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과 재의 진혼곡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빔 벤더스(Wim Wenders)의 다큐멘터리 <안젤름(Anselm)>이 개봉했다. 전후 독일의 상흔과 주류 역사에서 지워진 목소리를 납과 재, 모래의 거친 물성으로 빚어온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50년 예술여정을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낮게 유영하는 사운드 연출, 카타콤을 연상시키는 아틀리에,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무는 비선형적 시간 재구성…. 영화는 인간 욕망이 남긴 파괴와 애도를 시청각적으로 번역한 네마적 진혼곡이다
양차 세계대전은 지난 세기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폭격에 뒤집힌 흙과 불타버린 숲, 탱크의 궤도가 짓밟고 지나간 참호는 전례 없던 파괴의 현장이었다. 그래서일까.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탱크가 지나간 풍경을 그냥 그릴 수는 없다”라는 선언은 단순히 불타고 파헤쳐진 대지에 대한 언급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캔버스 위 검게 탄 지푸라기와 해바라기, 납을 부어 만든 황량한 들판은 폐허가 된 인간 문명처럼 보인다. 감독이 담아낸 키퍼의 작업실은 더 이상 화가의 아틀리에가 아니다. 납과 재, 흙과 돌로 가득한 공간은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자 카타콤, 버려진 신전이자 폐허가 된 유적처럼 등장한다.
1970~80년대 그에게는 종종 ‘네오나치’ 혹은 ‘파시스트’라는 오명이 붙곤 했다. 키퍼는 전후 독일에서 금기시된 나치의 상징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 연작 <점령>(1969)은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로, 과거 나치가 점령했던 유럽 지역을 다니며 나치식 경례를 하는 본인을 촬영했다. <파르지팔>(1973) 연작과 <노퉁>(1973) 같은 회화는 독일 민족주의와 영웅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 게르만 신화를 적극 차용했다. 하지만 그가 주목한 것은 전후 독일 사회의 침묵과 단절이다. 그는 금기시된 상징을 배제하는 방식만으로는 과거와 단절할 수 없다고 여겼다. 오히려 나치에 의해 오염된 상징을 소환함으로써 그 안에 공존하는 비상과 추락, 승리와 파멸을 응시했다.
키퍼에게 “신화는 현존”이다. 그에게 신화란, 인간이 욕망하고 비상하며 추락해 온 역사 자체를 의미한다. 1985년 제작한 대형 설치작품 <날개 달린 팔레트>에는 이러한 상승과 추락의 이미지가 얽혀있다. 게르만 신화에서 날개를 달고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대장장이 빌란트, 태양에 닿고자했지만 끝내 추락한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납과 재, 콘크리트로 석화된 전투기를 표현한 <역사의 천사>(1989) 역시 날개와 비상에 관한 신화를 다룬다. 이처럼 천사, 이카루스, 전투기의 날개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인간은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켜 왔지만, 그 비상은 언제나 파멸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추락하는 것은 모두 날개가 있다”.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연출은 순간순간 틈입하는 목소리다. 이름 모를 여성들의 속삭임이 마치 코러스처럼 떠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는 단순한 합창이 아니라 증언이자 해설이며, 집단의 감정과 기억을 대변하는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대형 조각 <고대의 여인들>과 함께 등장한다. 작가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제작한 이 조각 연작은 역사와 신화에서 사장된 존재들을 위한 기념비다.
이 고대 여인들은 머리를 잃은 채 텅 빈 드레스로만 남아있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카메라와 책, 천구의(天球儀)와 같은 사물이 대신한다. 역사와 문명을 떠받쳤지만 끝내 지워진 존재들의 기억을 암시하는 듯하다. 비상과 추락, 신화와 전쟁의 잔해가 뒤엉킨 세계에서, 폐허 이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억과 목소리이다.
<안젤름>은 작가의 삶도 작품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마지막 10분을 제외하면 작가의 진술마저 대부분 읊조림과 중얼거림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인류가 남긴 폐허와 기억, 그리고 죄의식과 애도를 다루는 진혼곡에 가깝다. 떠도는 목소리와 폐허 속에서, 키퍼는 비상과 추락을 반복해 온 역사와 문명이 곧 신화임을 드러낸다. 그에게 신화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폐허 이후에도 되살아나는 기억의 형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