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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AI영화

미술비평가심은록,영화감독데뷔작<AI수로부인>

2023/12/15

세계 최초 AI가 만든 영화 <AI 수로부인>이 제5회 창원국제민주영화제(10. 18~11. 6)에서 개봉했다. 미술비평가 심은록이 AI 아트디렉터 겸 영화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AI 기술로 시나리오, 영상, 음악, 후반 작업 등 전 과정을 제작했다. 영화는 ‘백남준이라면 AI 시대를 어떻게 맞았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필자는 ‘백남준’과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설화를 모티프 삼은 영화를 직접 소개하고, AI 영화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깬다. / 심 은 록

사진은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오마주한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사진은백남준의<굿모닝미스터오웰>(1984)을오마주한영화의하이라이트장면.

<AI 수로부인>의 주연 3인 중 ‘수로부인’.
<AI 수로부인> 주연 3인 중 '푸른 해룡'.
<AI 수로부인> 주연 3인 중 '붉은 천룡'.

<AI수로부인>의주연3인.각각‘붉은천룡’,‘노란옷의수로부인’,‘푸른해룡’이다.이들은세계관의중추를이루는천,지,인을상징한다.

<AI 수로부인>은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설화에 기반한다.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 때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 그의 부인 수로가 천 길 높이의 절벽에 핀 철쭉꽃을 발견한다. 부인은 꽃을 따고 싶었지만 길이 너무나도 험준해 시도하지 못한다. 이때 한 노인(극 중 천신이자 천룡으로 등장)이 꽃을 꺾어다 주며 ‘헌화가’를 부른다.


그로부터 이틀, 계속 길을 가는데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납치한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나타나 “신라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노래를 부르면 부인을 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에 사람들이 ‘해가’를 불러 부인을 뭍으로 구한다. (cf.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수로부인 조(條))


영화는 이 설화에 두 가지 설정을 더했다. 첫째는 ‘인물 설정’. 먼저 백남준은 세계관의 주인공인 ‘AI 무당’으로 변신한다. 샤먼 백남준은 예술을 통해 사람, 자연, 우주와 소통하는 초월적 존재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오마주한 장면. 수많은 TV 스크린이 열매처럼 달린 디지털 숲이 펼쳐지고, 노란 옷을 입은 전자 무당이 춤사위를 벌인다.


다음으로 수로부인은 예술의 본질인 ‘울림’과 ‘숭고’를 일깨우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극 중 수로부인을 구하기 위해 부르는 ‘해가’는 제의적인 의미도 있지만, 전쟁, 힘, 권력, 자본이 아니라 ‘노래’, 즉 ‘예술’로 사람을 구한다는 의의가 있다. 영화의 막바지에는 용궁에서 돌아온 수로부인이 무당과 비슷한 긴 노란 옷을 입고 함께 춤추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AI는 예술가를 대신할까?

백남준은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우리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선례가 없는 AI 영화를 만드는 데 큰 용기를 주었다. 일반적인 AI 영화가 AI 자체를 주제로 삼거나 영화 제작의 보조 기술로 사용하는 데 그친 것과 달리, <AI 수로부인>은 전 과정을 AI로 제작한 데 의의가 있다. 21세기는 시청각을 비롯한 여러 감각 인터페이스로 동시에 정보를 학습하는 ‘멀티 모달(multi modal)’의 시대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 AI 기술은 텍스트(프롬프트)만 입력해도 대사, 이미지, 영상, 음악 등을 쉽게 만들어낸다. AI 영화는 ‘멀티 모달’이란 성격을 예술적으로 잘 종합한 결과물이다.


미디어아트의 아버지인 백남준은 멀티 모달형 예술로 기존의 예술관념을 깨고 여러 첨단 매체를 활용해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의 작품은 초기 미디어로 제작했음에도 예술의 중요한 3요소인 ‘울림’, ‘비판력’, ‘숭고함’을 갖췄다. <AI 수로부인>은 1세대 생성 AI 영화 기술로 만든 첫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가 됐다. 현재 2세대 생성 AI 영화 기술로 두 번째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1세대의 기술을 보완함과 동시에 예술의 본질적 요소를 향상하려는 게 목적이다.

<AI 수로부인> 스틸. 신라인이 말을 타고 이동 중이다.

<AI수로부인>스틸.신라인이말을타고이동중이다.

<AI 수로부인> 스틸. 하늘에 기도하는 신라인.

<AI수로부인>스틸.하늘에기도하는신라인.

<AI 수로부인> 스틸. 디지털 숲.

<AI수로부인>스틸.디지털숲.

<AI 수로부인> 스틸. 디지털 숲.

<AI수로부인>스틸.디지털숲.

현재 2세대 생성 AI 영화 기술로 두 번째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1세대의 기술을 보완함과 동시에 예술의 본질적 요소를 향상하려는 게 목적이다.
<AI 수로부인> 상영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AI가 모든 일을 했다면, 감독은 무엇을 했느냐’는 것. 이 질문에는 마르셀 뒤샹의 말을 빌려 답할 수 있다. 1917년 미술의 고정 관념을 깨트린 뒤샹은 한 상점에서 남성용 변기를 선택하고 <샘>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하며 “예술은 선택”이라는 말을 남겼다. 한 세기도 더 지난 지금, 필자는 이를 AI 영화에 적용했다. <AI 수로부인>은 0.8초부터 8초까지의 수천 장 영상에서 뒤샹 스타일의 ‘개념적, 창의적 선택’을 내린 작품이다.


둘째는 ‘AI가 영화까지 만든다면, 예술계와 영화계에 사람이 설 자리가 없지 않냐’는 것. 사진기를 처음 발명했을 때 ‘미술은 죽었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까지의 미술은 현실의 재현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우려와 달리, 오늘날 미술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창의적 모습으로 전 세계에 확장되었다. AI 영화는 개인 영화 제작 시대를 앞당겼다. 머지않아 기존 영화 제작보다 훨씬 간편하고 저렴한 비용을 이점으로 다양한 AI 영화가 등장할 것이다. <AI 수로부인>은 그 포문을 열기 위한 시도였다.

백남준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 'AI 무당'.

백남준을모티프로캐릭터'AI무당'.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다가오는 2024년 1월 1일 40주년을 맞는다.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백남준과 오웰의 입장도 지금과 비슷했다. 백남준이 ‘어차피 첨단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입장이었다면, 오웰은 ‘빅 브라더’를 예로 들며 기술이 불러올 윤리적 문제를 경고했다. 둘 중 어느 한쪽이 옳거나 그른 건 결코 아니다. 그리고 필자는 이 시대 예술 창작의 목적을 샤먼 백남준이 말한 ‘소통’과 ‘구원’에서 찾았다.


엔딩에는 제작에 참여한 모든 생성 AI 기술을 대표해 챗GPT가 마무리 인사를 남긴다. “이제 당신을 AI 무당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여기서 ‘당신’은 영화를 보고 있는 관람객일 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일 수도 있다. 백남준을 본받을 다음 세대의 ‘AI 무당’, 즉 후배 예술가가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AI 수로부인>의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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