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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로스의미술항해

김수룡,선장출신의화가개인전

2023/02/15

김수룡은 늦깎이 화가다. 45년 동안 선장과 도선사로 살다가 68세에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 작가는 과거에 일하면서 보았던 바다의 풍경을 화폭에 옮긴다. 휴양지가 아니라 항해와 교역, 산업 등 삶의 터전으로서 바다에 포커스를 맞춘다. 필자에게 김수룡 회화의 의의는 바다를 몸소 누린 사람이 그린 항만 풍경이라는 데에 있다. / 이 영 준

평생을 선장과 도선사로 바다에서 살았던 김수룡은 이제 바다를 떠났지만, 바다와 배, 항구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래서 화가가 되기로 했다. 부산항을 입출항하는 배를 인도해 접안과 이안을 도와주는 도선사 업무를, 2020년에 그만두고 그림을 시작했으니 늦깎이 화가인 셈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바다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그림에는 바다에서 보고 겪은 온갖 일에 대한 인상이 가득 담겨 있다. 컨테이너선부터 벌크선에 이르는 다양한 선박의 자태, 목숨을 위협하는 거친 파도, 각종 항만 시설이 그의 그림의 소재다. 바다는 분명히 풍부한 감각적 자극의 원천이다.

김수룡의 그림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거대하고 초현실적인 쇳덩어리가 움직이는 항만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항상 하는 얘기가 “여기 뭐 볼 게 있느냐”다. 높이가 70미터를 넘는 갠트리 크레인, 총무게 20만 톤을 상회하는 선박, 끝없이 뻗는 선석(船席: 항만에서 배 대는 자리) 등은 분명히 엄청난 스펙터클이건만, 항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매일 봐서 그런지 스펙터클로 의미화하지 못한다. 그냥 일거리일 뿐이다. 김수룡은 바로 그런 풍경을 의미화한다. 그에게 항만 풍경은 조형적일 뿐 아니라, 자신이 도선사로 일하면서 보고 겪은 온갖 사건과 얽혀서 풍부한 의미의 장을 이루고 있다. 그게 김수룡의 회화작업의 첫 번째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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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erraneanSea>캔버스에아크릴릭73×53cm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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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way>캔버스에유채22×22cm2020

항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업무와 실용의 눈이다.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데 집중된 시선이다. 반면에 도선사 김수룡은 시선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으니, 자신이 일하면서 본 바다와 항만의 풍경을 의미화해 보겠다는 시선이 그것이고 그 결과가 오늘 그의 앞에 있는 회화작업이다. 삶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그 시선이 없으면 재현되지도 않고 문화가 되지도 않는다. 김수룡이 바다에서 보낸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회화라는 재현 체계로 편입시킨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바다의 평행 우주

그러나 삶을 돌아보는 시선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예술이 되지 않는다. 한 가지 요소가 더 필요한데, 그것은 재현물로 만들어낼 능력이다. 그 능력의 핵심에 ‘양식’이 있다. 작가는 대상과 경험에 양식을 입혀서 자신의 재현물로 만든다. 평생을 바다에서 보고 겪은 감각적 인상이 풍부하다고 해도 거기에 자신만의 양식을 입혀야 작품이 된다. 김수룡은 회화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자신의 감각적 경험에 다양한 양식을 입히고자 노력한다. 그래야 바다에서 얻은 감각적 경험은 자신의 것이 되고, 보는 이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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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룡개인전<별바람바다>(2022.10.25~11.6)전전경2022

그의 그림 중에는 바다와 배를 사실적으로 그린 것도 있지만 배의 형상을 과감하게 크롭하여 추상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 있으며, 항해하는 배의 이미지에 글자나 해도를 몽타주한 것도 있다. 이런 형식적 시도는 바다에서 얻은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회화로 번역하는 데 매우 적절한 기여를 하고 있다. 바다는 한도 끝도 없이 넓고, 오랜 세월 동안 거기서 겪은 일은 웬만한 여행기를 뺨칠 정도로 파란만장한 것이다. 김수룡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양식 실험을 통해 바다를 더욱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일까? 세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육지에 살면서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회화를 통해 바다와 항해, 항만과 산업 같은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됐다. 제목으로 사용한 단어는 모두 낯설다. 낯선 나라에 가면 낯선 말이 통용되듯 바다라는 평행 우주에는 tug(예인선), berth(정박), bow(뱃머리), starboard(우현)처럼 생소한 언어가 통용된다. 김수룡의 작품으로 우리는 그 평행 우주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 보통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바다는 대단히 한정적이다. 기껏해야 해수욕장에서 보는 모래사장과 파도, 회 한 접시같이 제한된 표상을 통해서 바다를 만나게 된다. 김수룡의 회화는 우리가 모르던 바다의 모습을 전해준다. 항해의 바다, 교역의 바다, 위험의 바다, 행정의 바다가 그의 회화에 들어있다.

그렇게 해서 얻는 가장 중요한 인식은 바다와 땅의 관계 역전이다. 평생을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땅이 고정돼 있고 배가 그 사이를 다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평생을 배를 타고 바다에 떠서 살다 보면 땅이란 그저 영원히 유동하는 세계의 중간에 있는 고정점일 뿐임을 알게 된다. 즉 고정된 세계와 유동하는 세계의 관계가 뒤바뀌는 것이다. 김수룡의 회화는 세계상의 관계가 역전된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이것이 김수룡의 회화가 가지는 두 번째 의미다.

세 번째 의미는 좀 거창한 것이다. 바다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고, 바다를 터전 삼아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음에도 한국에는 해양 문화가 없다. 해양문학, 해양미술, 해양음악이 다 없다. 어떤 활동이 문화가 되는 것이 왜 중요할까? 밥을 먹고 수저를 놓고 돌아서 버리면 수저는 문화가 되지 않는다. 어떤 모양과 재질의 수저로 밥을 먹었고 수저의 특성이 밥에 어떤 가치를 부여했는지 생각하면서 밥을 먹으면 수저는 문화가 된다. 수저 박물관이 생긴다면 그런 문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가 되면 뭐가 좋을까? 의미 부여가 되고 기억하게 되며 표상물이 생기기에 많은 사람이 의미와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오로지 물질에만 매달려 있는 삶에 풍부한 층위가 생긴다. 바다는 너무나 넓고 거칠기에 섣불리 문화로 만들기 힘들다. 선원이나 도선사같이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여러 활동, 거기 쓰이는 도구, 언어를 모아서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표상물로 만들면 바다는 문화가 된다. 김수룡의 회화가 바다에 대한 문화를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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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캔버스에혼합재료72.7×60.6cm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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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룡/1952년부산출생.한국해양대졸업.1975년처음배에올라1982년선장이됐다.2002년부터2020년까지부산항도선사를역임하며다양한국제해양기구에서활동했다.은퇴계원예술대평생교육원에서1년간미술을배웠다.갤러리치로에서개인전<별바람바다>(2022.10.25~11.6)를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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