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나로 그린 여성의 낙원

이사벨 에르게라의 장편 애니메이션 <술타나의 꿈> 개봉
2026 / 05 / 11

스페인 감독 이사벨 에르게라의 <술타나의 꿈>이 개봉했다. 1905년 발표된 로케야 사카와트 호세인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남성과 여성의 권력 구조가 전복된 유토피아 ‘레이디랜드’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필자는 여성을 향한 시선의 폭력과 그것을 기록하는 카메라의 권력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짚는다. 인도의 전통 헤나 메헨디, 멀티 레이어드 기법, 수채화 배경 등 영화와 미술을 오가는 감각적인 시각 언어를 분석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술타나의 꿈>은 1905년 발표된 인도의 여성주의 작가 로케야 사카와트 호세인이 쓴 동명의 SF 단편 소설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 이네스는 인도 여행 중 한 서점에서 운명처럼 소설 『술타나의 꿈』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에서 여성은 전쟁에 참패한 남성을 집 안에 격리하고, 여성 주도의 사회 시스템과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 유토피아 ‘레이디랜드’를 건설한다. 폭력이 제거된 채 안전하고 활기찬 생명력으로 묘사되는 이 도시는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네스는 ‘널 기다리고 있어’라고 적힌 엽서를 발견하고, 현실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를 ‘레이디랜드’의 실체를 추적하기 위해 과부들의 도시 ‘브린다반’으로 향한다.

영화 서두에서 11살의 이네스는 남성의 불편한 시선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여성이 성 정체성을 자각하며 처음 마주하는 공포는 바로 이 ‘시선’일 것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한 목적을 띤 채 나를 관찰하고 규정하는 눈의 존재. 감독은 이러한 시선이 여성의 생애 전반을 따라다닌다는 것을 상징적인 장면들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네스가 브린다반에서 과부들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 렌즈 너머를 응시하는 순간, 그녀를 억눌러왔던 권력적 시선은 비로소 역전된다.

감독의 작가적 뿌리는 첫 단편 <눈가림 놀이>(2005)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안내견을 잃어버린 남자가 겪는 도시의 소음과 혼란을 선과 면의 요동으로 표현한 것으로, 사실적 묘사보다 주체의 실존적 불안을 ‘내면의 풍경화’로 옮기는 시도였다. ‘보이지 않는 심리적 실체’의 시각화는 <술타나의 꿈>에서 시선의 권력 구조라는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마음의 소용돌이를 엮어내는 예술적 토대가 된다. 특히 인도의 미학적 전통을 계승하여 새로운 서사적 꿈으로 빚어내는 과정은 강렬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네스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수채화 표현으로 제작된 레이어를 겹쳐 배경과 인물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질감을 구현한다. 이는 수다냐의 꿈 장면에서 극대화되는데, 여기서 꿈의 주체는 배경 및 자연과 물아일체를 이루며 서구적 원근법을 탈피한 회화적 공간을 창출한다.

반면 소설 속 장면을 묘사할 때는 헤나 염료를 사용하는 인도의 전통 바디아트 ‘메헨디’ 특유의 갈색조와 세밀한 장식 요소를 차용한다. 여성의 몸치장에 사용되던 형식이 여성 정치의 언어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이는 인도의 현대미술 작가 날리니 말라니의 설치작업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사라진 피를 찾아서>에서 투명 실린더에 회화를 그린 후, 영사기의 빛을 통과시켜 벽면에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이도록 연출한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신화적 인물은 유령처럼 소환되어 묵살당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환영의 공간에서 대변한다. 이러한 접근은 <술타나의 꿈>이 서사를 직접 설명하는 대신 이미지의 여백을 남겨 관객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말라니의 그림자가 관객의 몸 위로 투사되듯, 에르게라 역시 관객을 레이디랜드의 목격자로 초대한다.

‘술타나’가 꾸는 꿈에는 그녀를 지배할 ‘술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술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이 염원해 온 해방의 꿈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고전을 재해석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로케야 호세인이 실천했던 치열한 여성 인권 운동과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부활시킨 감독의 참여가 존재한다. 이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이들이 연대하여 만들어가는 안전한 장소이자, 우리가 도달해야 할 ‘살아있는 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