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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분노,끝없는투쟁

브레겐츠미술관,독일퍼포먼스아티스트안네임호프개인전

2024/07/04

안네 임호프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 출전,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브레겐츠미술관에서 임호프의 개인전 <네가 게이였으면 좋겠어>(6. 8~9. 22)가 열렸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필자는 현장 취재와 작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번 전시의 의미를 꼼꼼히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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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임호프

개인과 사회, 예술과 삶 사이의 긴장은 정치적 변화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 한 예술의 영역 안에서 해소될 수 없다. 임호프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은 그의 삶에서 지속된 분노와 고통, 불안에 대한 절박한 호소다. 그리고 이 짙은 호소는 퍼포머의 반복적이고 강렬한 움직임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사운드, 유리와 철제 프레임을 재료로 한 차가운 구조물이 한데 뒤섞여 언제라도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치환된다. 그러나 현재 브레겐츠미술관에서 한창 진행 중인 개인전 <네가 게이였으면 좋겠어>에서는 상승 곡선을 그리며 치솟는 불완전한 에너지 대신, 자신의 내밀한 과거를 담담히 회고하는 존재감만으로 묵직하게 채웠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시그니처 퍼포먼스를 볼 수 없지만, 이제껏 공개된 적 없는 초기 영상과 최근의 회화, 부조, 드로잉 등이 다수 포함됐다. 특히 2001~03년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한 6점의 영상은 과격하거나 초현실적일 만큼 느린 몸의 움직임을 오페라, 일렉트로닉, 뉴 웨이브 같은 사운드와 결합하거나 다른 영상과 교차 편집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등 현재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시도들이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퀴어 여성으로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은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전시장 1층 벽면에 투사된 <마리아>에서 임호프는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고 단호하며 사명감으로 가득하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카메라 렌즈를 향해 수없이 펀치를 날리는 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한 주인공 마리아보다 그를 필사적으로 지키기 위해 죽음도 마다치 않는 토니의 모습에 가깝다.
전시장 2층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실제로 운동을 마치고 벗어 둔 듯한 티셔츠가 벤치에 축 늘어져 있었다. <무제 (벤치II)>는 체육관이나 학교 탈의실에서 운동복을 갈아입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을 비교하던 때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경험이 담겼다. “이 순간이 내게는 매우 특별했다. 내 몸이 다른 사람들과 상충하는 느낌, 혹은 나에게 부여된 성별과 내가 상충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 나는 큰 위화감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일상적인 순간이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불편하고 버거운 순간으로 남아있다. 3층 전시장의 같은 위치에 놓인 <무제 (벤치I)>에는 운동복 대신 그가 평소 즐겨 입는 검은색 옷이 늘어져 있다.

독일 중부에 위치한 기센에서 태어나 작고 보수적인 가톨릭 마을에서 성장한 작가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에 입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수업을 받으며 자신과 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테크노 클럽에서 바운서로 일했고, 밴드에서 공연도 했다. 공연장에서 무대와 관객석을 분리하기 위해 세워 놓을 법한 강철 패널이 전시장 공간 구획에 활용된 데에는 이러한 경험이 반영됐다. 이 패널은 전시장 입구부터 끝까지 세워져 전시장 내에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없도록 시야를 차단하기도, 중간에 있는 유리창을 통해 그 내부를 엿보게도 한다. 동시에 전시장 내부로 향하는 좁은 길목을 형성해 안에 들어서는 순간 전시장 전체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러한 공간 구획은 4층 전시장까지 이어져 미술관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마치 눈을 가리고 서프라이즈라도 하듯, 실제로 검고 길게 늘어진 패널은 붉은빛으로 물든 디스토피아적인 전시장 풍경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했다.
패널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대형 회화였다. <무제 (7시)>와 <무제 (9시)>, <무제 (정오)>는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구름 같기도, 핵폭탄이 터진 후 생기는 버섯구름 같기도 하다.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연기/구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작가의 평소 습관과 핵전쟁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리고 폭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복합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 인공적인 구름 풍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디지털 이미지로 먼저 제작하고 이를 캔버스에 인쇄한 후 정교하게 채색했다. 그중에서도 <무제 (정오)>는 그라피티가 그려진 유리 가벽과 중첩되도록 매우 가까이 설치했는데, 이 가벽은 지난 가을 전시에서도 공간을 구획할 뿐 아니라 작품을 중첩, 반복, 변형해서 볼 수 있도록 배치됐다. 당시 퍼포먼스와 공연을 선보였던 유리 <집>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누구도 드나들 수 없지만,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폐쇄적이자 개방된 집으로 변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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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네가게이였으면좋겠어>전경2024브레겐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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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네가게이였으면좋겠어>전경2024브레겐츠미술관

핏빛으로 물든 디스토피아

유리와 철제 구조물로 전시장을 분할하는 조각적 개입은 프랑크푸르트의 고층 건물에서 착안했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공공 공간을 억압하는 고층 건물을 떠올리며 전시장 3층 전체를 낮은 철제 지붕과 쇠창살로 분할했다. 그 탓에 같은 공간에 놓인 회화 <네가 게이였으면 좋겠어 III>는 근거리에 설치된 오토바이와 유리 가림막, 쇠창살까지 더해져 더욱 파편적으로 보였다. 열화상 카메라로 포착한 듯 어렴풋이 보이는 작품 속 인물은 손가락으로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시늉을 하고 있다. 권총 자살 모티프는 과거 작가의 공연이나 드로잉에도 자주 등장했는데, 이번 회화 연작에는 무아레 패턴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각 층에 걸린 청동 부조작품 또한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시도됐다. 특히 4층에 전시된 부조 <무제>는 1층에 걸린 드로잉 <저승사자>와 대구를 이루는데, 후광을 뒤에 얹은 세 명의 인물이 각각 낫과 손전등, 해골, 악마 형상의 가면을 들고 있거나, 손가락으로 다른 이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제스처를 취한다. 신화나 성경의 한 구절을 묘사한 것 같지만, 실은 친구와 독거미를 쫓기 위해 횃불을 사용한 기억과 경비원으로 일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듯 이제 막 제작된 부조지만, 낙서와 파손된 흔적을 인위적으로 넣어 오랫동안 공공장소에 걸려있던 작품처럼 보이게 했다.
핏빛 조명이 가신 4층에 올라와서야 1층부터 점점 고조되던 긴장감이 완화되는가 싶었지만, 철제 패널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 마주한 전시장을 보고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단지 손가락으로 시늉만 하는 줄 알았던 <네가 게이였으면 좋겠어>의 인물은 밝은 조명에서 다시 보니 실제 총을 들고 자기 머리를 겨누고 있었고, 3층 전시장을 짓누르던 철제 지붕은 4층에서 복싱링으로 재소환됐으며, 일렉트로닉 선율에 차가운 인공 지능 목소리를 더한 사운드는 전시장에 불길한 기운을 감돌게 했다. 현실은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말하는 안네 임호프. 작가의 분노는 영원하고, 그의 투쟁은 끝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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