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유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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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Beautiful Future>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에 실크스크린, 스틸, 페인트 60×80cm 2023
이원우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느끼는 불안을 블랙 유머와 아이러니로 승화한다. 그가 PKM갤러리에서 개인전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2. 28~4. 1)를 열고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작품 47점을 공개했다. 최근 작가는 지난 20년의 작업 세계를 정리하고 있다. 2022년 워킹위드프렌드 개인전 <SMXLL>에서는 지난 조각들을 스케일에 따라 다시 분류했다. 이번 전시는 과거 퍼포먼스의 제목을 레터링한 <Air Words>(2023) 연작을 중점으로 선보이며, 기존 작품의 구성과 배치를 변주해 새로운 맥락으로 펼쳤다.
참여와 관계, 조각의 무대
이원우 작업 세계는 조각과 퍼포먼스가 중추를 이룬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졸업을 앞둔 2005년부터 동급생과 그룹 ‘...좋겠다 프로젝트’를 결성해 홍대 클럽과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미대생 3인이 작업과 생계가 막막한 처지를 공유하며, 자유분방한 놀이 문화를 불안의 탈출구로 삼았다. 재미로 시작한 기획이 2006년 기획전 <Pick and Pick>(쌈지스페이스)으로 이어지며 미술씬에 입성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퍼포밍아트는 이원우 작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제 작가를 대신해 조각이 전시장에서 퍼포밍한다. <Group Dance>(2017)에서는 춤을 재현한 조각을 무대에 세웠고, <Very Healthy Eyes>(2021)는 키네틱아트가 무대를 활보했다. “나 자신을 조각가로 규정한 적은 없다. 새로운 매체와 장르에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형식이 무엇이든 관객을 작업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참여와 관계. 이 두 가지 개념이 전시 공간에 형성될 때 이원우의 작업은 비로소 완성된다.이원우의 유머에는 유쾌한 웃음부터 씁쓸한 미소까지 다양한 층위가 있다. 이번 전시의 <Heavy Light>(2023) 연작은 다이어트 콜라가 주는 ‘가벼운’ 인상을 석재의 ‘육중함’과 조합했다. 체중 감량과 인스턴트 식품 섭취를 동시에 갈망하는 풍조를 꼬집었다. 돌에 새긴 익숙한 상표와 모순적인 제목. 황당한 발상으로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소재를 재치 있게 풀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무게의 변주는 작가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이다. <로우테크놀로지>(서울시립미술관 2014)전에 공개한 <My Shirt Is My Shelter>(2014)에서도 작가는 가벼운 티셔츠를 거대한 쉼터로 탈바꿈했다. 흐물흐물한 티셔츠 옷감을 대피소의 튼튼한 천으로 바꿔 안락함을 조성했다. 작가는 당시 “오롯한 내 공간이 지금 입은 옷밖에 없다”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순간의 위트에는 무거운 재료를 가공하는 고된 과정과 우울한 현실의 경험이 녹아있다. “나는 타인을 웃기는 상황을 상상한다. ‘빡!’ 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과정은 길고 지난하다. 그래도 내 유머 코드가 관객에게 통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작업의 원동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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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 개인전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전 전경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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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 Coke>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페인트 30×30×30cm 2023
무게감을 뒤집었던 유머는 규모의 역전으로도 이어진다.<Dreamy Museum>(2023) 연작은 미술관을 손바닥만 한 크기로 축소한 모델이다. 이 미술관의 문틈 사이를 들여다보면 ‘세 개의 계절(Three Seasons)’, ‘당신의 열정 분야(Your Passion Field)’ 등의 키워드가 나타난다. “이 시리즈는 하나의 플랫폼이다. 각각의 소제목이 암시하는 세계관과 상황을 설정했다.” 과거에는 휴대 가능한 여행용 <Dreamy Gallery>(2019)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원우의 플랫폼은 작고 가변적이다. 누구나 ‘꿈의 미술관’ 내부를 엿보며 자신만의 전시를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오랜 기간 ‘불안’을 키워드로 작업했다. 2017년 아트선재센터에서는 그 불안의 근원을 찾는 퍼포먼스 <무도장의 분실물센터>를 진행했다. 관객에게 당신이 잃어버린 물건이 무엇인지 묻고, 그 물건의 형상을 즉석에서 제작해 건넸다. 같은 주제의 퍼포먼스를 미국, 캐나다에서도 시행했지만, 유독 한국 관객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장 크게 표출했다. “과거를 돌아보라는 제안에 한국 관객들은 이루지 못한 목표를 되찾겠다고 얘기했다. 미래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이루지 못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가장 강력한 불안은 결국 막연한 앞날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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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light_2023_036> 돌, 페인트, 스테인리스 스틸 31.5×25 ×24 cm 2023
이후 작가는 작품을 받고 행복해하는 관객을 보면서 ‘미래’를 탐구했다. “Your Beautiful Future.” 이번 전시 제목은 동명의 퍼포먼스로도 진행 중이다. 이 문구는 직접 올려다본 하늘을 재현한 <Air Words> 연작에도 등장한다. 하늘과 미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한편으로는 끝없이 막막한 허공과 같다. 하늘의 변화를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에 그러데이션으로 프린트했다. 거울 표면에 쓰인 문구엔 ‘Spring Jump’, ‘Summer Dance’처럼 계절을 나타내거나, ‘Honey I’m Home’, ‘Very Romantic Views’와 같이 편안한 정서를 담았다. 계절, 가정, 낭만. 세 단어는 지루할 정도로 뻔하지만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일지 모른다. 관객이 이번 전시에서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작가는 “지금만큼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다가올 날을 알 수 없어 불안한 만큼, 행복이 언제 찾아올지 그 누가 알겠는가? <Air Words>의 문구는 다채로운 배경과 만나 긍정적인 분위기를 고조한다. 불안한 미래를 밝고 투명하게 환기했다. 관객은 글씨를 읽으려 거울 가까이 다가서면, 표면에 반사된 자신을 마주보게 된다. 당신의 미래는 아름다운가? 사색에 잠길 찰나, 이원우가 분한 털복숭이 로봇 <Trojan X & Ai Pad>(2020)가 정적을 깬다. 로봇은 썰렁한 유머를 던지며 관객에게 다가온다. 작가는 마지막 남은 불안까지 특유의 위트로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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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 개인전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 전경 2023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20대부터 즐긴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와 짐 캐리(Jim Carrey)가 여전히 좋다는 이원우. 그의 작업에는 ‘아름다운 미래’를 향한 기대가 있다. / 주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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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우 / 1981년 서울 출생. 홍익대 조소 전공 및 런던 영국왕립예술학교 석사 졸업. 워킹위드프렌드(2022), 아트선재센터(2017), PKM갤러리(2017, 2013), 엘리펀트아트(2016) 등에서 개인전 개최. <온 페이퍼>(PKM갤러리 2022), <ZER01NE DAY>(현대차서비스센터 2021), <AI vs AI: Trojan X>(실린더 2020) 등의 단체전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