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의 대안적 상상
광활한 사막에서 펼치는 대지미술 프로젝트 <데저트 X>(3. 8~5. 11)가 캘리포니아 코첼라밸리 전역에서 열렸다.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의 아티스트 11인이 ‘문화 혼종성’을 주제로 대규모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한국 작가로는 김수자가 참여했다. 필자는 서부 개척 신화의 상징적 장소에서 연대를 꿈꾸는 치유와 회복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데저트 X>전은 현대미술이 사막이라는 비일상적 공간과 어떻게 만나고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국제 비엔날레다. 광활하지만 공허함과는 거리가 먼 사막 풍경은 고대 산맥 사이로 시간의 흐름이 전개되고, 지질학적 층위에 시대적으로 적응해 온 인간의 서사가 축적된 장소다. 그런 점에서 다섯 번째 에디션을 맞이한 올해는 오랜 시간에 걸친 사막의 진화를 성찰하는 태도로 이주와 주권에 대한 원주민 미래주의, 식민주의 권력의 비대칭성, 오늘날 기술의 역할 등을 탐구하며 사막이라는 공간에서 생태계의 복잡한 관계를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예술감독 네빌 웨이크필드와 공동 큐레이터 케이틀린 가르시아-마에스타스의 기획 아래 작가 11인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로 ‘사막’이라는 전시 환경이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대지미술은 광대한 자연환경에서 이루어졌다. <데저트 X>전은 서구 백인 남성 작가 중심이었던 대지미술의 주요 흐름에 저항하고, 신화화된 미국 서부 광야가 인간의 개입에 의해 훼손된 장소라는 시각의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점에서 ‘데저트 엑스’라는 공식 명칭처럼, 전시는 제도적인 형태의 전시 장소를 넘어 작품의 개념적 기초이자 사회 정치적 담론의 무대가 된다.
2017년부터 격년제로 선보인 <데저트 X>전은 자연환경과 공공장소, 커뮤니티의 상호 작용에 주목해 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세 시간가량 차량으로 이동하면 보이는 코첼라밸리는 미국 내에서도 지리적, 경제적 이중성이 뚜렷한 지역이다. 고급 휴양지와 고립된 이민자, LGBTQ 커뮤니티, 원주민 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장소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이러한 지역성은 작품이 자연환경과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기후 위기, 주거 불평등 같은 주제를 예술적 언어로 풀어낼 수 있게 한다.
특히 올해 참여한 김수자는 사막 한복판에서 나선형 구조의 건축 설치작품 <To Breath-Coachella Valley>를 선보였다. 작가의 상징적 오브제인 ‘보따리’를 확장한 이 작품은 유동하는 시공간을 통과하는 거대한 허브이자 포털과 같다. 또한 변화하는 환경에서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관객이 빛의 한시적 변주와 마주하게 한다. 경험적 태도가 요구되는 이 작품은 작품이 놓인 위치를 넘어 자연에 노출된 공간을 드러내면서 비가시적 시간에 대한 인류학적 질문을 던진다.
사막 곳곳에 흩어진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시공간에 개입하는 순간은 동트는 이른 아침과 한낮, 그리고 해 질 녘이다. 특히 도로를 달리다 마주하게 되는 호세 다빌라의 <The Act of Being Together>는 대형 대리석을 불균형하게 쌓아 사막의 개방성과 중력을 동시에 체감하게 하는 시각적 장치를 구성했고, 앨리슨 사르의 <Soul Service Station>은 에드 루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클래식한 미국 주유소를 모티프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치유의 서사로 담아냈다.
팜 스프링스에 놓인 아그네스 데네스의 <The Living Pyramid>는 식민주의 유산과 식물학, 생태학적 시선을 접목한 설치작품이다. 사막에 자생하거나 사막으로 이식된 식물을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에 배치해 국경과 이주, 권력의 역사, 식민주의적 이식에 대한 은유로 기능하도록 했다. 또한 로널드 라엘의 <Adobe Oasis>는 폐기된 국경 장벽의 구조를 활용해 미국-멕시코 국경을 둘러싼 정치적 논의를 코첼라밸리 사막에서 다시금 상기한다. 예술이 공공 공간에서 어떻게 정치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이 외에도 샌포드 비거스, 라파엘 헤프티, 사라 메요하스, 카프와니 키왕가, 무하나드 쇼노, 카누파 한스카 루거가 참여했다.
<데저트 X>전은 비선형적인 사막의 시간성을 탐색하면서 인간의 흔적으로 둘러싸인 세계의 대안을 상상하게 한다. 사막의 장소적 스펙터클을 소비하거나 낭만화하지 않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권력의 지형을 드러낸다. 나아가 이 전시는 사회 정치적 복합성 속에서 ‘예술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이다. 침묵의 사막 위에서 예술은 회복을 위한 목소리를 내며 화답하는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