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당신은 작품을 관람할 때 제목을 읽나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린 <이름의 기술>(10. 11~2025. 2. 23)전은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을 대상으로 설문을 시행했다. 10월 중순 기준, 투표의 현황은 “YES” 832표, “NOPE” 226표. 많은 관객이 작품명을 지표 삼아 작업을 감상하고 해석한다는 뜻이다. <이름의 기술>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작품의 ‘이름’을 재조명한다. 무제, 기호, 문장 등으로 이루어져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정서영 <유령이 좀 더 나아질 거야> 먹지에 드로잉 각 40×40cm 2000
제목의 시대, 예술, 기술적 의미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소장품 특별전 <무제>를 열고, <무제>가 제목인 작품 48점을 소개했다. 당시 미술관은 전시를 기획하면서 연구한 통계 자료도 함께 공개했는데, 전체 소장품 7,464점 중 제목이 <무제>인 작품이 522점으로 7%를 차지했다. 연대별로 구분하면 1980년대가 282점으로 가장 많고, 60년대 99점, 70년대 81점이 뒤를 잇는다. 즉 60년대 실험미술부터 70년대 단색화, 80년대 민중미술을 ‘<무제>의 시대’로 부를 수 있다.
박현기 <무제> 단채널 비디오, 무음, 돌 21개, 모니터 3대 51×46×207cm 1986
이번 <이름의 기술>전은 <무제>전의 연장선에서 더 다양한 종류의 제목을 포괄한다. 전시는 총 네 파트로 나뉜다. 먼저 ‘프롤로그-이름의 기술’에서는 현재 소장품 11,560점 가운데 무제, 기호, 문장형 작품을 분류한 아카이브를 소개했다. 단순히 작품의 수나 비율을 발표하는 것을 넘어, 작가마다 <무제> 작품을 어느 해에 몇 점이나 제작했는지 가나다순으로 나열했다. 가령 곽남신의 <무제>는 1989년에 단 한 점 있는 반면, 문신은 연도 미상의 <무제>가 100점을 훌쩍 넘긴다. 다음으로 ‘무제’ 섹션에서는 실제 <무제>를 제목으로 삼은 대표작을 보여주며, ‘기호’ 섹션은 숫자, 알파벳, 부호 등이 조합된 제목들로 구성되었다. ‘무제’가 관객 앞에서 침묵을 지킨다면, ‘기호’는 수수께끼 같은 단서를 제공하면서 무한한 상상을 이끌어 낸다. 화면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시각적 재현을 넘어 아티스트의 개념이나 정신에 가닿는다. 최명영의 <오23-B>, 이상남의 <P/R(W+L6)>, 김도균의 <b.vfd.46.178392 1.216070-01> 등이 소개됐다.
마지막으로 ‘문장’에는 서술형 제목이 선별되었다. 이 경향은 주로 90년대 이후 발견되는데, 작가의 의도를 교란하면서 작품 감상을 더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이 섹션에서 가장 긴 제목의 작품은 토마스 사라세노의 2019년 드로잉 <4각형의 통 안에서 네필라 세네갈렌시스 거미가 1주 동안 살고, 키르토포라 시트리콜라 거미가 2주 동안 살고, 이후에 어린 키르토포라 시트리콜라 거미 4마리가 1주 동안 살았다. 이후에 거미줄이 잘 보이도록 잉크를 분사하고 450도를 회전하여 접착제가 붙은 종이로 눌렀다.>이다.
<이름의 기술>전 전경 2024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관객이 직접 작품의 이름을 지어보는 ‘이름 게임’도 인기를 끌었다. 모니터에 출품작 사진이 뜨면 관객이 제목을 고르는 참여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조환의 조각작품 <무제>를 두고 ‘조화의 선율’과 ‘망가진 생태’ 중에서 선택해 원제를 바꾸는 놀이이다. 여기서 가장 많이 선택된 제목은 전시장 작품마다 붙은 ‘디지털 캡션’에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이처럼 전시는 작품 제목의 시대별, 매체별 특징을 살펴보고, ‘기술’이라는 창작의 영역에서 ‘이름’의 의미를 다시 고찰한다. / 이현 부편집장