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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회화의만남

성남운중화랑,이인현박기원2인전

2023/05/09

운중화랑에서 <길이와 넓이와 두께에 관한 시간>(4. 1~30)전이 열렸다. 작가 이인현과 박기원의 30년 우정을 조명하는 2인전이다. 이인현은 천에 물감과 기름을 스미는 <회화의 지층> 연작으로 캔버스의 정면성에 도전해 왔다. 박기원은 한지에 면을 나누고 결을 낸 <넓이> 시리즈로 에너지 넘치는 색면을 선보인다. / 고 충 환

넓이 78번

박기원<넓이78번>캔버스에오일스틱33.4×24.2cm2022

수평 31번

박기원<수평31번>한지에유채94×64cm2022

윌리엄 블레이크는 컴퍼스로 세상을 재는 하나님을 그렸다. 알브레히트 뒤러 역시 컴퍼스로 세상을 재다가 낙심한 천사를 그리고 우울이라고 불렀다. 세상을 재는 일에 실패했으니 낙심할 만하고 우울할 만도 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실패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가 재는 것은 감각적 실재가 아닌, 정확히는 감각적 실재를 빌린 관념적 실재, 그러므로 헛것을 재는 일이므로. 헛것에 정답이 있을 수가 없으므로. 도처에 정답이 있을 것이므로. 열린 의미(움베르토 에코)를, 차이를 생성하며 반복되는 의미(질 들뢰즈)를, 차이를 만들면서 미끄러지는 의미(자크 데리다)를 재는 일이므로. 의미 바깥에 의미를 세우는 일(모리스 블랑쇼)이므로. 발화되지 못한 채 죽어 혀끝에 맴도는 이름, 그러므로 어쩌면 그리움을 부르는 일(파스칼 키냐르)일 것이므로. 여기서 하나님과 천사와 예술가는 동격이다. 아마도 세상을 재는 일에 실패한 하나님과 천사는 예정된 실패를 수행하는 예술가의 우울한 초상이고, 알레고리일 것이다. 운중화랑은 이번 전시의 제목을 <길이와 넓이와 두께에 관한 시간>이라고 불렀다. 길이와 넓이와 두께는 세계를 재는 도량이고 단위다. 아마도 감각적 실재를 빌려 관념적 실재를 재는, 그러므로 헛것을 재는, 예정된 실패를 수행하는 예술가의 일을, 그 일이 갖는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일에, 그 의미에 부합하는 작가들을 초대한 것이 아닐까.

회화의 지층-라그랑주 포인트

이인현<회화의지층-라그랑주포인트>캔버스에유채,나무에피그먼트51×241cm2022

감각, 공간, 그 너머의 아우라 이인현은 자신의 작업을 회화의 지층이자, 옆에서 바라본 그림이라고 부른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작가의 작업에서 결정적인 것은 두께를 갖는 변형 캔버스와 번지고 스며드는 기법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면, 물감이 캔버스의 여백을 향해, 모서리를 넘어, 때론 보이지도 않는 캔버스 안쪽으로 번지고 스며든다. 그렇게 안쪽과 바깥쪽 할 것 없이, 정면과 측면과 아랫면 윗면 할 것 없이,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 할 것 없이 물감이 번지고 스며든다. 그림은 그렇게 번지고 스며들다가 멈춘 얼룩을 보여준다. 아마도 전시 제목에서 시간이란 물감이 번지고 스며들면서 멈추는 데 소요되는 과정을 의미할 것이다. 곧 그림이 그림을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충분히 번지고 스며들어 몸통을 이루는 회화의 과정을 체화한, 두께를 갖는 캔버스를 작가는 회화의 지층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옆에서 바라본 그림은 또한 무슨 의미인가. 작가의 그림에는 딱히 정면이라고 부를 만한 면이 없다. 측면도, 윗면도, 아랫면도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정면은, 측면은, 윗면과 아랫면은 그림 도처에 있다. 작가의 그림은 지층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보이지 않는 그림 안쪽에도 있다. 아마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도처에서 그림을 볼 수 있는 그림, 도처에 그림이 있는 그림, 심지어 보이지 않는 안쪽에 마저 그림이 있는 그림을 의미할 것이다. 그림을 보는 눈에도 관성이 있어서 우리는 저절로 그림의 정면을 찾게 된다. 어쩌면 작가는 따로 정면이 없는 그림(그러므로 모두가 정면인 그림)으로 정면성의 관성을 도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시작하는 최소한의 계기는 작가가 불어넣지만, 정작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번지고 스며드는 물감의 성질이다. 그러므로 그림의 시점에 작가가 있고, 그림의 종점에 그림이 있다. 그렇게 작가는 그림 스스로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있다.

