 개인전은 소중히 아껴두고 있었다.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 고향에서 내 작업을 보여주고 싶었다. 타이틀 <영원한 여정>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순수함을 찾아가는 여행을 의미한다.”
‘도우’의 여행, 노스탤지어를 찾아서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는 소코는 한국, 캐나다,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패션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의 영향은 어린 작가에게 예술적 감각을 키우는 토양이 되었다. 화려한 색감과 낯선 질감의 원단이 가득한 집은 그에게 가장 재밌는 놀이터였다. 일찍이 아들의 재능을 눈여겨 본 어머니가 미술을 권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캘리포니아 아이들와일드아츠아카데미에서 다양한 국가 출신의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파인아트를 배웠고,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만화와 캐릭터에 관심을 두고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츠에 진학했다.
2022년 첫 개인전부터 소코의 예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향수’이다. 10대에 가족과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면서 차곡차곡 쌓아둔 과거의 사소한 기억과 감정이 그의 창작 활동에 추진력이 됐다. 주인공 캐릭터 ‘도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생히 간직하는 작가의 분신이다. 첫 개인전에서 공개한 캐릭터이지만, 초등학생 시절에 그린 스케치와 낙서를 바탕으로 만들어 더 오랜 친구 같은 존재이다. “도우의 시그니처 포인트는 바로 ‘눈’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영어가 서툴었던 시기 나의 유일한 소통 방법은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사람은 국가, 나이, 성별이 달라도 서로의 눈을 보면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고 느꼈다. 조각작품에서는 캐릭터의 눈을 크리스털 글라스로 제작해 그 의도를 더욱 강조했다.”
<Encore> 리넨에 혼합재료 34×24.5cm 2024
<Umbrella> 리넨에 혼합재료 34×24.5cm 2024
도우는 작가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상징물이지만, 그 자신의 독립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해 가는 하나의 생명체이기도 하다. 도우의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초기에는 정면의 초상화 형식으로 도우의 얼굴이 크게 강조되었다. 이후 주변 배경과 여러 주변 인물이 함께 출현하면서 도우라는 캐릭터성을 넘어, 그림의 서사와 등장인물 간 관계에 시선이 쏠렸다. “처음에는 도우라는 창조물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상황이나 시나리오가 아니라, 포트레이트 그 자체로 대중과 만나려 했다. 영화에서도 등장인물 소개가 끝나면 스토리가 시작되듯이, 인트로를 먼저 상영하고 도우의 유니버스를 펼쳐낸 것이다.”
신작에서의 도우는 ‘한국’을 주제어 삼아 특정 모션을 취하는 초상 연작으로 이루어졌다. 모국에서 여는 전시인 만큼, 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한국의 이미지를 투영했다. 친구들과 실뜨기 놀이를 하거나 감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노래 부르고 춤추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렸다. 한편 이번 개인전의 하이라이트 작품은 움직이는 회전목마 <Merry-Go-Round>이다. 작가의 첫 키네틱 조각이자, 이번 전시 주제가 압축된 대표작이다. 특히 ‘목마’에는 소코 예술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에피소드가 깃들어 있다. “2023년 뉴욕 개인전에서 목마 조형물을 선보였다. 대형 페인팅 앞에 관객이 앉을 수 있는 목마를 배치했는데, 전시 오프닝이 끝날 즈음 한 노인 분이 들어와서 15분간 목마에 가만히 앉아 있더라. 그러다 문득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복잡한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잊고 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고, 목마에 앉아 있는 동안 6살의 소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고 하는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했다.”
<Plant Me> 리넨에 혼합재료 182×153cm 2024(왼쪽), <Merry-Go-Round> 레진, PVC, 크리스털 글라스 83×83×83cm 2024
<Merry-Go-Round>에는 도우가 탑승한 3마리의 말과 텅 빈 3마리의 말이 사운드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간다. 여기에서 도우는 의인화한 순수함이며, 빈 말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고 사는 어른을 표상한다. 소코에게 동심은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 모두의 깊은 내면에는 목마에 앉은 어린아이가 회전을 기다리고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모험하던 그 시절, 노스탤지어를 찾아 나서는 소코의 여정은 영원히 반복된다. “누군가 내 작품을 보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그 추억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데 힘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