박기원은 자신의 작업을 넓이라고, 때론 수평이라고 부른다. 이런 부름이 암시하듯 작가는 공간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실제로도 작가는 공간 설치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공간 설치작업은 여타의 설치작업과 구별되는데, ‘공간’ 자체를 주제화한 것이 다르다. 감각적이고 비감각적인(어쩌면 관념적인),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재료를 질료로 다른 공간 경험을 유도하는데, 공간 자체를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혹은 텅 빈 공간을 전시한다는 점에서, 사건에 방점이 찍히는 ‘장소’ 개념과는 다르다.

회화의 지층-라그랑주 포인트

이인현<회화의지층-라그랑주포인트>캔버스에유채,나무에피그먼트52×208cm2022

길이와 넓이와 두께에 관한 시간

<길이와넓이와두께에관한시간>전전경2023

작가는 진즉에 이런 공간 설치작업과 평면작업을 병행해 왔는데, 둘은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면 되겠다. 평면작업은 말하자면 바람 공기 질감 색감 빛깔 온기 습기 분위기 그리고 사사로운 기억과 같이 감각적이고 비감각적인 질료를 매개로 한 공간 경험 그대로를 평면에 옮겨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그림 속에는 벽과 벽이 맞닿아 있는, 벽과 천장이 맞닿아 있는, 벽과 바닥이 맞닿아 있는, 수평과 수직, 사선과 사선이 맞닿아 있는 공간이 있다. 공간이 있다기보다는 공간이 암시되는데, 작가는 아마도 공간 설치작업에서도 이런 암시적인 공간을 의도했을 것이다.

그렇게 암시적인 공간에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흐르고, 빛깔이 흐르고, 온기가 흐르고, 질감이 흐른다. 이처럼 흐르는 질료, 흐르는 감각을 표출하기에는 한지가 제격이다. 작가는 한지를 주로 모노톤으로 채색하는데, 부드럽고 은근하면서 빛을 머금은 것 같은 색감을 얻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지는 (반)투명하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하면 색을 먹는다. 같은 색이라도 짙은 부분을 삼키고 엷은 부분을 뱉어낸다. 작가는 공간 설치작업에서부터 추구해 온 공간의 질감, 색감, 빛깔, 분위기를 한지 회화작업에 옮기기 위해 지난한 형식 실험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공간 설치작업과 평면작업이 부합하는 분위기에 도달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실제로는 아득한 것, 먼 것인데 마치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아우라라고 했고, 이는 우리말로 분위기라고 옮길 수 있다. 이인현과 박기원은 흔적, 얼룩, 상기, 그리고 암시와 같은 불구의 언어, 불완전성의 언어를 매개로 각자의 회화적 분위기를 추구해 왔고, 마침내 그 두 분위기가 상호적이라고 해도 좋을 지점에 도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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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현(왼쪽)/1958년김제출생.서울대회화과도쿄예술대미술연구과석사박사졸업.갤러리소소(2022),가회동60(2015),가인화랑(2012),노화랑(2003)등에서개인전개최.박기원(오른쪽)/1964년청주출생.충북대미술교육과졸업.서울식물원(2022),인천차(茶)스튜디오(2022),313아트프로젝트(2019,2016),국립현대미술관과천(2010),취리히미키윅킴컨템포러리아트(2009)등에서개인전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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